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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지혜
181. 평화의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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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나의 나이 든 제자 가운데 하나가
얼마 전에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 책이 간행될 때,
린포체께서는 이 책의 출판을 통해
마음 깊숙이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자
곧바로 라마 체텐의 이미지가 내 마음에 떠올랐다.
나는 소년 시절에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그는 침착하고도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그질문에 대해
나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이나 삶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가장 현명하게, 매우 밝게,
그리고 지극히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구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마음과 실재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에만 싹트는
궁극적인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렇게 썼다.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과 분리된 심연을 건널 수 없다면,
달까지 여행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발견을 위한 모든 여행 중 가장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소용없을 뿐만 아니라
비참해질 것이다.>
우리는
죽이고 폭파하도록 사람을 훈련시키는 일과
폭탄, 폭격기, 미사일을 만드는 일에
매분 수백만 달러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성과 죽음을 가르치는 일에,
그리고 사람들이 죽을 때
그들에게 무엇이 일어날지 이해시키는 일에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서글픈 현실인가!
우리 자신의 무지,
그리고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한
참된 사랑의 보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쓴 이 책이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해서
영적인 변화가 시급하다는 것,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촉구되고 있다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누구든지 평화롭게 살고 평온하게 죽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이런 진리를 언제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단순하고 성스러운 이해를
반영하는 사회를 정말 언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없다면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으며,
어떻게 우리가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이야말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개화된 지전이
전 세계 모든 교육 기관에 소개되어야 할 때이다.
어린이라고 해서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에게도
죽음의 참된 의미와
죽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제시되어야 한다.
왜 모든 연령 계층에 이런 비전이
단순한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 것일까?
죽음과 죽어가는 사람을 돕는 법과
죽어가는 과정의 영적인 의미에 대한 지식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입수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종류의 학교, 단과 대학, 종합 대학에서
깊이 있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르쳐야 한다.
특히 의과 대학 부속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그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는
의사 와 간호사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의사가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도 지니지 못하고서
어떻게 진정 유능한 의사일 수 있으며
죽어가는 환자를
어떻게 영적으로 돌볼 수 있겠는가?
어느 간호사가
만약 죽어감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에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 있어서,
죽어가는 환자가 인도와 지혜를 원할 때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참으로 능력 있는 간호사일 수 있겠는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지극히 진솔하게 열려 있는
품성 좋은 의사, 간호사, 일반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바르도 가르침의 교훈을 받아들여
채택하도록 돕기 위한
용기와 힘을 주기를 기원한다.
지금이야말로
의료업 종사자들이 삶과 죽음의 진리 추구와
질병 치료술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할 때가 아닐까!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바라는 것은
바로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행해져야 될 것을
행하는 최상의 조건에 대한 논의가
어디에서든지 일어나도록 돕는 일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교육하는 방식,
환자를 돌보는 병원의 태도,
죽어가는 환자를
실제로 취급하는 방식에 있어서
영적이며 실용적인 변혁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나는 이 책이
그런 전환에 작게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호스피스 운동이 일으키고 있는
선구적인 작업에 대해
나는 반복해서 공감을 피력해 왔다.
우리는 호스피스 운동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이
귀중하게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본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세계의 모든 국가가
호스피스 운동의 창설을 고취하고,
가능한 한 풍족하게 재원을 지원하라고
마음 깊이 간청하고자 한다.
이 책의 간행을 통해
몇몇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재단 설립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내 의도이다.
이 재단은
온갖 종류의 성장 배경과 직업을 지닌 모든 사람들,
특히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
(예컨대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가정, 의사, 간호사,
모든 종파의 성직자, 카운슬러, 정신병 치료사,
그리고 심리학자)을 위한 것이다.
현대의 질병에 대해
파드마삼바바가
상세히 예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티베트 불교에는
의학적으로 놀라운 새 사실이
온전히 풍족하게 남아 있다.
이처럼 놀라운 가르침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이 자리를 통해 강하게 염원하고 싶다.
