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희(姬) / 허숙희
우리는 6남매다. 넷째인 남동생을 빼고는 모두 여자다. 그중 난 둘째 딸이다. 언니 이름은 양희(陽姬), 바로 밑에 동생 셋째는 경희(慶姬), 다섯째는 선희(善姬), 여섯째 막내는 명희(明姬)다. 희(姬) 자 돌림이다. 당시 딸 이름에 ‘희’ 자가 들어가면 한자 표기가 대부분 ‘여자 희(姬)’로 썼기 때문에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내 이름 숙희도 그런 줄 알았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당연히 그렇게 알았고 아무런 문제 없었다.
75년 3월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첫 직원회의에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앞서 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한자의 의미로 풀어서 말하길래 나도 따라 했다. ‘제 이름은 허락 허(許), 맑을 숙(淑), 여자 희(姬)로 맑은 여자 허숙희입니다. 잘 이끌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이름의 끝 글자를 당연히 ‘여자 희(姬)’로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교장 선생님이 교장실로 호출했다. 영문도 모른 채 들어가니 내가 제출한 교육 공무원 인사기록 카드와 호적 등본을 양손에 들고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선생은 처음 봤다.”라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 말인 즉슨 인사기록 카드의 한자 이름이 등본과 다르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끝 자가 ‘빛날 희(熙)’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영문은 모르겠으나 호적대로 해야 한다며 당장 고치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허숙희(許淑熙)가 되었다. 안 좋은 소릴 들었지만 바뀐 끝 글자의 한자 뜻인 ‘빛나다’가 싫지 않았다. ‘맑게 빛나는 허숙희!’ 맘에 쏙 들었다. 그때부터 퇴직할 때까지 42년 6개월간 인사기록 카드는 물론 모든 서류에 허숙희(許淑熙)’가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 이름값 한다.’라는 말처럼 딸 다섯 중 이름의 끝자를 '여자 희(姬)'로 쓴 넷은 모두 결혼 후 전업주부였지만 '빛날 희(熙)'를 썼던 나는 교육 공무원이 되었고, 때맞추어 승진까지 하니 이름 덕이라 생각하며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난해(2024년) 10월 1일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텔레비전(TV)으로 보면서 6·25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던 국가유공자이신 아버지가 새삼 더 그리웠다. 특히 기념식에서 유공 표창 수여 장면을 보니 어린 시절 서랍장에 있던 아버지의 메달 여러 개가 떠올랐다. 그 귀중한 것들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어떤 공적으로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 군에서 ‘언제’,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증이 확 밀려오며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국방부에 문의하기로 마음먹고 필요한 서류인 ‘제적 등본’을 주민센터에서 떼어 보았다. ‘아! 이럴 수가!’ 내 이름의 끝자는 한자로 여자 희(姬)였다.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 의아해하는 내게 담당자는 주민등록법이 시행되면서 이기 과정에서 담당자의 실수로 간혹 있었던 일이라며 나의 충격과는 달리 주민등록번호가 같으니 괜찮다고 아주 가볍게 말했다. 그러나 제대로 바꾸려면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 퇴직하였기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후 국방부로부터 답변 일부가 도착했고 이제까지 어떠한 일이든 이름의 한자 표기가 달라 문제 된 일은 없었다. 그저 그동안 왜 나만 유독 이름의 끝 자 한자 표기가 달랐는지 궁금증이 풀렸을 뿐이다.
오늘도 오랜만에 수원집에 올라 온 나를 만나겠다고 유일한 남동생 창용이와 ‘여자 희(姬)’ 딸 다섯 모두 모여 ‘할머니네 집’이란 식당에서 떠들 썩한 시간을 보냈다.
첫댓글 예전에는 동사무소 직원 잘못으로 그런 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선생님 말처럼 '빛날 희'를 그렇게 해석하니 또 맞는 말이네요.
선생님께서는 반짝반짝 빛나면서 얼굴도 말씨도 예쁘시니, 빛날 熙와 여자 姬 둘 다 지니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름때문에 사연이 많았네요. 그 덕에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