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기로에 선 BRT
BRT시민공론화, 논의기준이 중요하다
땅 위의 지하철로 불리는 부산 BRT(bus rapid transit-간선 급행버스 체계)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신임 오거돈 부산시장이 BRT 공사를 중단시키고 BRT의 존폐 여부를 시민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BRT의 기점인 해운대 주민들도 존폐 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한 집안에서도 자가용을 운행하는 아버지는 반대다. 버스를 이용하는 어머니는 찬성이다.
사실 부산의 교통환경은 다른 광역도시들에 비해 열악하다고 평가받는다. 구시가지가 발전하는 형태로 전개돼 도로 구조도 복잡하고, 교각 구조물도 많아 일상적으로 곳곳에서 교통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활성화시키려면 지하철이나 경전철, 트램 등 도시철도를 건설해야 하는데 투자비용도 많이 들고 완공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에 비해 BRT 건설비는 ㎞당 30억 원으로 같은 길이 도시철도 건설비 1,000억 원의 3%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부산 BRT에 대한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점수는 높은 편이다. 교통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서 부산시민들은 정시성과 편의성을 높이 평가하며 75.6%가 속도가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BRT 운영으로 교통체증이 심해졌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52.4%의 시민들이 도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BRT 운영의 궁극적 수혜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79.7%가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 시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교통혼잡 완화 효과가 미미하고 택시와 승용차 이용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교통정체도 더 극심해지고 보행자 사고도 잦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도시철도 운행구간의 BRT 건설은 중복투자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BRT의 운명을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음 달 말까지이다. 결론이 늦어지면 국비 120억, 시비 120억 등 총 240억의 BRT 예산을 반납해야 한다. 부산시는 공론화위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된 대로 따르겠다고 한다. 부산시는 공정성, 대표성, 전문성을 확보해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산시의 희망과 달리 공론화위원들이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느냐 버스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공론화위원회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논의시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부산시정 목표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오거돈 시장은 부산시정을 ‘개발과 성장에서 벗어나 인권과 안전, 사회적 약자 배려 등 사회적 가치에 두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목표에 부합하려면 자동차보다 사람 위주의 교통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정확한 모니터링 결과와 객관화된 지표를 통해 사회경제적 이익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BRT의 1단계 완성에 따른 승용차와 버스의 시점 종점 간 사업 전후 통행시간 차이의 가치를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8km의 거리를 승용차로 이동시 15분이 소요됐는데 BRT 설치 후 2배로 늘어나 30분이 걸리고 버스는 20분에서 15분으로 줄었다면, 자동차의 불편에 비해 버스의 편익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의 탑승 인원을 평균탑승객 2명☓이용차량 3천대로 보고 6천명이 15분을 손해를 본 것과, 버스 이용승객 하루 1만 명의 5분 이익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회경제적 이익을 계산해야 할 것이다.
셋째, 부산 BRT의 전체 청사진과 완성 이후의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떤 공사든 공사기간 중에는 불편하기 마련이다. 완성되기 전 공사과정에서의 불편함을 들어 공사를 중단한다면 교각살우다.
● 드러난 BRT의 문제점
나아가 부산시는 기존 BRT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책 마련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언론 관계자들은 부산 BRT가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교차로 지역에 중복 정류소가 많다는 점을 든다. 또한 부산 BRT의 실효성을 높이고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버스노선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한지 10년이고 연간 버스운용 적자액 1천억을 지원하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버스 노선 전면 개편이 시급하다.
또 BRT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방지책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지난 1월 BRT가 개통된 이래 7월까지 BRT 구간에서 세 번의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그 중 2건은 해운대구 BRT 구간에서 일어났으며 모두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하다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도로 한가운데에 버스정류장이라는 ‘안전지대’가 생기며 무단횡단의 유혹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운대 지역의 경우 BRT 구간을 해운대 전체의 교통체계 개선 문제와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획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해운대는 인구 밀집도가 상당히 높은 데 비해 교통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으며 피서철에 관광객들까지 몰리면 교통지옥이 된다. 만일 우회도로 확보 없이 BRT 연장사업을 추진한다면 교통체증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력 저하까지 가져올 수 있어 지역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이 우려된다.
현재 전 세계 선진도시들은 사람 우선의, 나누고 공유하는 교통환경 조성을 추구하고 있다. 대중교통이야말로 노인, 학생, 여성, 서민 등 교통약자를 위한 사람 우선의 이동수단이다. 또 미세먼지와 배출가스를 줄이는 친환경정책이고 진보적 정책이다. 산과 바다로 막힌 부산의 향후 교통 여건상 BRT 도입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론화위원회가 BRT의 지속 여부를 논의할 때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를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