난치병 치료약이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으며,
암과 에이즈,
심지어 아직 증세가 나타나지 않은
불치병의 고통이 경감되지 않으리라고
어느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내가 희망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 전체와
살아 있는 사람을 보살피는 방식 전체에
조용한 변혁을 고위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나의 위대한 스승 딜고 켄체 린포체가
1991년 2월 27일 금요일 부탄의 심푸에서
자신의 육신을 벗었다.
그는 82세였다.
그는 모든 중생을 위한 봉사에 전 생애를 바쳤다.
그를 만난 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그를 잊을 수 있을까!
그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광채를 발하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에게서 지극히 의미심장하며
고요하고 부드럽고 풍요롭고
자연스러운 유머가 항상 흘러나오지 않았더라면,
그의 위대함은 상대방을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한 평온함과 축복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징후이다.
나와 다른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는 밀라레파, 롱첸파, 파드마삼바바,
심지어
붓다 자신의 깨달음과 위풍을 성취한 스승 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는
마치 태양이 진 것처럼
세상에는 어둠만 남겨졌고
티베트 정신의 빛나는 한 시기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래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인물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를 단 한번,
단 한순간 보기만 한 사람이라도,
해탈의 씨앗이 심어져
그 무엇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고
언젠가 온전하게 개화되라고 나는 믿는다.
딜고 켄체 린포체의 죽음을 전후해서
그의 위대함을 입증해 주는
놀라운 징후가 여러 번 목격되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고
감동한 징후는 4천 마일 떨어진
프랑스 남부 지방의 르라 링에서 일어났다.
몽펠리에 근처에 있는 그곳은
스승의 축복 아래 은둔지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그곳에 살면서 일을 했던 내
제자는 그때 일어난 일을 이렇게 말한다.
그날 아침 하늘은 평소보다 어두웠고,
동이 트는 첫 신호로
먼 지평선에 짙은 붉은색 선이 나타났다.
그때 우리는 시내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우리 오른편에 있는 언덕의 줄기를 타고
유골을 모신 텐트가
우리가 앞으로 절을 지을 땅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날카로운 햇살이
박명(薄明)을 꿰뚫고,
이른 아침에 강렬한 색채를 일으키면서
유골을 모신 하얀 텐트 위에 똑바로 떨어졌다.
우리는 계속 길을 갔는데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기 위해
모퉁이를 돌았을 때
어떤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텐트를 되돌아보았다.
그때쯤 하늘이 밝아졌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찬란한 무지개가 골짜기 전체에 걸쳐 있었는데,
색채가 너무나 청명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해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무지개는 왼편에 있는 수평선에서 시작해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아치 형태로 뻗어 있었다.
비는 조금도 뿌리지 않은데다가,
거대한 텅 빈 하늘과 대조적으로
무지개 자체는
선명한 빛을 발해서 한층 신비로웠다.
바로 그날 딜고 켄체 린포체가
부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은
다음날 저녁이었다.
무지개는 우리 모두와 르라 링에 내린
그의 축복이었음을 우리는 확신했다.
붓다가 쿠시나가라의 숲 속에서
5백여 명의 제자들에 둘러싸여
누운 자세로 죽어갈 때에,
그는 마지막 호흡을 내쉬면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존재의 형체가
다시 해체되는 것은 모든 것의 본성이다.
모든 힘을 다해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정진하라.>
딜고 켄체 린포체가 천화한 이후
붓다의 이런 말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세상의 기축인 듯 한
최상의 스승의 죽음보다
통렬하게
무상함을 가르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스승을 알게 되어
그의 제자로 임했던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느꼈으며
내팽겨 쳐진 느낌이었다.
