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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간의 향기>
지은이: 한병철
옮긴이: 김태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판 연도: 2013년
<시간의 향기>
갈피를 잃은 발걸음을 위한 나침반
1.1. 시간에 허덕이는 우리
시간은 왜 항상 부족한 것일까?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그토록 토로하고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활이 시간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몸짓과 행동 하나도 결코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보다 빠른 템포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든 시간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노력한다. 시간을 보다 촘촘히 사용하기 위한 각종 시간 관리법이 인기를 끌고 서점에 가도 '성공한 사람들의 시간관리법'을 주제로 한 다수의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과연 효과적인 시간 관리법을 활용하면 우리는 정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시간의 쫓김에서 벗어나 한가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위 문제에 대해 철학자 한병철은 오늘날의 시간은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됨으로써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진단하며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보다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2. 시대의 핵심을 짚는 철학자
저자 한병철은 재독의 철학자로 독일에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1994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때문인지 그의 저서 곳곳에서 하이데거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저작 중 다수는 '신자유주의 분석과 비판'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말살하였다는 하이데거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며, 실제로 한병철은 자신의 저서에 하이데거를 자주 인용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유럽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피로사회』가 있다. 이 저작에서 그는 현대 사회는 곧 성과 사회이며, 최상의 가치가 긍정이 된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성과 주체들은 자신을 자책하며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로 전락한다고 말한다. 자아와 타자 사이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부정성이 제거되고 그 빈자리를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의 전작으로, 후자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과도한 노동을 짊어진 주체들이 빠지는 곤경을 '피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하려 했다면 전자는 근대사회에서 '시간' 개념이 원자화되면서 방향을 잃고 삶의 의미가 상실되는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두 책 모두 철학적 개념과 시대의 철학자들과의 대결을 통해 현시대를 파헤치고 사유하는 철학 에세이이다.
2.1. 향기를 잃어버린 시간
책 『시간의 향기』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 나아가 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시간 감각과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한다. 고대의 '신화적 시간'과 중세의 '역사적 시간'으로부터 현대의 '원자화된 점의 시간'까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시간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작용하였는지 당시의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두 번째는 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 용어인 '시간의 향기'에 대해 여러 사례와 철학자들, 특히 하이데거의 주요 사상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뵈수 꽃차에 담근 마들렌의 향, 고대 중국의 시계 '향인(향인)' 이야기를 통해서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을 전개한다. 마지막은 이렇게 시간이 원자화되고 방향과 지속성을 잃어버린 삶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헤겔, 아렌트, 하이데거, 니체 등의 사상가와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서 주요 테제들을 논증하면서 그는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점의 시간'의 원인인 '활동적 삶'에 대비하여 '사색적 삶'의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2. 역사에 대한 '시간'의 관점이 지닌 새로움
책의 가장 매력적인 점을 꼽으라면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이행과정을 세계사적 서술이 아닌 '시간'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그의 저작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성 중 하나인데 『피로사회』에서도 그는 각 시대의 고유한 질병을 기준으로 고대를 '면역학적 시대'로, 현대를 '신경증적 시대'로 분석한 바 있다. 한병철은 핵심 테제를 통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주요 대상인 현세대를 객관적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는 그의 주장을 보다 세련되고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한다.
(고대) 신화적 시간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히 놓여 있다.
한병철, 2009 : 42
(중세) 역사적 세계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 사건들은 더 이상 정지된 평면이 아니라 계속 흘러가는 선 위에 배치된다.
한병철, 2009 : 36
(현대) 정보는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보에는 완전히 다른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다. 정보는 원자화된 시간, 즉 점-시간의 현상이다.
한병철, 2009 : 43
위와 같은 통시적 분석이 이 책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시간에 대한 통시적 관점은 책의 논증을 위한 전제이자 배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시간은 항상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관념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각 시대는 고유한 시간 관념 내지 감각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대에서 현대까지 우리의 시간 감각은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그림’에서 새로운 것을 향하는 ‘선’으로, 다시 ‘선’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점’들로 흩어졌다고 말한다. 시간 관념의 변화는 시간의 향기를 되찾자는 이 책의 논증 가치에 대해 반증함과 동시에 파편화된 '점'의 시간 위에 서 있는 현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둘째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관념을 시대와 연관 지음으로써 사실성을 부여한다. 과거의 우리가 누리었던 모든 근심, 모든 궁지, 모든 강제에서 해방된 한가로움을 현재 우리는 분명 누릴 수 없다. 저자는 현세대의 시간이 원자화되었다는 것을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저자들에게 분명히 인식시킨다. 간접경험의 제시를 통해 독자들을 문제의식 속으로 인도함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의 원리 속에서 시간을 대하는 현대인을 성찰의 길로 인도한다.
2.3. 스케치에 그치는 시간의 처방
이른바 ‘활동적 삶의 절대화’로 인해 노동이 모든 시간을 지배한 상태, 저자는 이러한 현대 사회에 남은 것은 오직 결연한 행동과 맹목뿐이라 제시한다.
[······] 오히려 인간의 행동이 모든 사색적 차원을 상실함으로써 단순한 활동과 노동으로 추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병철, 2009 : 162
나아가, 머무름의 기술을 통해 파편적인 점에서 탈피하고 지속적인 경험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실현방법으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사색적 삶'이다. '사색적 삶'이라는 대안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간략히 말하면 점점 가속화되고 선택지가 난무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길을 잃지 않도록 사색과 성찰이 함께 하는 삶으로 요약할 수 있다. "행동 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이다."(178면)는 저자의 말처럼 사색 없는 행동은 아무 내용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부산함이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 자체는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하며 이는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사색적 삶이라는 해결책은 단편적이며 이를 전개해가는 과정에 아쉬움이 존재한다. 그는 사색적 삶을 소개하기 위해 '한가로움의 짧은 역사' 챕터에서 사색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우선되었던, 진정한 휴식과 한가로움의 역사에 대해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오스 테오레티코스, 하이데거의 '들길' 등의 개념을 통해 노동과 소비의 사회를 넘는 고차적 활동이 가능했던 시대의 흔적과 그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한가로움을 중시하는 고대의 문화는 지금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 을 암시해준다.
