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니면 대화리 화치에 있는 조선조때 자선사업가인 한양인 조륵의 무덤을 지키는 묘비입니다
묘비는 후손들에 의하여 1995년에 세웠습니다.
조선 인조(仁祖)[1595~1649] 때 태어난 조륵(趙肋)의 묘가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에 있다. 조륵은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음성군에서 출생했다고 하나 전에는 그곳이 충주목에 속해 있어 충주의 자린고비이다. 그는 재물을 절약하여 어진 인심을 베풀었으므로 자인고(慈仁考)라 하며, 그의 묘소에는 자인고비(慈仁考碑)의 비석이 있다.
본관은 한양(漢陽). 선조 때 성균진사(成均進士)를 지낸 조경(趙經)의 4세손이며, 음성에서 중부참봉(中部參奉)을 지낸 조유증(趙惟曾)의 넷째 아들이다. 조륵은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조륵은 평생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숙종 때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주리자 모은 재산을 나누어 진휼하니, 호남과 영남 양도의 굶주린 백성 만여 명이 구제되었다. 이에 지방민이 비를 세워 덕을 칭송하였고 관청과 향리 등에서 서로 표창하여 칭송하니, 임금이 이를 듣고 상을 내리고 여러 차례 명하여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조륵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 입관을 위하여 상여를 운구하는 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상여의 앙장(仰帳: 상여 위에 포장같이 덮은 천)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를 따라 가보니 묘 터가 좋아 처음 잡았던 터는 두고 앙장이 떨어진 곳에 묘를 조성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조륵이 죽은 후 조륵의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이 비를 세웠으니 비의 이름이 ‘자인고비(慈仁考碑)’였다. 자인고비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소재한 신덕저수지(용원저수지) 근처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저수지에 잠겨 고증할 길이 없다. 1995년 10월 후손들에 의해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 뒷산 중턱에 자인고비가 다시 세워졌다.
금왕읍 삼봉리 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자린고비 조륵선생의 유래비입니다.
비석의 모양이 자린고비 설화로 널리 알려진 물고기 조기를 닮은 모습을 하여 더욱 흥미있습니다.
첫댓글 옆에 있는 장어구이 식당에서 연기가 많이 나오는 때를 잘 맞춰 식사를 합니다.....^^
지금은 물려서 고때를 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