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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장 4-6절. 신약의 직분자는 성령님을 따라 사람을 살림. 요약설교
오늘은 <신약의 직분자는 성령님을 따라 사람을 살리는 자>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5절.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참 사도라는 확신을 가진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확신 있게 설 수 있는 사도직을 가진 사도라는 것인데, 이러한 확신은 자신의 지식이나 공로나 인간적인 자격 때문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6절.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사람을 율법으로 죽이는 역할을 하는 거짓 사도들이고, 바울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성령님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심령을 살리고, 죄와 정죄에서 구원하는 참된 사도임을 주장합니다.
4절.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1.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참 사도라는 확신을 가진 것은 자신의 지식이나 공로나 인간적인 자격 때문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확신이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의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빌 4:13).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본 절은 요엘 2장 11절의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는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며, 그 때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스스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한 가운데서 만족함을 가졌습니다.
즉 게바파의 지도자들이 추천서 문제를 가지고 강력한 도전을 해 왔을 때, 만일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께 대한 굳건한 신앙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확신이 없었더라면, 넘어졌을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확신과 만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적자들에 대해서 대항하고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주 안에서 평안을 가졌습니다.
2. 다윗도 그랬습니다.
원래 다윗은 적군을 대항하여 전쟁하고 원수를 죽이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인을 대항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시편 37:5-10.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3.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이복동생인 자기를 미워한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멀리 도단까지 찾아간 요셉을 형들이 잡아서 노예로 팔아버렸을 때, 인간적으로 큰 실망과 비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죄 없이 감옥에 갇혔을 때, 어쩌면 신앙적인 회의와 세상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했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역경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았고, 또한 좋으신 하나님께서 형들과 가족과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계획하신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 45:5,9. 50:20)
4.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은 원래 왕족이었지만, 어린 나이로 동족들이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성전과 왕궁이 불타는 국가의 몰락을 경험하고 외국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럴 때 인간적으로는 커다란 상처와 절망을 느꼈을 것이고, 신앙적인 회의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이방 나라의 총리가 되었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간신배들의 모략에 의해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인간적으로는 신앙적 회의와 왕이나 동료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속 기도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려갈 때도 주님과 동행하므로, 사자굴에서 살아났고 다시 대적들을 물리치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대적자들이 추천서 문제로 자기를 거짓 사도라고 매도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4절).
그래서 아무리 대적자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고 또 거기에 미혹된 고린도 교인들이 아무리 바울을 의심한다고 해도, 바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적자들은 바울에게 만일 바울이 참된 사도라면 예루살렘교회의 야고보 장로나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에게서 바울이 참된 사도라는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6. 예루살렘교회의 야고보 장로나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도 바울을 자기들과 대등한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하고 교제의 악수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8-9절에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서로 친교의 악수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인 사도들에게 가서 확인서를 떼다가 고린도 교회에 갖다 바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2-3절에서,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바울이 사도임을 확인시켜주는 그리스도의 추천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4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7. 이처럼 중요한 것은 바울 자신의 확신과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귀가 시험을 할 때, 우리가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불안하고 싸움을 하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확신을 가지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10장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8. 한번은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느라고 천주교 수백만 군대와 싸움을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때 마귀가 루터를 낙심하게 하려고 온갖 루터의 죄악못을 적어서 벽에 붙이더랍니다.
그러나 루터는 “예수의 피”라고 외치면서 붉은 잉크병을 벽에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마귀가 사라지더랍니다.
그래서 루터는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는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즉 악한 마귀가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은 예수님이시니, 우리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서 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과 같이 거짓 사도로 몰리는 절대적인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요셉과 다니엘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더욱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9. 바울은 자신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였으나 자신의 확신의 근거가 자신의 재능이나 성결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심령 속에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은 인간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주 대하여 말하는 심정에서의 확신이요, 비판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확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F. G. Carver).
4절의 강조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Christ)이고, 5절의 강조점은 ‘하나님께로부터’(from God)입니다.