이제 그가 그토록 고귀하게 상징했던 전통을
할 수 있는 한 진전시키고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붓다라는 빛나는 광휘가 사라진 세상에
제자들이 홀로 남겨졌을 때,
그들이 했던 과업을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모든 힘을 다해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
프랑스의 아침 하늘과 르라 링의 계곡을
아치 모양으로 뒤덮었던 그 무지개는
딜고 켄체 린포체가 전 세계에 내린 축복이자,
앞으로도 계속 내릴
축복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육신에서 벗어난 그는
지금 다르마카야의 시간을 넘어선
무제한적인 광휘 속에 살면서,
깨달음에 도달한 인물이 지니는 권능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자비를 베풀고 있다.
그가 성취한 것을 믿고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염원한다면
즉시 그가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존재를
그토록 완벽하게 사랑했던 그가
우리를 버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게다가 모든 것과 하나였던
그가 어디로 갈 수 있으랴!
티베트의 모든 전통을 스스로 체현했던
그러한 스승이 티베트의 멸망 이래
30여년 간 우리와 함께 지냈고
또한 히말라야, 인도, 유럽, 아시아,
미국에서도 가르침을 베풀 수 있었음은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목소리와 가르침이 담긴
수백 시간에 달하는 테이프,
그의 위대한 모습을 전하는 수많은 비디오,
그의 마음에서
풍요롭게 우러나오는 지혜를 담은
여러 언어의 번역본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가 말년에
프랑스 남부지방 그레노블 근처에서
티베트 와 주위 환경이 거의 유사한
계곡과 산을 응시하면서
1,500여 명의 제자에게
가장 중요한 족첸 가르침을 전수했을 때,
나는 그가 제시한 가르침을
남다르게 회상하게 된다.
1,500여 명의 제자 중 대부분은
전 세계에서 모인 내 학생들이었으니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의 생애 말년에 베푼 이런 행위를 통해서
딜고 켄체 린포체는
이런 가르침이 서양에 도래하리라는
심인(心印)을 분명하게 찍은 것이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스승들은
모두 함께 그들이 일생 동안 명상함으로써
축적된 힘을 통해서 가르침을 수용했다고
축복한 것으로 느꼈다.
내 개인적으로는 여러 해에 걸쳐
가르침을 서방 세계에 전하기 위해
내가 행했던 모든 일에도
역시 그가 축복했음을 느낀다.
딜고 켄체 린포체와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것을
회상하면
티베트가 세계에 준 위대한 선물이
한 개인에 집적되어 펼쳐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이 동양적 지혜의 전통에
마음을 열려고 하는 1959년 그 순간
티베트가 마침내 무너진 것은
내게 항상 우연 이상의 뭔가가 있는 듯 보였다.
따라서 서양이
동양의 지혜를 받아들이려 하던 바로 그 시점에
무너짐을 통해
티베트의 고산 지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던
전통의 가장 깊은 가르침 가운데 몇몇이
전 인류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처럼 살아 있는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
현재에는 매우 긴요하다.
지혜로 충만한 전통을 널리 전하기 위해
티베트 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그들을 우리 마음에 항상 기억하고,
또한 그들의 땅과 전통을
그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일을
모두 함께 추진해야 한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와 같은 위대한 가르침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봤던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실현될 수 없는 게
티베트의 현실이다.
티베트의 수도원과 사원이
폐허더미로부터
다시 일어설 날이 곧 다가올 것이고
티베트의 광활한 공간은
다시 한 번
평화와 깨달음의 추구에 바쳐지게 되리라.
인류 미래의 큰 부분이
자유로운 티베트의 재건립 여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티베트는 온갖 부류의 구도자와
갖가지 종교의 신봉자를 위한 신성한 곳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혜의 저장창고로,
좀 더 높은 통찰과 성스러운 기술이
검증되어 정련되고
다시 제정되는 실험실로 작용해 왔다.
티베트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이런 역할을 했으므로,
이젠 위태로운 현대적 상황을 맞이하여
인류 전체를 위해
영적인 감흥과 구원을 주는 일에 나설 것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이런 지혜를 실행하는 데
적합한 환경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크나큰 비극과 그리고 온갖 고통을 겪고 나서
일신된 결단으로
다시 건립된 티베트야말로
그러한 환경이 될 것이다.
