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애증 관계 / 최종호
“아앙!” 가끔 깜순이가 불만이 있으면 내는 소리다. 미미와 깜순이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다. 아니 강아지가 아니라 개다. 덩치가 작아 내 눈엔 늘 강아지로 보인다. 둘은 껌딱지다. 한배로 태어난 자매여서 지금껏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혹여 산책을 하거나, 병원 가면서 한 녀석만 데리고 나가면 다른 놈이 안절부절 애타게 기다린다. 아내는 “하나가 잘못되면 남아 있는 녀석도 우울증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녀석은 자주 아픈 미미의 귓속을 빨거나 눈 주변을 핥아준다. 눈곱이 끼지 않도록 해서 좋고 귓병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떨 땐 심하게 싸운다.
개 껌이 원인일 때가 많다. 거실에는 고기만 뜯어 먹고 남은 간식 뼈다귀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데 심심하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미미는 이리 저리 씹어서 물렁해지게 만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켜만 보던 깜순이는 침이 잔뜩 묻는 것이 욕심이 나는지 슬그머니 다가간다. 그러면 미미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으르렁거린다. 이에 질세라 녀석도 따라서 그르렁거리다가 싸움이 일어난다. 뼈다귀를 먼저 갖고 놀지만 깜순이의 힘에 눌리는 쪽은 언제나 미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약자 쪽을 편든다. 자연히 힘 센 녀석이 야단을 맞는다.
그도 그럴 것이 미미는 2년 6개월 전에 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하루에 약을 두 차례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전 열한 시, 오후 다섯 시, 밤 열한 시, 새벽 다섯 시 이렇게 네 번으로 늘었다. 발작이 심해지면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거품을 낸다. 목과 몸도 뒤틀어지며 뻣뻣하게 굳어진다. 가끔 똥까지 싼다. 예전에 본 간질 환자 같다. 끝나면 기운이 없는지 비틀비틀하다가 축 늘어져 있다. 한참이 지나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혹여 제시간에 먹이지 않으면 그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도 세진다. 그러니 다툼이 일 때마다 약한 녀석에게 마음이 갈 수 밖에.
시간 맞추어 약 먹이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나갔다가도 그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들어온다. 처음에는 아내가 전담했다. 그러다 약 먹이는 횟수가 늘자 나도 동참했다. 네 차례 중에 두 번은 물약만, 두 번은 가루약도 같이 먹인다. 처음에는 시간이 되면 대충 눈치를 채고 소파 아래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어르고 달래야 겨우 나왔으나 지금은 받아들인다. 아내가 먹일 때는 쉽게 보였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힘들었다.
왼팔로 감싸 안은 다음, 주사기로 입 주변을 건드려 주둥이를 벌린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사기에 든 약을 쏘는데 약물이 입천장에 부딪쳐 팔과 얼굴에 튀기 일쑤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조금 천천히 밀어 넣는다. 가끔 입을 앙다물고 버티면 나도 모르게 아이 달래듯이 ‘아’라고 해 놓고 얼척이 없어 웃음이 나온다. 끝나면 간식을 주라고 졸졸 따라다닌다. 옆에 있던 녀석도 덩달아 얻어먹는다. 사또 덕분에 나팔 부는 격이다.
식사 시간에도 덕을 본다. 아내가 밥을 차리면 미미가 종종거리며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식탁에서 콩 하나라도 얻어먹을 요량이다. 의자에 앉으면 저도 올려 달라고 보챈다. 뭘 주지 않으면 발로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소파에 엎드려서 유심히 지켜보던 깜순이는 행여 미미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주는 낌새를 보면 잽싸게 달려온다. 이런 녀석이 약자를 봐 주기는커녕 뺏어 먹으려 하고 기선 제압하려드니 가끔 미운 마음이 든다. 지능지수가 서너 살쯤 된다고 하니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다.
같이 산 지 어느덧 9년, 사람 나이로 치면 이들도 중년이다. 그래서인지 따뜻한 곳을 찾는다. 전기방석을 켜놓고 앉았다 일어나면 어느새 한 마리가 차지하고 있다. 작은아들은 가끔 무위도식하는 녀석들을 쓰다듬으며 “너희들이 상팔자다.”라며 웃는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수의사가 “아픈데도 강아지가 그나마 버티는 것은 주인이 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단다. 미미가 발작하면 깜순이가 알려준다. 주변을 돌면서 낑낑거리는데 그 소리가 사뭇 다르다. 이럴 땐 녀석이 고맙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둘이 오래도록 잘 살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낮기 때문에 이별은 필연적인 것이지요.
마땅히 감내하고 키울 수밖에요.
아기에게 하듯 약 먹일때 "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습니다. 두 분의 따뜻한 성품 덕분에 미미와 깜순이가 생명을 이어가나 봅니다.
상팔자, 맞네요. 하하
따듯하신 두 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가게 오는 손님 중에 미미와 같은 병을 앓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너무 마음 아파했어요. 선생님과 사모님도 고생많으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처지라 집안 풍경이 눈에 그려집니다.
두 분 정성이 지극하네요.
강아지가 제발 아프지 말기를 바라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괜한 걱정이 한가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