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건희 저질정권 때문에 태평로에서 자주 뵈면서 많은 지적 도덕적 자극과 언행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민사네 박충구 형님대표께서 쓰신 '먹사와 짱노'들에게 보내는 고언을 모셔옵니다.
이 글은 비단 종교계의 보수기득권자들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좀 아는 체하는 교수와 자꾸만 헛소리를 늘어놓는 언론인을 향한 죽비이기도 할 것입니다.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민사네 아우대표 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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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스러운 충고에 대하여>
- 박충구(감신대 명예교수, 민사네 대표)
1.
가끔 개신교 목사나 장로가 내게 공개적으로 지극히 사적 충고를 하는 경우를 겪는다. 내가 완벽하여 정치적 현실과 관련된 사안과 권력에 대해 비판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순수하여 맑고 죄가 없는 이라야 사회 불의를 지적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그 이상한 전제는 성서적 근거도 없고, 동시에 아무런 사회 윤리학적 정당성도 없다. 그저 본인의 불편한 사적 감정을 드러내는 소리라고 여겨진다.
이런 류의 문제 제기는 정작 우리사회에서 불의를 척결하고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권고다. 이런 부류는 대부분 사회 불의에 그저 눈을 감거나, 무감각해진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로, 불의한 사회를 더욱 불의하게 방임하는 기능을 한다.
2.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이들이 있다.
불의한 자,
불의를 옹호하며 이득을 보는 자,
불의에 비겁하거나 소심하여 눈 감는 자,
불의를 인식조차 못 하는 자,
불의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는 비관론자가 있고,
세상은 다 그렇고 그렇다는 회색분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불의에 저항하는 자,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비판하고 연대하는 자,
불의에 저항하다가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자기 삶을 바치는 이도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자의 뒤통수를 치는 자,
불의에 저항하는 자를 반사회적인 자라고 여기는 불의한 자도 있다.
나는 묻게 된다. 이 분은 어떤 사람인가?
3.
나는 내 자신을 한국인, 기독교인, 목사, 교수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민주주의와 기독교 사회윤리 사상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주의 이해에는 여러 사상가와 연관된 다양한 논의가 있겠지만, 짧게 내 방식으로 요약하자면, 민주주의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홉스의 인간론에 더하여, 폭력 없는 공동의 생존을 위해 합리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정치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그러므로 다양한 폭력에서 인간을 해방한 일종의 해방 사상이다. 민주주의가 인간을 권력, 권력자의 자의에서 해방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자의를 통제할 수 없으면 민주주의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처럼 박살이 나는 법이다.
권력자의 자의를 막기 위한 제어 장치가 삼권분립이고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사상이다. 인권 중에서도 특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건강을 재는 척도다. 이 권리들은 통제적 권력, 권력자를 향한 대척적 권리라는 성격을 가진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기존 권력과 제도와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꿈꿀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맡긴 권력이 권력자에 의하여 오남용될 때 이를 비판할 자유, 그리고 만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할 법치주의가 법관의 자의에 의해 그 공평성이 위태로울 때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만일, 민주사회의 기본권에 속하는 사상과 표현과 비판의 자유를 특정 개인이 선하거나 완벽한 존재여야 행사할 수 있다는 소리를 누가 한다면, 나는 좀 무례하지만 무식하기 짝이 없는 개수작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조건이 있을 수 있다면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4.
나는 나에게 목사스러운 충고를 하는 이의 타임라인에 들어가 그가 누구인지,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이들은 인간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류가 대부분이고, 조야한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반민주적 행태와 습성에 찌든 목사나 장로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들을 민주사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자의족이라 여긴다.
민주적 규범에 대한 기초 소양이나 상식을 결핍하고 있다. 이들은 교단 권력이 개인의 명예나 자기 집안의 훈장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온갖 비리와 성직매매가 도처에서 일어나도 그저 침묵할 뿐이다. 심지어 성직매매를 주선하거나 가담하여 그 방법으로 목사직을 얻은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이 성서에 흐르는 예언자적 소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처세술로 손해 볼 일은 피하고 이익이 생길 기회에는 기웃거리며 산다. 목사로서 비루한 삶이다. 이들은 교회 내 만연한 불의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교회 외적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런 교회, 목사를 비판하는 소리가 얼마나 없으면, 나같이 은퇴한지 오래된 원로 목사가 어쭙잖은 소리를 내겠는가. 한국 교회가 너무나 한심하다.
5.
목회의 소임이 교회 내 신자들의 영적 돌봄이 그 첫째라면, 그 신자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민주적이고 정의로워야 그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서로 신뢰하며 공평를 행하지 않겠는가? 신자들의 각박한 수입에서 각종 헌금을 우려먹으면서 기껏 한다는 짓이 교회 감독직을 탐하느라 신자가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물 쓰듯 하는 목사가 위대해 보이고, 그렇게 당선된 자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로 여겨진단말인가? 교회의 부패는 사회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부패하면 사회의 부패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디 목사스런 언변을 버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검찰 권력의 오남용이나 윤석열 김건희 권력자의 부패를 나무랄 신앙 양심을 견지하기 바란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목사스런 목사가 아니라, 사람의 권리가 무엇인지, 정치가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민주주의자가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가 없어서 사회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악이 내 가족, 이웃, 내 민족을 위해 하므로 비판하는 것이다. 내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탐욕스러운 목사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내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해악을 끼치고, 기독교에 대한 공신력을 실추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며칠 쉬려고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어느 감리교 목사가 올린 글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이 글을 쓴다.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자의족(恣意族)시대는 이미 오래전 지났다는 것을 부디 인지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