따라서 티베트는
인간성의 향상을 위해 지극히 중요한 곳이다.
나는 이 책을
티베트에서 테러로 죽으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과
붓다 가르침의 놀라운 비전을 입증한
수십만 명에게 바치며,
20세기의 이와 유사한 소름 끼치는 상황 속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헌정한다.
또한 유태인들, 캄보디아 난민들, 러시아 인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의 희생자들,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또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상태에서
죽어간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영적인 수행을 계속하는사람들과
영적인 수행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티베트의 가르침은
이제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많은 스승들은 믿고 있다.
파드마삼바바와
비전 넘치는 다른 스승들은
일단의 예언을 통해
그들의 재림을 서방 세계에 예고했다.
그 시기가 오면
이 가르침이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러한 새 생명은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의 순수함이라든가 그 힘,
또는 진리의 시간 초월성과
어긋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각색은 반드시
지극히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전통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와 도전을
있는 그대로 읽어낸다면
적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런 각색에 의해
가르침 자체의 좀 더 깊은 지층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 시대의 난제를
한층 효과적으로 다룸으로써
전통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한층 확대된 가르침으로 풍요롭게 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 간 서양을 방문했던
티베트의 많은 위대한 스승들은 이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가르침이 티베트 인과 불교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것을
기도하면서 죽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또한 나는 현대 세계가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 때,
그 가르침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계시적인 것일지
티베트의 많은 스승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뒤좀 린포체와 카르마파에 대해서 생각한다.
두 인물은 각자의 깨달음의 힘으로
서양을 축복하기라도 하려는 듯
서방 세계에서 그대로 죽기를 선택했다.
세계의 변화와 인류의 가슴과
마음의 개명(開明)을 염원하는
그들의 기도가 충족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가르침
을 받은 우리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불교처럼 영적인 가르침은
고대적 형태에서
서양에 적합한 형태로의 변모를
모색해야 하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는데,
거칠고 쉴새없이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에
불교 가르침을 따르는 신봉자가
불교적 진리를 실현할 수 있는가는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수행을
닦을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영적인 훈련은
결국 질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고,
어떤 면에서
교육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가장 많다.
그것은 어떤 다른 종류의
진지한 교육과 마찬가지로
헌신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 받아야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년간의 교육과 실습이 요구된다.
그런데 삶의 과정에서
우리의 영적인 성취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우연히 축복받아 입문식을 행하고
때때로 여러 스승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난날 사람들은
한곳에 머물면서 일생 동안 한 스승을 섬겼다.
밀라레파는
스승 마르파를 떠나서
혼자 수행을 닦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기 전에
오랫동안 스승을 모셨다.
스승과 함께 생활하면서
영적인 훈육을 받고,
그를 열심히 본받고 계속해 전수받을 필요가 있다.
불교 가르침의 미래와 관련해
현대의 주된 의문은 이렇다.
불교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이
내적 외적으로 올바른 환경을 발견하도록 돕고,
그를 고취시켜 불교 가르침에 따라
온전하게 수행을 닦아 철저하게 실현하게 하고,
마침내 그 마음의 정수를
구현해 체득할 수 있는가가 그 관건이다.
우리 안에
거대한 에너지 창고, 지혜와 자비의 힘,
그리스도가
하늘의 왕국이라 일컬었던 권능이 있다고
세상의 모든
신비적인 가르침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울 수만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깨달음을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세계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같이 성스러운 힘을 명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늘날보다
필수적이고 시급한 때가 언제 있었는가!
