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내드렸듯 마지막 시간에는 인터뷰 글을 과제로 합니다.
인터뷰 경우 섭외 등 시간이 더 걸려서 미리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분량은 똑같고 주제는 자유입니다.
글은 문답형보다는 아래 예시글처럼 산문형으로 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늘 은유가 이야기해준 인터뷰 과제를 하는 이유와 저번 기수 학인의 인터뷰 글을 예시로 덧붙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인터뷰 과제를 하는 이유
- 인터뷰는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인터뷰 녹취를 풀고 다시 편집하며 이야기를 넣고 빼는 과정에서 글쓰는 사람도 자신이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이 훈련이다. 그래서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드러나는 글이기도 하지만 인터뷰어의 욕망과 생각이 드러나는 글이기도 하다.
- 인터뷰는 글쓰는 사람이 해야 하는 중요한 훈련이다. 듣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에 반응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지 살펴보는 과정으로 삼아보자.
-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는 방대하기 때문에) 내가 이 인터뷰 글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 그로써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고 드러나게 된다. 타인을 통해 나를 아는 일이 인터뷰이다.
[9기 인터뷰 예시글]
미자의 이름 - 혜원
86년생 혜원은 61년생 미자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5년 전 회사 신입이었던 혜원은 공사 현장에 다녀오며 신발에 잔뜩 흙을 묻혀왔다. 건물 안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미자는 복도에 있는 흙 자국을 따라 닦아내며 사무실 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혜원은 밀걸레는 끌며 바닥을 청소하던 미자와 눈이 마주친다. 바닥을 더럽혀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신입과 괜찮다며 연신 바닥을 닦아주는 입사 선배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혜원은 그 후 매일 마주치던 미자를 이렇게 기억한다.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미자,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묻는 미자, 옥상 텃밭에서 마음껏 상추를 가져가라고 말해주는 미자, 안 해도 되는 남의 일까지 도와주는 미자, 누구나 기억할만한 또렷한 눈빛을 가진 미자.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미자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정년퇴직을 하게 되어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자리에 없더라고 했다. 혜원은 미자의 가늠하기 어려웠던 나이가 원망스러웠다. 정말 몰랐다고 아쉽다는 말만 반복하며 성급하게 인사를 나눴다. 혜원은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미자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자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60대 미자와 30대 혜원이 첫 커피를 마시며 함께 미자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6년, 미자의 남편이 코피를 연일 흘렸다. 이비인후과에서 3번이나 코점막을 때웠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내과를 거쳐 찾아간 큰 병원에서는 남편의 간 상태가 심각하다며 색전술을 시행했다. 분명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는데, 시술 후 남편의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의사들은 그제야 추가 검사를 했고 뇌경색 진단을 내렸다. 그들은 환자의 기저질환 탓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미자의 남편은 그해 4월 돌아가셨다. 첫 내원 3개월 만이었다.
자녀 셋을 부양해야 하는 미자는 남편 발인을 마치고 바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애도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일하던 남편이었기에 그 안에서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담당자들은 채용은 어렵다고 했다. 미자는 금방 수긍해버리고는 발걸음을 돌렸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주친 민주노총 지부장님은 미자의 사정을 듣더니 노력해보겠노라 했다. 미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크린토피아에서 일을 시작했다. 2달 정도 되었을 무렵, 지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8월부터 출근하랍니다!” 미자는 3개월 만에 남편이 일하던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미자는 성남에서 신림동으로 출퇴근을 했다. 학생들과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건물 청소를 마쳐야 하기에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요즘에야 일찍 출근하면 퇴근도 일찍 시켜주지만, 그때만 해도 새벽같이 출근해도 오후 6시에 맞춰 퇴근해야 했다. 미자는 싫은 소리도 듣기 싫고 남들보다 일도 더 많이, 잘해놓고 싶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미자는 사무실, 복도, 화장실을 청소하고 닦았다. 건물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무거운 짐을 위층까지 직접 날라야 했다. 요즘 같으면 남자 직원들도 카트로 끌고 다녀야 하는 무거운 짐 들까지 손수 옮겼던 미자는 그때는 다 그랬다고 말한다. 건물 안으로 한정된 업무 분장이 있는데도 미자는 눈이 많이 오면 바깥에 나가 눈을 함께 쓸고 닦았다. 계산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 미자의 방식이었다.
미자는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은 집에 있었다. 당시 막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아이가 혼자 가스 불 잘 켜서 밥 잘 데워먹고 학교에 잘 갔는지 챙길 사람이 없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집에 엄마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이 미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원망스럽게도 하루에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새벽에 출근해서 일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30분이었고, 애들 먹을 밥하고 씻고 나면 금방 저녁 10시였다. 아들에게 “엄마 지금 자야 하니까 어서 자자.” 했다. 당시 고 2였던 둘째 딸이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오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아이들과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도 없이 증발하듯 지나가 버렸다. 한 번은 첫째 딸이 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 어릴 때는 많이 때려놓고 왜 쟤들(동생들)은 안 때려?” 미자는 대답했다. “그러려고 해도 그럴 시간이 없다. 진짜야.”
