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령비牛靈碑 앞에서 / 김창남 13
1. 청도군 이서면에서 대구로 들어오다 보면 팔조령을 만난다. 그 고갯마루 입구쯤에 ‘조계종 여래원’이라는 조금 색다른 사찰이 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우령비牛靈碑’라고 새겨진 높다란 비석이 눈에 띈다. 소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주지 스님의 서원誓願으로 세운 비라고 한다.
2. 오늘도 팔조령을 넘다가 문득 그 비석 앞에 섰다.
“소는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일하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등 온몸을 보시하고 떠납니다. 그러니 당연히 소의 혼령을 달래야지요.”
오래전에 들었던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윤회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그 말씀은 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간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도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많은 도축장 관계자나 축산업자, 가죽업 종사자들이 주로 이곳을 찾아 기도한다고 한다. 소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3. 상주에는 누에의 영혼을 위로하는 잠령비蠶靈碑가 있다. 잠업인 들이 죽은 누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는 것이다. 비단을 얻기 위하여 고치 속의 번데기를 죽여야만 하는 잠업인 들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올리는 제이다. 누에처럼 작은 생명에게까지 고마움과 미안함을 잊지 않는 상주 잠업인 들의 그 깊은 뜻을 새겨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4. 우령비 앞에 서니 문득 인간에게 다른 생물의 생명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본래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도록 지어졌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한다 해도,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그 생명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람들이 우령비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 말이다.
5. 청도는 소싸움으로도 유명하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소는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가. 소 덕분에 먹고 사는 소싸움 관계자들도 이 우령비 앞에 와서 기도하는지 궁금해졌다.
오래전 화원유원지 모래사장에서 단 한 번 소싸움을 본 적이 있었다. 거대한 소들이 머리를 부딪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소싸움은 물론 닭싸움이나 스페인의 투우 경기 심지어 권투 경기조차 보지 않게 되었다. 소싸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격투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때리고, 피 흘리는 것을 즐기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 때문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소싸움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우령비 앞에서 가볍게 두 손을 모으고 목례라도 한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니 혼자 부질없는 웃음이 났다.
6. 오래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방의 한 고찰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들어가는 길목의 시냇가 다리 아래에서 아이들이 작은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다. 절을 찾는 사람들이 참배하기에 앞서 방생하기 위해 사 간다고 했다. 새벽에 잡은 고기라 저녁때까지 팔리지 않으면 도로 물속에 넣어준다고 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물고기들이 기력이 다해 살아남는 고기는 몇 마리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방생을 위하여 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물고기를 잡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고기는 아무 일 없는 듯 평화로이 살 텐데. 방생을 위해 물고기를 사는 행위가 과연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금 사서 방생하면 그 물고기는 당장 살아남을 것이고, 아무도 사주지 않으면 죽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봉지 속에 갇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도 한 봉지씩 사서 놓아주었다. 파는 아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게 생업이니까.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절로 올라갔다.
7. 지금도 전국에서 ‘은어 축제’, ‘쏘가리 축제’, ‘얼음낚시 축제’ 등 생명을 유희로 이용하는 축제가 많이 열린다. 언젠가 방송에서 산천어 축제를 본 적이 있다.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체험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즐거워했지만, 물 밖으로 내던져지고 밟히는 산천어들을 보며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추억일지 몰라도 산천어에게는 생사를 다투는 처절한 사투다. 생명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즐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군청에서 나온 직원은 축제 참가자가 180만 명이 넘었고, 연간 천억 원이 넘는 경제 유발효과를 얻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8.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자에게 사냥은 놀이가 아니라 생존이다. 문득 인간이 사자보다 더 잔인한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생선도 좋아하고, 특히 민물고기 매운탕은 즐겨 먹는다. 그래서 생명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9. 우령비 앞에 서니 팔조령의 바람이 비석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 바람결에 작은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의 도움을 받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다른 생명보다 특별한 이유는 더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희생에 감사할 줄 알고 미안해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 차에 올라 팔조령을 내려오는 데 오늘따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우령비는 단지 죽은 소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라기보다, 생명의 귀함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일깨우는 목탁 소리였다, 그 깊은 울림이 오래도록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첫댓글 청도 팔조령에 우령비가 있군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한다 해도,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그 생명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는
바람직한 생명의식을 갖고 있음에 동감합니다.
우령비는 단지 죽은 소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라기보다, 생명의 귀함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일깨우는 목탁 소리였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절은 조계종 종파가 아니라서인지 분위기가 일반 절과는 많이 다릅니다.
요즈음은 문이 잠겨 있더군요, 미리 전화를 하고 와야 열어준다고 합니다만
단지 우령비와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가끔 찾아보곤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