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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호세아서 강해 25)
그 크신 사랑으로 진단하시는 여호와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6. 18.
본문 : 호세아 4:15-19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16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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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하나님과의 관계는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틀어지게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현저하게 관계의 붕괴가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신앙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으로 나중에 우상숭배 죄악까지 범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죄악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멀리 예루살렘 성전까지 갈 것이 있느냐며 가까운 데서 제사를 드리자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를 때 시간과 물질이라는 뚜렷한 헌신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도 아깝고 헌금도 아까워집니다.
첫째, 길갈과 벧아웬의 순례자들
본문 15절에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에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범죄치 말라’고 합니다. 현재 북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음란에 찌들어 타락의 길로 치닫는 현실 가운데 적어도 정통왕조라 할 수 있는 남 유다만큼은 타락한 북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례를 따르지 말 것을 호세아 선지자는 간곡히 호소한 것입니다. 유다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리는 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음란의 영에 유혹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지만, 성도들만큼은 음란한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외부에서 오는 죄의 유혹과 내부에서 오는 죄의 욕망을 물리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죄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15절에 죄를 범치 않으려면 길갈과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상숭배 중심도시였습니다. 길갈은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진을 치고 광야 생활에서 하지 못했던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 애굽에서부터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던 마지막 죄의 흔적을 잘라서 굴러 보냈다고 해서 그곳 이름이 길갈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상을 섬기는 도성으로, 음란의 영이 활개 치는 장소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벧아웬은 벧엘의 별명입니다. 벧아웬은 우상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신 곳입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에게 길갈과 벧엘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 두 성읍 속에 음란한 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가장 중요한 곳을 점령해서 그것을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명성만 믿고 찾아서는 안 됩니다. 예전의 명성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때 유명했다는 것보다 지금 그곳에 진리가 활동하고 있으며 죄를 이기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남 유다가 북 이스라엘의 죄에 미혹되지 않는 첫걸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바로 보고 그곳을 멀리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둘째, 완강한 암소 같은 사람들
본문 16절에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강하다’는 ‘강팍하다’는 의미입니다. 소는 주인보다 훨씬 힘이 세지만 소의 코를 뚫어 연결한 고삐를 잡고 당기면 고통으로 인해 웬만한 소는 주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픔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소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태도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태도에 빠지는 것입니다. 완강한 암소처럼 고집불통이요 똥고집을 부리면 길가 같은 마음이 되어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사자성어로는 우이독경입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므로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끝내 패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려주고 회개할 기회를 주고 바른길을 제시해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던 애굽 왕 바로, 이스라엘 자손을 압제하며 그들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끝내 거절했던 애굽 왕 바로입니다.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출 9:34). 모세를 통해 여호와의 명령을 들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자기 마음을 완악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왕위를 이을 장자가 죽는 참상을 보았으며 또 최강을 자랑하던 병거 부대가 홍해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악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재난을 자초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기 나라를 세우는 데만 고집하다가 전쟁에서 죽는 비참한 결말을 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매일매일 자기를 돌아보고 죄의 유혹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도 마음이 완고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라는 권면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항상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어떤 죄의 유혹이나 마음의 유혹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70). 다른 사람들은 그럴지라도 우리가 주의 법을 즐거워할 때 우리는 멀리하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며 살 수 있습니다.
셋째,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
본문 17-19절에 “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술 취함과 음란의 부끄러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였던 것은 자기의 수치스러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리어 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술 취함과 음행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추악한 일을 자행하면서 도무지 죄에서 떠날 줄 몰랐습니다. 17절에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인데 우상과 연합했습니다. 우상과 에브라임은 일심동체였습니다. 짝짝쿵 잘 맞았습니다. 18절에 ‘마시기를 다하고’는 마시고 또 마시고 도저히 더 못 마실 지경에까지 마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며 무엇을 당당하게 행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이는 일반적으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구세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로마사람들이나 유대인들이 치욕적인 것으로 인식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 소수자들 동성애의 퀴어 축제를 대놓고 드러내는 세상입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입니다. 17절에 ‘버려 두라’ 18절에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다가’ 19절에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고 결론짓습니다. 19절에 ‘바람 날개로 그를 쌌나니’는 앗수르 침략을 받고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19절에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는 그들이 많은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지만 그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거짓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 16:15). 깨어있어야 합니다.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아야 복이 있습니다. 벌거벗으면 몸의 부끄러움과 수치가 다 드러납니다. 지금은 벗는 문화가 유행입니다. 영적 측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도 모르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세상과 짝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고 깨어나라 또 깨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길갈과 벧아웬의 순례자들.