미자는 주로 차를 가지고 다녔다. “시간이 돈이야”라고 말하는 미자는 기름값과 톨비를 내더라도 출퇴근 시간을 아껴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동차 사고가 있었다. 보험사에서는 차를 빌려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미자는 괜히 상대 보험료만 올라가는 거 아니냐며 거절했다. 당시 46살이었던 미자는 그날 처음 첫차에 올랐다. 차 안의 사람들을 빙 둘러보니 대부분 이른 시간에 일하러 나가는 청소 노동자나 힘든 일을 하는 분들로 보였다. 그 순간 차를 타고 출근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청소 일’을 하는 내 직업에 대한 현실 감각이 비로소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쩌다 이 한복판에 있게 된 거지.” 미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자’ 내 이름으로 살고 싶은데, 이제 그 이름은 잃게 된 것만 같았다. 내가 아니라 그냥 ‘아줌마’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15년이 지난 지금, 미자는 말한다. 지인들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학교에서 일하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일할 수 있어서 좋았어.” 이름을 잃지 않고 이미자 선생님으로 불리기 위해 했던 미자만의 노력을 떠올린다. 그리고 직장을 갖게 해주신 분, 포기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분들의 얼굴도 함께 생각한다. 도움 주셨던 분들이 한 분씩 퇴직하실 때면 고맙고 미안한 기억이 떠올라 내내 울었다. 따뜻한 마음에 빚진 만큼 미자의 아이들은 성실하고 탐스럽게 자랐다. 딸 둘은 결혼을 했고, 막내아들은 이제 26살의 청년으로 장성했다. 그동안 내가 참 잘 살았다 생각한다. 몸 아끼지 않고 일해 온 미자는 일을 쉬게 되니 안 아픈 곳이 없다. 오전에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오후에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 요즘이다.
미자와 혜원은 아이스 커피를 연거푸 마신다. 15년치 미자의 시간을 걸어온 듯하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셨느냐는 첫 질문에 미자는 덤덤하게 말을 내뱉다가 펑펑 울었다. “내가 왜 울지”하며 고개를 숙여 눈물을 찍어내던 미자가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혜원의 질문에 답한다. “너무너무 힘들었어. 진짜 나 많이 힘들었어.” 미자와 혜원은 눈물 찍어내기를 멈추고 마음껏 운다. 가늠되지 않던 미자의 시간이 일순간 눈앞에 펼쳐졌고 우리는 손을 잡고 그 시간을 함께 걸었다.
돌아오는 8월, 미자는 학교에서 5개월 계약직 청소 일을 다시 시작한다. 이제 쉬어도 되지 않겠냐는 말에 “놀면 뭐 하냐”고 답한다. 나중에는 둘째 딸이 아이를 낳게 되면 월급도 주고 퇴직금도 챙겨준다고 했다며 맑게 웃는다. 올해 환갑을 맞이한 미자의 얼굴에 46살 미자가 겹쳐 보인다. 46살 미자에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미자의 이름을 잘 지킬 거고 아이들 또한 잘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첫차에서 우는 미자를 안아준다.
※색전술 : 지난 2015년, 색전술 시술 후 뇌경색 발생 환자에 대한 대학 병원의 ‘의료진 설명 의무 위반에 대한 지적으로 일부 승소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미자 씨의 남편이 시술을 받았던 삼성병원에서는 색전술 시술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설명 및 시술 후 환자의 증상에 대하여 기저질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했다.
첫댓글 예시글이 있어서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혔어요. 인터뷰를 해본 적 없는데 하기도 전에 한 사람이라는 뭔가 큰 세계 앞에 있는 막막함이 드네요.. 대상부터 정해볼게요. 공지 감사해요.
아고. 메타포라 들어와 글 읽을 때마다 눈물바람입니다. 단락 끝마다 핑- 합니다. ㅠ_
혜원님과의 수업으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이 글만 봐도 혜원님의 따뜻한 성정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저...인터뷰 글에 인터뷰어의 느낌이나 생각은 (가능하면)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인터뷰 글을 편집하는 것 자체가 인터뷰어의 의견이다. 인터뷰어의 의견을 글에서 직접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선택. " - 오늘 수업에서 은유 답변 적어놓습니다~
누구를 인터뷰 해야하나 내내 정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네요.
제가 아는 분과 비슷한 성정을 가지신 미자님이 제 앞에 있는 것 같아 글을 읽는 내내 울컥했습니다.
저도 빨리 그분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 한참 동안 헤엄치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