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J. G. Fichte)
1) 지 식 학
피히테는 ?지식학에의 제일서론?에서 “나의 철학체계는 칸트의 체계 이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어서는 그는 “칸트는 어디에서도 모든 철학의 기초를 다루지 않고 ?순수이성비판?에서는 다만 이론철학을… 그리고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다만 실천철학은 다룬 데 불과하다.” 고 말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피히테의 지식학의 의도는 근본적으로 칸트철학을 계승하면서 다만 칸트가 이루지 못한 모든 철학, 즉 학문의 기초를 탐구함으로써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통일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피히테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체계의 구성을 ‘이론의 실천에의 종속’ 즉, 이론적 자아의 실천적 자아에의 종속에서 찾았고, 이 체계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모든 학문의 기초는 지식학의 제일 원칙으로 정립된 ‘절대적 자아’에서 찾았다.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의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자신의 철학은<지식학(Wissenschaftlehre)>라고 규정하였다. 지식학이란 모든 학문의 학문 즉 학문 일반의 학문으로서 바로 철학을 가리킨다.
학문을 구성하는 지식은 주관과 객관의 두 요소로 성립된다. 피히테에 의하면 객관을 지식의 근거로 삼는 것은 독단론이고 주관을 지식의 근거로 삼는 것이 관념론이라 한다. 독단론에는 큰 결함이 있다. 독단론은 자아를 사물에 종속시키려 하는데 물 자체(Ding-an-sich)는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은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은 어디까지나 사물이며 나의 표상이 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관념론에 있어서는 외적 대상이 자아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아는 자아의 의식 밑에 일체를 통일하고 체계화, 법칙화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은 모든 것을 자아를 원리로 하여 자아에서 도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지식학은 모든 명제를 자아라고 하는 최고 원리에서 도출하게 된다.
지식학의 제일 근거가 되는 명제는 “자아는 근원적으로, 단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정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최고원칙은 근본 명제이기에 다른 것을 통하여 증명이나 규정될 수 없는 명제이다. 그것은 경험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다. 이 명제는 일반적으로 논리학의 동일률에서 도출된다. 동일률 즉 ‘A는 B다’라는 명제는 경험과 관계없는 의식의 사실로서 보편적으로 승인된다. 즉 ‘나는 나다’라는 명제는 자아가 자아 내에서 자아를 스스로 정립한다는 것으로서 자아의 주체적 능동성을 표명한 제일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자아는 사실(Tat)인 동시에 활동(Handlung)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는 활동의 주체인 동시에 활동의 소산이기도 한 것이다. 피히테는 이러한 자아의 사실성과 활동성을 종합하여 사행(事行 Tathandlung)이라 부른다.
지식학의 제이 근거가 되는 근본 명제는 “자아에 대하여 단적으로 비아가 반정립된다”는 것이다. 1의 명제와 마찬가지로 2의 명제도 그 내용을 제거하면 ‘비A는 A가 아니다’라는 논리적 명제가 성립된다. 전자에서 실재성의 범주가 도출된다면 후자에서는 부정성의 범주가 도출된다. 이와 같이 정립(These)과 반정립(Antithese)은 종합(Synthese)으로 전개된다.
제일과 제이의 명제를 종합한 제삼의 명제는 “자아는 자아 속에 가분적(可分的) 자아에 대하여 가분적 비자아를 반정립한다”는 명제이다. 이 명제의 내용을 제거하고 형식만 취한다면 ‘A는 일부분은 A이고 일부분은 비A이다’라는 논리적 명제가 도출된다. 여기선 한정성의 범주를 얻게 되며 아울러 이러한 정립-반정립-종합의 모델은 헤겔에게 이르러 변증법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피히테는 대상(Gegenstand)을 어떤 주체적 활동에 ‘거역하면서 대항해서 서 있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러므로 자아의 활동이 전제되지 않은 대상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아의 활동이 대상의 가능성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실천적 자아가 이론적 자아의 근거가 된다. 피히테는 칸트의 이론이성에 대한 실천이성의 우위사상을 철저히 밀고 가서 이론적 자아가 가지는 제약을 넘어서서 비아를 자아 속으로 다시 흡수해 버린다. 즉 그는 칸트의 물자체를 비아로서 내면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처럼 피히테는 이론과 실천의 칸트적 분열을 극복하고 절대적 자아의 사행 속에서 양자를 통일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자아는 그것이 실천적 자아가 되기 위해서 비아의 세계를 극복하려 하지만 그 노력은 항상 새로운 대상 즉 비아의 세계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세계는 절대적 자아의 이상계와 유한적 자아의 현실계로 다시 분열하게 된다. 그래서 피히테는 자아가 한편으로는 무한한 절대적 자아가 되지 않으면 안되지만 또 다른 하편으로는 유한적 자아로서 비아에 의존하게 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실천적 자아의 개념 속에 절대적 자아를 이념으로 도입하여 자아의 실천이 비아의 세계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사명을 부가시켰다. 즉 절대적 자아가 되려는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불가능한 모순 속에서 오히려 그는 이 최고의 명령적인 법칙을 “당신은 단적으로 행하여야만 한다”는 명제로 표현하였다.
2) 지식학 이후
피히테의 실천철학은 지식학을 바탕으로 윤리, 법, 국가, 종교, 교육, 역사의 분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관심은 언제나 인간의 윤리적 실천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식학의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시키려는 저술로서는 ?자연법의 기초? ?지식학의 원리?에 의한 윤리학의 체계』가 있다. 전자는 법률론이고 후자는 도덕론이다. 이들의 내용은 모두가 지식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인격과 양심에 관하여 쓴 것들이다.
1789년 이후의 피히테에게 주요한 변화가 발견된다. 그는<신의 세계 통치에 대한 우리 신앙의 근거에 대하여>라는 글로 예나 대학을 쫓겨나와 베를린으로 갔는데 그 글에서 피히테는 신이란 세계의 도덕적 질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특별한 실체로서 신이란 이성에 있어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배척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신앙은 세계 질서에의 신앙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도덕적 의무의 수행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베를린에 간 이후 그는 도덕과 종교를 더욱 분리시켜 도덕은 자아의 엄격한 당위 즉 의무에 관한 행위를 요구하는 반면에 종교는 오히려 관용, 생명, 사랑, 복지를 그 내용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지복한 삶에의 지침』이란 종교론을 썼다. 여기에서 신은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서 계시 존재가 된다. 인간의 최고의 과제는 실천으로 다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귀의해야 함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적 관념론에서 객관적 범신론으로 옮겨간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이미 셀링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다. 피히테는 이제 주관적 관념론의 한계를 느끼면서 셀링의 자연철학과 객관적 관념론의 저항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