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Well dying)
김 영 한
금년 여름은 폭염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폭염 속에서도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기에 충청북도 웰-다잉(Well-dying) 연구소에서 실시한 제9기 웰-다잉 지도사 양성 교육과정에 지원, 7월 15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서 5시 까지 총 8주간에 걸친 연수를 받고 웰-다잉지도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21세기 벽두부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이제 초고령 사회를 향해 달리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은 현대사회는 바야흐로 웰-빙(Well-being)의 삶에서 웰-다잉(Well-dying)의 문제로 사회적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웰-다잉이란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지나간 삶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 즉 사람이 사람답게 죽기 위한 현재적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일이다.
다회적(多回的)인 삶이 아닌 일회적(一回的)인 삶이기에 한 번 뿐인 인생,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산다고 말한다.
행복의 척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을 보면 신체적 안녕, 정서적 안녕, 심리적 안녕, 사회적 안녕, 영적 안녕, 윤리적 충만과 미래세대의 안녕, 마지막으로 경제적 안녕 등으로 조사되었다.
청년기의 행복조건은 자기 자신에게 불만이 없고, 삶에 대한 만족 등 정서적 안녕을 꼽고 있으며, 장년기의 행복조건 역시 자기만족, 감사하며 사는 것,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 욕심 없이 주어진 여건에서 만족을 느끼는 상태 등 정서적 안녕을, 노년기는 건강하게 사는 것을 내세우는 신체적 안녕을 행복이라고 하였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만족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적 곤궁’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이 75세 이상 연령대에서 높고 약 33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슬픈 현실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35%, 신체질환이 35%, 외로움과 고독이 11%, 가정불화가 9%로 나타나고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을 많이 한다.
남자가 자살이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뿐만 아닌 세계적인 현상인데 실직, 은퇴로 인한 사회적 활동의 축소, 경제력 감소, 질환 증가, 부적절한 대응(음주), 배우자 상실 및 자녀독립 등 노령화와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2008년 교사로 정년퇴직하여 연금을 받고 있어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되니 그것만도 행복이다. 퇴직하자마자 상당교회 장수대학이 설립되어 4년 동안 운영팀장을 맡아 매주 목요일은 장수대학에서 하루를 신나게 보낸다.
8년째 장수대학을 꾸준히 다니니 건강도 좋아지고 댄스운동을 하니 육체건강, 정신건강은 물론 치매예방에도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
운영팀장 시절에 주로 스트레칭을 많이 해 드렸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다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날씨가 춥더라도 스트레칭을 10분만 하게 되면 온몸이 후꾼후꾼 달아오르며 아주 신이난다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볼 때 팀장으로서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세월의 빠름을 빗대어 60대엔 해마다 늙어가고, 70대엔 달마다 늙어가고, 80대엔 날마다 늙어가고, 90대엔 순간마다 늙어간다니 70대인 나로서도 달력이 빠르게 넘어간다.
인생을 살아가는 삶은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름다운 삶을 말한다.
늘 배우려 노력하고,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 적시적소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사람, 평소에도 자기 주변을 잘 정리하고 화해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인사로 자기 재산은 물론 장기기증까지 해놓고, 중환자실에도 가지 않고 자연스런 수명을 다하는 삶으로 살아있을 때 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삶을 말한다.
둘째는 멋있는 삶을 말한다.
멋있는 삶이란 여유 있는 삶이다. 모든 사람이 너나할 것 없이 멋있는 삶을 원한다. 국가나 이웃을 위해 사랑과 헌신으로 살다가 죽은 애국자들, 자기의 인생관, 가치관이 뚜렷하여 존경과 경의를 받은 사람들이 멋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셋째는 안타까운 삶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당하는 죽음인데 사고사, 천재지변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삶을 말한다.
넷째는 한심한 삶을 말한다. 삶을 포기하여 원망과 보복으로 죽음을 선택한 무책임하고 한심한 죽음을 말한다.
8주간의 강의를 받으며 유언장을 작성해 보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죽음 체험도 해 보았다. 관에 들어가니 잠깐 동안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몰려온다.
남은 생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인생은 한치 앞도 모르는 삶이라 만일을 대비하여 사전의료의향서와 사전치매요양의향서도 작성해 놓았다.
* 사전의료의향서
나(김영한)는 명료한 정신 상태에서 직접 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합니다.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진단과 치료에 대하여 나 스스로의 의사표시가 불가능해 질 때 무익한 치료를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뜻을 밝히기 위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담당 의료진과 가족들이 이 사전의료의향서에 기록된 나의 뜻을 존중해 주기 바랍니다.
* 사전치매요양 의향서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요양원, 가족에게 바라는 당부
ㆍ병이 경증이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경우 가족과 함께 지내기를 바라며 가능한 한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주기를 바란다.
ㆍ만약 나의 병이 중증도에 이르면 부담이 크지 않은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전문 간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하기 바란다.
ㆍ병의 경과가 중증으로 진행되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 최소한의 연명을 위한 모든 치료는 중단하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공급해주기 바란다.
다시 말해 우리는 well-being(잘 있기), well-living(잘 살기), well-aging(잘 늙기), well-dying(잘 죽기) 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라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운 현상, 혹은 절망 자체로 여기지만, 죽음을 수용해 밝은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웰-다잉 지도사 양성 교육과정 연수를 받으며 삶의 최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죽는 순간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태도로 어떤 식으로 죽을 것인가는 자기 자신이 정할 수 있다. 미리 죽음을 준비해 밝은 모습으로 여유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웰-다잉(Well-dying)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행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