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도미노 / 정선례
가슴이 항상 답답하다. 소화도 잘되지 않고 가슴과 가슴 사이 통증도 있는 것 같고. 약을 먹어도 여전하다고 했더니 친구가 일반병원 말고 한방 병원에 가보란다. 교수님이 손끝으로 눌러 아픈 자리를 찾아낸다. 거기요, 거기. 거기는 괜찮아요. 아앗! 아파요. 아픈 데를 정확히 짚어 낸다. 평소 불안과 긴장 상태에서 생활하느냐고 묻는다. 예전에 오랫동안 그랬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지낸다고 하니까 그때 화가 쌓여서 이런 증상이 있단다. 곧이어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가 이뤄졌고 사혈과 부항, 침, 물리 치료 처방이 나왔다. 사혈기로 아픈 부위를 반복해서 찌르고 그 자리에 부항을 붙여 뭉친 피를 빼냈다. 한결 가볍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건 요즘에도 여전하다. 아직도 불안이라는 싹이 다 뽑혀 나가지 않았나 보다.
내게는 가슴 아팠던 크고 작은 장면이 여럿 있다. 두 가지가 어제 일인 듯 생생한데, 그중에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초가을에 목격한 장면이다. 친척뻘 되는 친구 집에서 자고 그 아이집 마당에서 청 무화과를 책가방에 가득 따 담아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골목 어귀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흙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엄마를 발견했다. 머리가 희끗해진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본인의 울분을 가엷은 가족에게 표현해서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
서양 속담에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과 행복은 창문으로 나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영리했지만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고 한다. 가난이 되물림되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농촌에서는 맨몸으로 가시덤불 돌산을 개간해서 담배, 고구마 농사를 짓느라 밤낯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못 배운 한이 깊어서 서울 사대문안에서 자식 교육을 시키려고 땀으로 일군 피같은 땅을 버리다시피해서 종로에 이삿짐을 풀었다. 가진것없고 배우지 못한 부모님의 고생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만취해서 돌아오면 우리는 불안에 떨었다. 술을 잘못 배웠다. 모든 술 공장에 폭탄이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적도 부지기수다. 사춘기에 놓인 나는 모든 게 불만스러워서 벗어나려고만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한게 회한으로 남았다.
동생과 두 살 터울이다. 우리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잘 울고 예민했던 나와 달리 동생은 순둥이였다. 얼굴도 보름달처럼 동그랗고 웃으면 보조개가 쏘옥 들어갔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팔꿈치였는지 주먹이었는지 모르지만 때렸는데 하필이면 가슴이 맞았나보다. 사춘기 성장통으로 가슴에 젖몽우리가 생기는 시기였다. 많이 아픈지 가슴을 움켜쥐고 어깨를 앞으로 숙인 채 울었다. 그 장면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일방적인 폭력에 맞잡아 싸우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그당시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질때까지도 잊히지 않는 건 미안한 마음이 사무쳐서일것이다. 동생과 한 번도 그때 일을 말한적이 없다. 나간 날의 회한이 깊어서 늘 반성하며 살아야 하는 숙제가 내게 있다.
그즈음 잠자기와 책 읽기는 유일한 안식이었다. 그럼에도 밤이면 악몽을 꿨다. 무언가에 밤새 쫓기는 두려움에 자주 가위에 눌렸다. 이유는 충분히 있다. 다만 가족이기에 자세하게 나열하지 못할 뿐. 분명 내 예민한 기질적인 특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장면 하나를 평생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남자 어른들에게 적대감이랄까 그 비슷한 것이 있다. 직장에서 팀을 짜서 일을 하거나 입원 치료할 때 운동치료 선생님이 배정되면 여성을 선호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지금도 가끔 과거의 시간에 사로잡혀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말은 진리 중에서 으뜸이다.
첫댓글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물지 않는군요. 내가 부모 노릇을 잘 해야 하는 이유고요.
그래도, 요즘 안정되고 편안하다고 하셔서 다행입니다.
바쁜 중에도 예술과 자연과 문학을 즐기시는 선생님이 멋집니다.
여리고 예민한 걸
글이 받아 주었네요.
그게 바로 트라우마겠죠.
아버지에게서 받은 나쁜 기억이 남자라면 불편하게 하는 것.
이제는 그런 어른 안 계시니 마음 편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글쓰기가 선생님에게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할 것같습니다.
잊히지 않는 나쁜 기억들은 늘 불쑥불쑥 나오는 거 같아요. 오래 붙잡아 두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