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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말씀: 아모스 8:1-12】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 이니라
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3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8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말씀 속으로】
며칠 전 인터넷 신문에 황당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민폐 입주민에 대한 기사였는데요,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에 주차금지 표지판 앞에 길을 막고 주차하거나, 다른 입주민 차를 마주보고 차량을 세워 놓고,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곳에 거리낌없이 주차하는 것은 예사고 이중주차를 해놓고 기어는 P 포지션에 두고 연락처 자리에는 성경책을 올려놔서 연락도 할 수 없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차주의 공지를 하고 방송도 하였지만 이 차주의 행태는 몇 달동안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주차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도 아무데나 편한데 주차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고 화가 나는 것은 황당한 주차 매너도 매너이지만 그 아파트에 민폐로 등극한 그 차량에 성경책이 올려 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차주도 주일이 되면 차량에 쳐 박아 놓았던 그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가서 찬양과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이 거룩한 주의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겠죠?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삶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섬기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직장에서는 갑질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어 부하직원들의 원성을 사며, 규정과 방침을 강조하지만정작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이중성도 보여 줍니다.
특히 상급자에게는 온갖 아첨으로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만, 힘없는 하급자들에게는 포악한 면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신앙과 삶이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은 결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배에 충실하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할까요?
오늘 본문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한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아모스서는 이전의 선지자들과 다른 메시지를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주전 10세기 무렵 선지자들은 우상숭배를 행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면,
아모스서는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마지막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입니다.
이 때 왕은 여로보암 2세였으며 당시 이스라엘의영토은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에 이르렀는데(왕하14:25),
솔로몬 왕국 시대의 영토와 비슷한 크기입니다(왕상8:65).
당시 북 이스라엘은 교통의 요충지인 트랜스 요르단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메섹을 속국으로 삼아서 국력이 막강했던 시기입니다. 정치․경제적으로 북이스라엘이 부흥을 이루었던 이 시기에 대해 아모스는 열국 중에 우승하여 유명하였다 평가하고 있습니다. (6:1-2).
특히 이들은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하여 상류층들은 겨울 궁과 여름궁을 따로 짓고 그 안에 상아로 장식한 침상을 놓았습니다(3:15-6:4). 포도주는 대접으로 마셨고, 포도원 농사도 대대적으로 지었습니다(5:11, 6:6).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고(6:6), 제사드리는 제물들도 풍성했습니다(4:4, 5:21-22).
고고학 발굴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주전 10세기까지만 해도 발굴되는 주거지의 크기가 비슷했는데, 주전8세기로 들어오면서 크고 잘 지은 집들이 다수 발견되고,
반면에 작고 보잘 것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집들의 흔적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빈인빈 부익부 현상과 계급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만연해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핍박받는 자들 즉 가난한자, 궁핍한자, 사회적 약자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합니다(5:11, 8:6).
오늘 본문 6절에,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라는 기록으로도 이러한 현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리고(5:2),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법은 오히려 백성을 죽이는 쓴 쑥이 되었고(5:7, 6:12) 부자들의 성적인 타락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4:1). 이들은 도덕적으로 너무나 해이하여져서 정의가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부조리와 도덕적 타락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종교적인 기능 또한 심각하게 부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려졌고, 바알 종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특히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바알 종교는 이스라엘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한편으로는 벧엘과 브엘세바의 제단에 희생 제물이 높이 쌓이고, 비파와 다른 악기 소리가 흘러넘치고 있어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들이 드린 제물이가난한 자들에게 착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여주기 위한 종교 활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이러한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5:21).
이들의 구체적인 죄악상은 4-7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5절에 보면,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월삭이나 안식일 제사를 드리는 중에도 돈 벌 생각뿐입니다.
틈만 나면 불법을 행하고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취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월삭과 안식일에 열심히 참석하여 거룩한 성도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삶은 온갖 악독함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는것입니다.
이들은 월삭과 안식일에 참여하지만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코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월삭과 안식일 제사만큼은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는 그저 보이기 위한 예배일뿐이며, 사회적인 위치를 의식하여 마지못해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배자임에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소유를 갈취하였습니다.
이런 불법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아모스에게 여름과일을 가득담은 광주리를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아모스에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여주셨을까요?
광주리 안에 담겨있는 여름과일이 무엇인지 종류가 무엇인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의 여름 과실은 포도, 석류, 무화과 등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져온 열매들을 가지고 나왔던 것을 기억하고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나온 열매는 이 포도, 석류, 무화과입니다. 민13:23에,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지역에는 다른 특산물도 있는데 굳이 이 세 가지 과일만 가지고 왔을까요?
아마도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과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민수기 20:5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세 가지 과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도 보았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과실은 이집트에서 왕실과 귀족들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포도는 때로는 즙에 가까운 포도주로, 때로는 건포도로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이집트 신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제물이라 생각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과일은 존귀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여름과일을 생각해보면, 귀족들의 호화로운 집에산해진미가 가득한 식탁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여름과일들 그리고 포도주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부유층 사람들이 연상됩니다.
