2021. 12. 2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형수욕설’ 파일 유포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간 유튜브에서는 ‘법원명령’을 이유로 청취가 차단됐었다. 이후 SNS를 통해 유포됐다는데 이게 민주당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다. 이 당의 법률지원단장인 송기헌 의원이 지난달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공직선거법 제251조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상식 재확인한 선관위 유권해석
송 의원은 “이 파일이 2012년부터 인터넷에 노출되기 시작하여, 대선을 100여일 앞둔 지금 이 시점에서도 SNS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유튜브 노출은 차단됐다. 그런데 SNS는. 말하자면 열려 있는 상태다. 이것마저 차단해 버리고 싶었을 법하다. 그래야 불리한 정보의 완전봉쇄가 가능할 것이었다.
민주당은 국가기관과 법의 힘을 동원하고자 했다. 이미 법원은 보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었고, 유튜브는 ‘법원명령’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콘텐츠를 차단했다. 네이버 또한 해당 파일을 ‘게시 중단’시킨 바 있다. 그 전례로 미루어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이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오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가 지난 16일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내놨다. “후보자의 욕설이 포함된 녹음 파일 원본을 유포하는 것 만으로는 공직선거법 251조(후보자비방죄)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욕설이 나오는 시점을 안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녹음파일 중 욕설 부분만을 자의적으로 편집해 인터넷, 문자메시지, 소셜미디어 등에 유포하는 행위 등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법 제251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와 그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를 비방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단서가 있다.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집권당, 선거 앞두고도 권세 자랑
후보자의 인성·자질을 파악하는 것은 후보 검증의 기본이다. 이를 막는 것이야말로 선거방해가 될 수 있다. 똑떨어지는 ‘공공의 이익’이다. 선관위는 2018년 지방선거 때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 선거에 있어서의 유권자 이익에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으로서는 머리를 굴렸다가 되레 역풍을 맞은 격이 됐다. 녹음파일 공개의 적법성은 물론 공익성까지 확인됐기 때문이다.
친문(親文) 성향 단체인 ‘깨어있는시민연대당’(깨시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19일 문제의 녹음파일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런데 곧 차단된 듯 밤 시간인 지금은 깨시연의 해당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을 수가 없다. 민간기업인 구글(유튜브)의 자체 방침인 것 같은데 공개를 강제할 수단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압력이 가해졌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긴 하지만 단정하긴 어렵다. 이재명 후보에겐 본의든 아니든 우군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완전 차단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막을수록 대중의 호기심은 더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어쨌든 이 선에서 가만히 당하고 있을 민주당도 아니다. 이 당의 서영교 선대위 총괄상황실장은 19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본을 유포하는 경우에도 비방·낙선이 목적이라면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선거법상 위법한 행위”고 주장했다. 그는 “특정 후보를 폄훼하기 위해 사적 통화 녹취를 배포하는 행위가 재발하는 경우, 민주당은 공명선거를 실천하기 위해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개인들의 단순한 파일 배포는 ‘비방·낙선의 목적’으로 단정할 수가 없다. 호기심 때문에, 부탁을 받고,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돼서, 혹은 남의 판단을 들어보기 위해 지인들에게 배포할 수가 있다. 더욱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방패가 있다. 그러므로 법정에 불려가더라도 처벌에까지 이르기는 어렵다.
진정성 결여된 사과는 국민 우롱
그러나 여당의 고소·고발은 개인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충분한 수단이다. ‘얼마든지’ 위법행위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정당원이 아니고, 특정 후보 선거운동원이 아닌 일반 개인들이 이 위협을 감수하면서 그 파일을 지인들과 돌려보겠다고 SNS에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관위나 유튜브, 포털 등이라고 부담은 안 느낄까. 그 점에서 민주당의 위협은 다각도로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다. 명색이 집권당이면서 국민을 예사로 겁주는 행태를 이처럼 당당히 보이다니! 그게 민주당의 생리인가?
민주당 이 후보는 요즘 반성‧사과에 이력이 난 인상을 주고 있다. 상당히 ‘재미’를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과거리가 자꾸 생겨난다는 데 있다. 이 며칠은 아들의 불법도박 논란이 불거져 또 사과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성매매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데 사실이라고 할 경우 그 충격파가 도박보다 더 클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치 사과로 승부를 보려는 듯 열성을 쏟고 있는데 한심한 일은 스스로, 또는 선대위에 의해 그 진정성이 부인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녹음파일 차단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후보는 이미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도 파일의 유포는 한사코 막겠다고 한다. 사과를 했다는 것은 들은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청취는 원천봉쇄하겠다고 한다. 무엇에 대한, 무엇을 위한 사과인가.
그래서 말인데 우선 거대 집권당의 위력을 너무 뽐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거를 앞두고도 예사로 고소·고발 위협을 가하는데, 다시 집권하게 되면 그 유세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다음으로, 진정성 없는 사과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깨달을 일이다. “사과한다고 했더니 정말 사과하는 줄 알더라”는 말 같은 건 제발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이진곤 /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