이처럼 순수한 힘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위해 길을 닦고,
세상을 위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지금보다 긴요한 시기가 언제 있었는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깨달음의 힘을 알게 되어 그 힘을 굳게 믿고,
그래서 자기 마음의 본성을 인지하게 되기를
나는기도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본성을 인지하는 것은
존재 밑바탕의 세계관 전체를
변모시키는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당신이 어떤 재주나 능력을 지녔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관계없이
모든 존재를 섬기기 위한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자비 넘치는 의지 및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 알게 하는
직접적인 앎을 발견하여
계발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존재의 깊은 핵심에서
뇨슐 켄포의 다음 말처럼
살아 있는 진리를 알게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참된 본성을
실현하지 못한 모든 중생을 위해
자비심은
아무런 작위 없이도 흘러나온다.
자비심은 아무 한정이 없어서,
만일 눈물로 표출할 경우
당신은 끝없이 울게 되리라.
당신이 마음의 본성을 실현할 때면
자비만이 아니라 숙련된 방편
또한 어마어마하게 갖춰지게 된다.
또한 탄생이나 죽음
또는 그 중간 상태에 대한
온갖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것이다.
이런 깨달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기쁨과 축복에 대해 말한다면,
만일 당신이 세상의 모든 명예, 쾌락, 행복을
모아 함께 쌓아놓을지라도
마음의 본성을 실현할 때 겪는 축복에는
비할 수조차 없다고
붓다는 말한다.
지혜와 자비가
이처럼 역동적으로 결합해서 세상에 봉사함으로써
이 지구의 보전에
매우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적인 수행은
남자나 여자 수도자만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나 삶의 방식을 지녔든지
모든 사람에게 긴요하다는 점을
이제 지구상의
모든 종교 전통의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영적인 성장이
지극히 실용적이고 활동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티베트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찼을 때,
모든 불행은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위험에 직면한 시대를 맞이하여
이젠 영적인 성장을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르침이 제시한 기회를
많은 사람들이 잡을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면서,
그들이 생의 일부를
진지하게 영적 수행을 닦는 데 바쳐
마음의 본성을 인지하여
죽음을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로
한층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다른 생명을 돌보고 이롭게 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것을
나는 감히 상상하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당신에게 성스러운 기법을 제시했다.
당신은 이 기법에 의해서
현재의 삶과 죽어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다.
내 스승들과 함께
내가 여기서 고위시키려고 희망한 것은
의식적인 인간성의 진화를 향한 대담한 도약이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를 배우는 것은
이생에서만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배우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참으로 변화시켜
다른 존재를 돕기 위해
어떻게 하면 변화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은
진정 세상을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불교 전통의 가장 자비심 넘치는 통찰과
인류의 영적인 지혜에
지극히 고귀한 기여는
이상적 인간형으로서 보살 이념을 제시하고
그 이념의 제정을 되풀이해서
강조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보살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떠맡고,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을 도와서
해탈시키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해탈에 도달한 이후
절대의 세계로 용해되거나
윤회의 고통에서 달아나기보다
자신의 지혜와 자비를 활용해 섬기기 위해
계속해서 중생 세계로 되돌아오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롱첸파가 말했듯
<불굴의 인내라는 갑옷을 입고>
보살의 비전에 헌신하고,
중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지혜를 펼치는 활발한 평화의 봉사자들이다.
우리 세계의 보전과
좀 더 사랑으로 충만한 미래를 위해
지금 사회의 온갖 상황 아래서,
우리는 자비와 지혜가 우러나오는 길로서
의식적으로 활동하고,
자신의 마음과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부처와 깨달은 존재의 지원을 확신하면서
쉴새없이 활동하는 보살 이념에 충실한
변호사, 예술가와 정치인, 의사와 경제인,
교사와 과학자, 기술자와 엔지니어를 필요로 한다.
테이라르드 샤르뎅 Teihard de Chardin도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바람, 파도, 밀물과 썰무, 중력을 정복한 이후,
......우리는 사랑의 에너지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인간은 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루미의 놀라운 기도문에도 이런 말이 실려 있다.
오 사랑이여,
오 순수하고 깊은 사랑이여,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이 되어주소서.