이들이 즐겨 찾는 여름과일은 카이츠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종말을 뜻하는 단어 케츠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저처럼 종종 잘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은 듣기에 따라서 오늘 본문의 여름열매를 종말의 열매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여름 과실인 무화과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무화과는 가나안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실입니다.
봄에 열리는 파게는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여름에 열리는 테에나는 주인이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여름과일이 광주리에 담겨있다는 것은 주인이 가져가는 좋은 열매를 따는 추수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행하는 어떤 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주인이 좋은 열매를 얻지 못하면 책망이 뒤따를 것입니다.
이제는 수확과 평가의 시기이지 관리의 시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일나무는 꽃이 필 때가 있으며 또한 탐스러운 과실을 맺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미 열매를 수확하고 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습니다.
또한 잘 익은 과일은 광주리에 오래 담아둘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과일은 다 썩게 될 것이고 썩은 과일은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5:2-5에 보면 이스라엘의 이러한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으시고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좋은 포도가아니라 들 포도를 맺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들짐승을 보내셔서 쓸모없는그 열매들을 먹고 짓밟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일이 확정되었고용서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2절하반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북 이스라엘은 결국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에 의해722년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는 패전 국가를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수탈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세계 역사가들이 표현하는 앗수르의 행위는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에 이스라엘이 멸망 할 때 그들이겪은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절에 그 잔혹한 풍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그 날의 비명 소리와 사마리아에 널린 시체들 그리고 그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전쟁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로도 실현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라고 말씀하심도 지진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1:1에 보면 지진 기록이 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자들은 이때를 기원전 76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오늘 본문은 기원전 762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심판 선포가 있은 지 2년 뒤에 지진이 일어났고, 40년 뒤에 북이스라엘 멸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 재해가 지진으로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9절은 애굽에 내린 암흑재앙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10절은 장자의 죽음이 온 애굽을 덮었을 때 온 애굽에 울려 퍼지던 애곡의 소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9절-10절 말씀을 8절에 애굽의 강이라는 표현과 연계하여 보면, 애굽의 강이라는 표현은 출애굽 과정에서 홍해에 장사된 애굽의 군대와 애굽의 재앙을 상기하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전쟁뿐만 아니라 지진, 해일, 일식과 같은 천재지변을 통해서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모든 이스라엘 거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통합니다.
축제는 사라지고 애통함만 남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이들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미 기회를 놓쳐버린 이들에게 하나님은 영적 기갈의 상태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회개의 길을 찾고, 위로와 평안을 얻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즉 동쪽의 요단강에서 서쪽의 지중해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돌아다녀도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우리도 지금 구원의 때를 지나면 기회가 없다)
이미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마치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처럼 그들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감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서 추방당하였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이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면 삶도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며, 나라도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온 땅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본문 5절에서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서 주일과 평일의 삶의 모습이 동일해야 합니다. 즉, 주일 이외의 날의 삶의 모습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5:24에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이 땅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명으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VIP를 섬기는 자세가 확립되었다면, 주일만성도, 무늬만 성도인 짝퉁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러 가지고 나온 성경책은 차 대시보드 위에 1주일 내내 방치되었다가 주일에 예배드리러 올 때 먼지 털어서 가지고 나오는 그런 신앙생활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운전을 하며 다니다 보면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상황을 직면합니다.
차량 뒤에 극동방송이나 CBS라디오 주파수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차량이 난폭운전을 하거나 교통법규를 어기면서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 성경책이 차량 안에 비치되어 있는데 불법 주차되어 있거나 민폐 주차 중일 때 보면서 속이 상합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라면 일상과 주일의 모습이 동일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상냥했던 부모님이 집에만 오면 괴팍해진다면 자녀들이 교회에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라면 주일 하루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행하여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마무리도 말씀으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기근이 들면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집니다.
말씀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고후6:2) 외쳤던 사도바울의 애끓는 마음은 이 기회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되돌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 나는 선데이크리스천, 즉 주일만성도인 삶을 살아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모든 날들이 주의 것으로 손색이 없는 날 들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을 평가해 보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이러한 평가가 새로운 기회와 전환점이 되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 빛고을 교회 속한모든 성도들이 주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아내는 복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주인되시며 온 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온 땅의 주인」 https://youtu.be/-ZcTrYvCGPk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딱 붙어 있는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열매 맺으려고 힘을 쓰지 않아도 주님이 주인된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열매는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은혜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 머무는데 우리에 원하시는 별다른 자격조건이 없고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셔서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내 모습 이대로」 https://youtu.be/wQz3w6KDFwo
간혹 내가 잘 가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나 혼자 외롭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더욱 그렇습니다.
목자로서, 목회자로서 걷는 그 길도 무척이나 외롭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생명의 길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길임을 믿습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고 순간 순간 마음을 졸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길은 주님이 함께 걸으시는 길이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걷는 이 인생길은 주님이 동행하시는 길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추천찬 양】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D), 그 길 따라(D), 우리가 걷는 이 길은(D)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A), 그리스도의 계절(A), 내 모습 이대로(F),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F),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F), 삶의 작은 일에도(F), 내 삶은 주의 것(F),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결단찬양: 온 땅의 주인(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