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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2020년 12월 27일, 성탄 후 제1주 (송년 주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이틀)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0년 12월 27일, 성탄 후 제1주(송년 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성탄 후 제1주 (송년 주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시간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27장(빛나고 높은 보좌와)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 교독 시편 148:1~14절까지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 함께 기도합니다. [예배양식서]
(*. 실시간 예배에 참석하시지 못한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의 무가치함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치유하소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우리를 용서해 주소서.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치유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세주께서
궁핍함 가운데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의 탐욕과 주님의 길을 거부한 것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치유하소서.
목자들은 자신들의 양떼를 버려두고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우리의 사리사욕과 비젼 없음을 용서해주소서.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치유하소서.
지혜로운 자들은 왕되신 예수를 찾기 위해
그 별을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지 않았던 것을 용서해 주소서.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치유하소서.
모든 치유와 용서의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아들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4:4~7절입니다. (성경)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 특별 찬양] 하늘소망 (30인이 부르는 하늘소망)
*. 말씀 선포: 아들(딸)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들어가는 말
성탄 후 제1주(송년 주일)를 맞이합니다.
오늘 본문 4-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은 ‘아들(딸)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자의 몸을 빌려 율법 아래로 오셨다고 전해줍니다.
아들의 명칭을 얻은 것은 예수님께서 공(公) 생애를 시작하신 때, 곧 요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시던 때 정해진 것입니다. 그 때의 장면을 마태복음 3:7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하나 밖에 없는 고유명사로서의 이름이라면, ‘아들’은 일반 명사의 이름으로,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아무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일반명사라는 것을 주목해 주십시오.
성경에서, ‘아들(딸)’은 종의 반대말로 쓰입니다. 따라서 ‘종으로부터 아들(딸)로 변화’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아들(딸)과 종, 그 차이점을 살펴봅니다.
2. 아들(딸)과 종
아들(딸)과 종의 차이점을 삼위의 지평에서 살펴봅니다. [*. 이 세상 만물 모든 것은, 예외없이, 삼위의 지평에서 살펴야 부족함없이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 성부의 지평에서, 율법을 넘어섬과 율법 아래 있음
성부의 지평에서, 아들(딸)은 율법을 넘어서 있습니다. 종은 율법 아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딸)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은 ‘하라, 하지 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딸)이 율법을 ‘넘어서’ 있다 함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딸)도 율법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지킵니다. 그러나 종은 그저 율법이 정한 대로 따라 할 뿐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아들(딸)이 율법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라는 법)보다 사람이 더 우선이라고 주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2:27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니코스 카쟌차키스는 그의 소설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프란체스코 관련 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그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금식할 때의 일입니다. 계율에 따라 40일을 작정하고 금식을 하는데, 20일 굶은 한 제자가 배고픔을 못 이겨 몰래 죽을 먹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제자가 프란체스코에게 고자질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함께 금식하던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죽이 있는 곳을 다가가 죽을 떠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투는 것보다 차라리 계율을 어기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마크툽>에서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순례자가 거센 폭풍우 속에서 조그만 마을을 가로지르다가, 집 한 채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순례자는 집 가까이 가보았고, 한 남자가 불타는 거실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 순례자가 외쳤다. ‘당신 집에 불이 났습니다.!’ ‘나도 압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그런데 왜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까요. 비가 내릴 때 밖에 나가면 폐렴에 걸린다’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답니다.”
여기서 어머니의 말씀이 율법이 되면, 그리고 이 어머니의 아들이 율법주의자라면, 불이 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어머니의 뜻(마음)이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이 어머니의 아들은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시선이 과거에 가 있는 사람을 율법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라 하고, 미래에 가 있는 사람을 반율법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라 합니다. 시선이 현재에 있는 사람을 각자(覺者)라 합니다. 율법주의도 반율법주의도, 보수주의도 혹은 자유주의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율법도 반율법도 ‘넘어서’ 있어야 합니다. 넘어선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현재에 있다는 뜻입니다. 종의 시선은 ‘현재’없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딸)의 시선은 “현재”에 발을 붙이고 과거나 미래를 돌아봅니다.
에스파니아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가 썼습니다.