5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1.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하고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우리가 성공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재물을 얻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우리가 권력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해도, 하나님이 크게 하시고 높여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역대상 29:11-12.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자기 능력으로 바벨론 도성을 건설한 줄 알고 자만했다가 왕궁에서 쫓겨났으나, 하나님께서 천하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다시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 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한 한나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무엘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우리가 몇 살까지 살 것인가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심지어 모든 동식물과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도 없고, 내일 일을 염려할 것도 없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마태복음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람이 계획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발걸음을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나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2.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9:23-24.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전서 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까지 주셨고,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4.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악인 때문에 하나님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악인도 적당히 사용하신 후에 곧 처벌하실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시편 37:5-10.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5. 바울 사도는 자기를 대적하여 거짓 사도라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즉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받은 사도라는 추천서를 받아가지고 왔다고 자랑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장악하려는 율법주의자 거짓 사도들에 대해서, 바울은 글자로 쓴 추천서는 없을지라도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추천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문자적 추천서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도로 세우셔서 고린도 교인들을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 거짓 사도들이 문자적 추천서를 자랑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을 의지한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6. 그러므로 우리들도 언제나 바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차를 운전하다가도, 혹시 길이 막히면 사람에게 성질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샤 왕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잠시 하나님께 묵도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18.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처럼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지혜와 능력도 받으셔서 만사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1. 3절에서 ‘돌비와 심비’의 대조가 6절에서는 ‘옛 언약과 새 언약’, 그리고 ‘율법과 복음’으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옛 언약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돌판에 새기신 율법 언약을 가리키고, 새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복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옛 언약인 구약은 단순히 율법 언약이고, 신약인 새 언약은 은혜 언약이라고만 축소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씨인 메시아를 통해서 구원의 복을 주신다는 언약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15, 갈라디아서 3:16: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구약시대에의 성도들도 언약(오실 그리스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율법의 공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말씀한 대로,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를 얻었고, 노아도 역시 믿음으로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옛 언약과 새 언약은 근본적으로는 다름이 없습니다.
단지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 언약은 복음과 다릅니다.
즉 율법 언약은 죄인을 회개시키는 것이고, 복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모세의 율법 언약은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살고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신 4:40. 5:33 등).
이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의로운 행위이고 복을 받을 행위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더욱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에게 주신 율법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고, 더욱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즉 갈라디아서 3장 15-22절의 말씀처럼, 모세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은혜 언약으로 더욱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이처럼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 조항들은 인간이 죄임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들어서 인간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조항을 지키는 것은 의로운 행동이지만, 율법 조항을 다 지켜서 자신의 힘으로 완전히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 구원을 얻겠다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인간의 죄성과 무능력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4. 바울은 자신을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옛 언약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뚜렷이 구별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직분은 엄격한 율법 조항에 따라 수행하는 직분이므로 ‘율법 조문의 직분’이고, 신약의 직분은 성령의 능력에 따라 수행하는 직분이므로 ‘영의 직분’입니다.
율법 조문을 고집하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의 추천서는 문자(의문)로 기록되었으나, 새 언약의 직분자인 바울의 추천서는 성령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율법 조문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었지만, 새 언약의 성령님은 예수를 소개하고 사람에게 죄 용서와 영생으로 살리는 분입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
1. ‘율법 조문’(letter)이란 원래 율법이 기록된 돌판과 모세가 기록한 율법 조항들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여호수아 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2. ‘영’(성령, the Spirit )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 판에 기록하신 법(인간이 죄인임과 예수님을 통한 죄 용서와 구원) 즉 복음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신약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레미야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3. 율법과 은혜
율법은 살인자를 만날 때 그가 도피성으로 도망가지 않는 한 그를 죽이지만, 은혜(성령)는 살인자를 만날 때 도피성 되신 예수를 소개해주고 회개하여 생명을 얻게 해줍니다.
율법은 과도기적 사명을 받아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유대인들은 이 과도기적 율법 아래 살면서 국민적으로 생명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함으로써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성과 무능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용서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것은 구약시대에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이나 호세아 선지자 등을 통해서 계시하신 새 언약(신약 복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아직도(예수님 당시와 사도 시대와 그 이후) 정죄하고 죽이는 율법 조문에 매여 자신의 힘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대강령은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4.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보려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선이 나오지 않고 자신은 사망의 몸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로마서 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예수님과 성령님은 나를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고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로마서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을 따라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서 내 힘으로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내 속에서 더욱 죄의 욕망이 생기고 죄책감이 더욱 생기고, 남을 정죄하게 됩니다. (율법주의 생활)
반면에 율법도 무시하고, 성령님도 무시하고, 내 욕심대로 살면 싸움과 성적 방탕과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자유주의 생활)
그러나 예수님 믿고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면, 내 마음도 평안하고, 이웃에게도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
5.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씌워서 사람들을 종노릇 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된다.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들의 규례를 지켜야 참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에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이나 음식법 규정이나 성전 제사나 성결법 규정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종노릇시켰습니다.
이와같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율법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을 종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으로써 구원한 고린도 교인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마치 자식을 낳아 기른 엄마가 자녀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유모처럼 길렀고, 물질과 생명까지 주려고 했지, 군림하고 착취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8.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정죄하고 착취하려는 율법주의 이단자들을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마음에 화평을 누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사회생활을 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