순례자들의 성지였던 길갈과 벧엘이 음란의 성읍이 되었음을 보면서
예전의 명성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금 진리가 활동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 완강한 암소 같은 사람들.
코뚜레도 소용없이 고집만 피우는 완강한 암소였던 북 이스라엘을 보면서
주의 법을 즐거워하므로 고집불통 똥고집을 버리겠습니다.
@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
우상숭배, 술 취함, 음행을 당연히 여기면서 부끄러움을 몰랐던 북 이스라엘을 보면서
벗는 문화가 유행하는 시대에 영적으로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깨어있겠습니다.
@ 일분일초도 잊지 않고 사랑해 주시는 여호와의 사랑에 감사하며
어떤 일에도 하나님만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 나의 코뚜레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는가?
혹은 완강한 암소 같지는 않는지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삶 되길 소망합니다.
@ 그 크신 사랑으로 진단하시는 여호와만을 믿으며
길갈로 가지 말고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고 오직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는 자녀가 되지 않고 항상 주님 앞에 즐거워하며
복음을 위하여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 주님이 사랑으로 진단하시면 저의 죄와 허물이 녹아지게 하실 것이며,
회개할 맘 충만하여 도우시는 성령님의 하시는 일을 찬송하며 이루어가는 믿음 되겠습니다.
@ 시간과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나는 완강한 암소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제가 아닌지 말씀 앞에 바로 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죄의 유혹, 우상 앞에 말씀을 사모하며 깨어 있어서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께 드림이 아깝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더욱 친밀한 관계로 주님을 섬기는 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믿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영적 옷을 입어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30년 믿음 생활에도 죄를 다스릴 줄 모르는 연약한 믿음을 회개합니다.
잘못되었음에도 그렇지 않다는 이 못난 완강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알아가는 첫사랑의 기쁨을 회복하길 소망합니다.
@ 주일 지키기, 말씀 읽기, 기도하기 부끄러운 일을 멀리하며 영적 옷을 지키겠습니다.
@ 완강한 암소 같은 사람, 성경의 대표적 인물 바로 왕을 보며 기도합니다.
완강한 암소처럼 고집을 부리고 말씀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어린양 되기를 원합니다.
@ 죄가 우리를 유혹하고 원하지만 완고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주의 법을 즐거워하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 내가 주님의 법을 지키며 믿음 생활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내 고집들을 버리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완강한 암소가 아닌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 저의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감사합니다.
@ 주위 사람들에게 교회 가자라고 말로 전도하는 것에 주춤하지 않게 해주세요.
@ 저의 마음을 바로 왕이나 사울 왕처럼 완고하고 강퍅하지 않게 하소서.
좋은 땅이 되어 열매를 맺어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말씀으로 기경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되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입술에 마음 판에 새기도록 애쓰겠습니다.
@ 주의 법을 즐거워함으로 늘 가까이 하려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의 법을 즐거워함으로 늘 가까이하려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의 완악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코뚜레에 메여서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깨어서 행할 수 있는 제가 되길 바랍니다
@ 나의 완악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코뚜레에 메여서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육체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벗는 문화시대’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주일도 모르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안 하는 나의 영적 부끄러움을 발견하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고집불통, 똥고집 버리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그 크신 사랑으로 진단하시는 여호와’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길갈과 벧아웬의 순례자들’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완강한 암소 같은 사람들’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