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 사는 선비 윤덕우(尹德雨)는 계유정난 때 화를 입은 옛 상신(相臣)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을, 그의 5대손인 독곡공 정명세와 청안공 정명원이 모셔진 장흥 충렬사에 합향하여 조손(祖孫)의 충절을 영원히 기릴 수 있게 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조정(예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 사당의 건립 취지 차이: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국난에 목숨을 바친 5대손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므로,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순국과는 성격과 사안의 본질이 다르다.
2. 예법상의 문제:
손자를 선조의 사당에 덧붙여 모시는 것은 가능하나, 선조를 손자의 사당에 덧붙이는 것은 사당의 주벽(메인 위패)을 바꿔야 하므로 사우 건립의 본뜻에 어긋난다.
결국 정조임금은 예조의 불허 건의를 받아들여 해당 합향 청원을 반려하였습니다.
[출처]일성록 정조 10년 1786년 4월 2일
全羅道幼學尹德雨 上言以爲
전라도의 유학 윤덕우(尹德雨)가 상언하여 아뢰기를,
故相臣忠莊公鄭苯
고 상신(相臣)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을
合享於長興府忠烈祠
장흥부(長興府)의 충렬사(忠烈祠)에 합향(合享)하여
以爲祖孫忠烈 永世同光事
조손(祖孫)의 충렬이 영원토록 함께 빛나게 하는 일에 대하여
令該曹稟處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처리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忠烈祠卽苯之五代孫 名世名遠
충렬사는 바로 정분의 5대손인 정명세(鄭名世)와 정명원(鄭名遠)이
壬辰死難
임진년(1592년)에 난을 당하여 죽은 일로
贈職旌閭
증직(贈職)하고 정려(旌閭)하며,
仍爲建祠者則
이에 그들을 위하여 사당을 세운 것인데,
與苯之死 不但事體之差異
정분의 죽음과는 그 일의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若以孫而附於其祖則
손자를 그 조상에게 붙여 모시는 것이라면
猶或可許
혹 허락할 수도 있겠지만,
而以祖而附於孫則
조상을 손자에게 붙여 모신다면
自當主壁
마땅히 주벽(主壁)이 되어야 하므로,
殊非建祠之本意
사당을 건립한 본뜻에 크게 어긋납니다.
請置之
이를 그만두게 하소서.” 하여,
敎以依回啓施行
하교하기를, “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같은 해 6개월 뒤, 장성에 사는 선비 김익현(金翼賢) 등이 단종의 충신인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을 그의 손자가 모셔진 충렬사에 배향해 달라고 다시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예조에서는 이번에도 "단종의 세 상신(三相)과 사육신 중 오직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만 모실 사당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청원 절차가 규례에 어긋났으므로 일단 반려해야 한다"고 임금께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조임금께서는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거절하는 것은 충신을 포상하려는 조정의 본래 뜻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정분(鄭苯)을 충렬사에 배향하고 예관을 보내 제사(치제)를 지내도록 즉시 허락하였습니다.
[출처]
국조보감 제72권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년) 9월 27일
일성록 정조 10년 1786년 9월 27일
全羅道幼學金翼賢等忠莊公鄭苯配享事
전라도의 유학 김익현 등이 충장공 정분을 배향하는 일에 대하여,
全羅道幼學金翼賢等上言以爲
전라도의 유학 김익현 등이 상언하여 이르기를,
忠莊公鄭苯配享於忠烈祠事
“충장공 정분을 충렬사에 배향하는 일에 대해
令該曹稟處云矣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처리하게 해 주소서.” 하였습니다.
鄭苯之貞忠大節
정분의 곧은 충성과 큰 절개는
卽端廟三相中一人而
바로 단종조의 세 상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與六臣生同其志
사육신과 더불어 살아서는 그 뜻을 같이하고,
死同其傳而
죽어서는 그 명성이 함께 전해졌으며,
二相六臣皆有俎豆之享
두 상신과 사육신은 모두 제향을 받고 있는데,
獨此鄭苯
오직 정분(鄭苯)만이
尙無一間安靈之所者
아직도 영령을 모실 사당 하나조차 없으니,
實爲聖朝之欠典
실로 성조(聖朝)의 결여된 은전입니다.
且其所請不在於創設
또 그들이 청한 것은 사당을 새로 세워 달라는 것이 아니라,
不過躋享於其孫之忠烈祠而
그 손자의 충렬사에 배향해 달라는 것에 불과하고,
烏川江城俱有可據之例則
오천(烏川)과 강성(江城)에는 모두 근거할 만한 전례가 있으니,
拔例許施
전례를 뛰어넘어 허락하여 시행하는 것 또한
亦足爲樹風聲慰士林之道而
풍교를 세우고 사림을 위로하는 방도가 될 만합니다.
上言呼籲旣違常規
상언하여 호소한 것이 이미 통상의 규례를 어긴 것이니,
請姑置之
청컨대 우선 이를 그만두게 하소서.” 하자,
敎以
하교하기를,
生則同其操
“살아서는 지조를 같이하고,
死則同其節
죽어서는 절개를 같이하였다.
二相六臣皆有俎豆之所
두 상신과 사육신은 모두 제향을 받는 곳이 있는데,
惟忠莊一人之尙此獨漏
오직 충장공 한 사람만이 아직도 이처럼 홀로 빠져 있으니,
豈不是欠事
어찌 흠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躋享之請元非難從
배향해 달라는 청은 원래 따르기 어려운 것이 아닌데,
今以呼籲之違規
지금 호소한 것이 규례를 어겼다고 하여
置之勿施
그만두고 시행하지 않는다면,
大非朝家褒奬之意
조정이 포상하고 권장하는 뜻에 크게 어긋난다.
以忠莊公鄭苯配食忠烈祠
충장공 정분을 충렬사에 배향하고,
仍令遣禮官致祭
이어서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정조임금께서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을 충렬사에 배향하기로 결정한 이후, 실제 제사를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과 절차를 보고하고 왕의 승인을 받게되었습니다.
[출처]승정원일기 정조 10년 1786년 10월 23일
趙衍德以禮曹言 啓曰
조연덕이 예조의 청을 받아 아뢰기를,
卽接全羅監司沈頤之移文 則
방금 전라 감사 심이지(沈頤之)의 이문(移文,공문서)을 받아 보니,
長興府使牒報內
장흥 부사의 보고에 이르기를,
忠莊公鄭苯 合享於本府忠烈祠 而
“충장공 정분을 본부의 충렬사에 합향하고,
祗受致祭日子
치제할 날짜를 삼가
以來十一月二十七日 推擇云
오는 11월 27일로 택일하였다고 합니다.
祭文令藝文館撰出
제문은 예문관에 명하여 지어 내게 하고,
祭物及執事官 令本道差定進排事 知委 而
제물과 집사관은 본도로 하여금 차출하고 마련하여 올리도록 통보하며,
本曹郞廳 則
본조(예조)의 낭청(실무 책임 관원)은
正日臨時受香祝 進去致察之地
정일에 향과 축문을 받아 내려가 치제하는 일을 살피도록 하는 것이
何如
어떠하겠습니까?
傳曰 允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한편, 연기(燕岐) 문중의 정홍달 등은 충장공께서 충렬사에 배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하며 "어떻게 출처와 계보를 알 수 없는 정명세의 사당에 우리 조상(정분)을 모실 수 있는가. 이는 윤리를 어지럽히는 일이다"라며, 예조와 형조에 충장공의 진짜 후손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내용이 길어지므로 다음 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제가 진주정 충장공파가 맞는지 확인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