세계는
당신이 순결하게 끝없이 비추는
광휘 속으로 용해되옵나니,
연약한 살아 있는 낙엽은
차가운 별보다고 밝게
당신과 함께 불타오르나이다.
나를 당신의 하인,
당신의 호흡,
당신의 핵심으로 만들어주옵소서.
이 책의 출판을 통해
내가 바라는 매우 깊은 바람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이 보살이 되기로 결심한 누구에게든지
변함없이 충실한 친구,
이 시대의 도전에 참으로 직면해서
모든 다른 존재를 위한 자비심으로 인해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든지
인도와 영감의 근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싫증을 내거나 실망하거나
환멸을 느끼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그들에게
어떤 테러, 어려움, 장애가 일어나더라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나는 염원한다.
그런 장애물은
단지 그들을 한층 고취시켜
좀 더 깊은 결심을 하도록 이끌 것이다.
그 현존으로 지상에 축복을 내렸고
여전히 축복을 내리고 있는 깨달은 존재의
결코 소멸되지 않는 사랑과 힘에 대한 믿음을
그들이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와 똑같은
남성이나 여성인 위대한 스승들은
붓다가 임종 직전에 온 힘을 다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라는 말씀에
무한한 용기를 지니며 유념하고 있었다.
위대한 스승들의 살아 있는 전범을 비추어
내가 마음을 계속해서 다지는 것처럼
그들도 마음을 다시 굳게 다지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본성과 더불어 궁극의 행복 속에 있게 되기를,
잔인함과 공포를 찾아볼 수 없는
미래 세계에 대한 지전과
그렇게 많은
모든 전통의 신비가 들이 염원했던 비전이
우리의 온갖 노력을 통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한 좀 더 나은 세상의 실현을 위해
먼저 샨티데바,
이어서 성 프란체스코와 함께
우리 모두 기도를 올리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 공간이 존재하고
모든 존재가 고통을 견디고 있는 한,
저 역시 남아서
세상의 비참함을 쫓아내겠나이다.
주여, 저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미움이 있는 곳에 당신의 평화를,
저로 하여금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소서.
무례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그리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오,
성스러운 주님이시여!
제게 허락해 주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추구하나이다.
왜냐하면
받는 것은 주는 것에 있고,
용서받음은 용서하는 것에 있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죽어감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모든 스승들께 헌정한다.
이미 천화한 스승들은
그 큰 뜻이 실현되기를 염원하고,
살아계신 스승들은 오래 장수를 누리시어
위대하고 성스러운 작업이
한층 빛나는 성공을 이루고
그 가르침으로
모든 존재를 북돋워 용기를 주고
기운이 나게 이끌기를 바란다.
나는 딜고 켄체 린포체가
이 시대의 위험에 직면한 우리를 돕기 위해
강력하고 온전히 깨달은 인간의 모습으로
하루 속히 환생하기를 온 마음으로 갈구한다.
이 책 속에 등장한 인물 중
이미 죽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헌정한다.
라마 체텐, 라마 촉덴, 삼텐, 아니 페루,
그리고 아페 돌제.
당신이 기도할 때 그들을 기억하고,
이미 죽거나 지금 죽어가고 있는 내 제자로,
나에게 그토록 영감을 불어넣었던
사람들의 헌신과 용기를 기억하길 바란다.
또한 이 책을
살아 있거나, 죽어가거나,
또는 이미 죽은 모든 존재에게 헌정한다.
바로 이 순간
죽어감의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평온하기를,
추호의 고통이나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 하기를 염원한다.
지금 이 순간 태어나고 있는 생명,
또한 이생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붓다의 축복 아래 성장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가르침을 만나서
지혜의 길을 따르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삶이 복되고 열매를 맺고
온갖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염원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끝없이 온갖 풍요로운 이익을 얻기 바라며,
이 가르침에 의해
그들의 마음이 바뀌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기도이다.
육도 윤회에서 방황하는 모든 중생이 다 함께
근원적 완벽함에 도달하기를 나는 염원한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