“그때그때 한걸음씩 가라.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결코 다시 밟지 않을
오솔길이 보인다.
여행자여, 그것은 길이 아니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 율법 아래에서 나와, 깨달음(覺) 아래에서 율법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2-2. 성자의 지평에서, 유업이 있음과 없음
성자의 지평에서, 아들(딸)은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받지만, 종은 받을 유업이 없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회사로 치면 종은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은 그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은 회사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할 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들(딸)은 회사와 회사에 속한 사람들까지도 책임을 집니다. 회사가 망하면 자신도 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삶(life) 혹은 생명(life)에 있고, 이를 위해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에서 기르던 거위가 날마다 황금알을 하나씩 낳자, 거위의 뱃속이 온통 황금으로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주인이 욕심이 나서 거위를 잡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욕심이 나서 거위를 잡는 것도 큰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다고 하면, 그 황금알을 나누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집안이 온통 황금알투성이가 될 것이고, 그렇게 투성이로서의 황금알은 결국 배설물만 못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사람에게 계속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젖을 짜지 않은 젖소는 젖이 말라버리는 법이고,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8절에 나오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에서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지혜롭다 칭찬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오늘 표현으로 하면 ‘아들’로서 행한 것입니다. 비록 ‘이 세대의 아들’이라 불리웠어도 말입니다.
[*. Ref. 누가복음 16:1~8절입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마태복음 20:1~16절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들어 온 품꾼들은 ‘아들’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필요한 만큼’이 아닌 ‘일하는 만큼’ 받겠다는 천상 종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포도원에 대한 책임도 없고, 필요한 만큼의 삶을 주었다는 감사도 없습니다. 게다가 일한 만큼 받고도 남과 비교하는 원망의 마음으로 욕심을 내니 주인에게 꾸중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 ref. 마태복음 20:1~16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종이 아니라, 아들(딸)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3. 성령의 지평에서, 성령을 받음과 못 받음
성령의 지평에서, 아들(딸)은 그 마음에 성령이 있지만, 종은 성령이 없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17)”는 말씀이 임합니다.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에도 아들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7:5절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영이 임할 때에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들과 아버지’라는 새로운 관계로 열렸습니다. 이 이후로,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호칭인 “여호와”가 사라졌습니다. 종의 관계인 ‘정의를 바탕으로 한 사랑(정의사랑)’이 아니라, 아들(딸)의 관계인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정의(사랑정의)’라고 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그렇게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대답합니다. ‘그건 매우 간단합니다. 대리석 덩어리를 바라볼 때, 나는 그 안에 있는 조각품을 봅니다. 그런 다음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기만 하면 되죠.’
대리석 덩어리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석 안에 만들어져 있는 형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같은 것 같지만 천지 차이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과 후, 구약과 신약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정의사랑)과 (사랑정의)는 결국은 같은 것 같지만, 앞의 것은 종의 지평이고 뒤의 것은 아들(딸)의 지평이 됩니다.
오쇼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존재 계와 최대한 많이 접촉하라
나무 곁에 앉아 나무를 껴안고 나무와 하나가 된다고 느껴보라
수영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자신이 물에 녹아 든다고 느껴보라
합일이 일어나게 하라.”
합일의 느낌을 알게 되면 자신이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문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일의 상태에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합일에 이릅니다.
성령 충만한 아들(딸)의 삶을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가는 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아무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꼭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일반 명사의 새 지평은, 1) 과거의 ‘율법’과, 미래의 ‘자유’을 놓치지 않지만, 그의 시선은 늘 현재의 ‘깨달음(覺)’에 있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눔의 비밀을 간직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욕심으로 거위를 죽여도 안되고, 나누지 못해 배설물보다 못한 것이 되게 해서도 안됩니다. 나눔이 있는 황금알이 되어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복이 됩니다. 이와 같이, 책임을 갖고 하나님 나라를 꾸려갑니다. 3) 성령을 늘 모시며, 하나님과의 합일의 삶을 삽니다.
2020년을 보내면서, ‘아들(딸)’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보낸 시간이 혹 있었는가 돌아보고, 2021년 새해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아무개’로서 온전하게 주의 나라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가 302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1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