한병철, 2009 : 140
그러나 현대사회는 고대, 중세, 근대와는 또 다른 사회구조와 경제체제 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현대사회에서 내일은 어제의 또 다른 날이 아닌 새로운 날로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어 살아가야 한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생산력이라면 일을 안 해도 되는데, 성과라는 개념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주인이면서 노예인 상태가 되었다. 일을 잃지 않으려고 노동하는 사람들조차 성과를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현대사회의 모든 사람이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일부는 아직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세계 속에 힘겹게 적응하며 하루하루 노동한다. 과연 현대인이 사색을 잃어버리게 된 현상을 ‘노동을 중심으로 한 활동적 삶의 절대화’로 완전히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사색적 삶’은 책에서 제시한 주요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추상적인 서술에 그쳤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해당 용어를 제시할 때 인용과 비유 방식만을 활용하여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파트인 '사색적 삶'에서 그가 처방책으로 내놓은 '사색적 삶'에 대해 더욱 명료하게 표현했으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3.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에게
그가 제시한 '사색적 삶'의 해결책이 불완전할지라도, 그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제시한 시간의 원자화와 이야기의 쇠퇴는 분명 주목해야 할 일임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전 세계의 시간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자기 앞에 주어진 너무나 많은 선택지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급증의 문화가 '빨리빨리'라는 개념이 되어 잠시 머추어 뒤를 돌아보는 것이 죄악인 마냥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머무름의 기술, 멈추어 관조하고 사색하는 능력은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길을 잃은 선박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나침반처럼, 이 책을 갈피를 잃은 발걸음들을 위한 지침서로 추천한다.
오늘날 시간은 위기에 처해있다. 위기의 내용은 '시간의 양화'이다. 양화된 시간엔 시작점도, 종착점도 없다. 질적 차이를 상실한 시간은 애초에 분절할 수 없는 동일한 점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한 것의 반복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 결과 시간은 가속화된다. 가속화된 시간에 의해 의미는 이탈하고, 서사적 능력마저 상실한다. 의미와 서사의 부재, 즉 시간성의 부재가 바로 시간의 위기이다. 시간성이 부재한 시간은 더 이상 삶을 지탱하지 못한다. 도처에 의미와 서사를 잃은 삶들이 허공을 부유한다. 권태와 무기력, 우울은 위기의 시간을 살고 있는 이들이 겪는 존재론적 감정이다.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이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다. 양화된 시간에는 '꽉참'만 있을 뿐 '충만함'이 없다. 그 결과 현대적 주체들은 만성적 초조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날 피로사회는.시간 자체를 인질로 삼고 있다.
양화된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머무를 수 있는.능력으로서의 '사색적 삶'이다. 세계를 조작 가능한.것으로 봤던 근대적 세계관의 등장 이후 사색적 삶의 자리를 '활동적 삶'이 대신한다. 활동적 삶은 멈추는.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추는 것은 죄악이며, 오직 더 효율적인 활동을 위한 멈춤만이 허락된다. 활동적 삶은 최적의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시간을 양화시킨다. 반면 사색적 삶은 시간에 질을 부여한다. 즉 과기의 미래의 지평 속에서 현재의 지속성을 드러내고, 시간에 서사와 의미를 부여한다. 사색은,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리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성의 완성을 이루는 행위이다. 시간에 휩쓸리는 피로사회 주체들에 중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색적 삶인 것이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보여주는 사유는 단순히 피로사회의.주체들이 겪는 사태에 대한 예리한 진단에만 그치지 않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그가 그리는 인간론이다. 한병철은 진단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색적 삶을 단순히 안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보다는 사색이 갖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고,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존재론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은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려 사색의 힘을 '진리의 고질'과 연결 짓는다. 그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 단순히 현실에 '최적화'하여 살아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에게 돌려줘야 할 '향기'라는 것은 단순히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방향성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제목인 <시간의 향기>를 음미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재료는 향시계-향인이다.
도장처럼 문자가 생겨진 향을 태우고 나면 하나의 글자가
서서히 부상한다. 시간이 흐르면 향기가 퍼져 공간을 채운다.
향기는 시간에 공간성을 주고 공간성을 얻은 시간은 지속성과 안정감을 얻는다. 이제 우리는 시간을 보며 음미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로의 사색의 귀환, 머무름의 기술, 명상의 아름다움, 음미와 관조의 찬양은 좋다.
중력이 해체된 땅에서 분리된 인간, 향기가 사라진 시간. 서사가 삭제된 사건들의 연속, 의미의 중력이 사라진.덕분에 땅에서 이탈하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는.사물들, 한병철에게 이러한 것들은 현대의.시간이자 소멸한 공전 궤도이다.
한편, 인간에게 의미를 제공하던 공전 궤도의 소멸은 가속화의 반대 현상, 즉 사물의 정지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 정지는 교통과 정보와 의사소통이 너무 적기 때문이.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고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체 현상은 가속화의 효과가 아니다. 다름아니라 선택 작용을 하는 궤도의 소멸이 사건과 정보의 대량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중력의 사라짐, 선택 궤도의 소멸, 그에 따른 정보의 대량화, 탈시간화는 모든 서사적 긴장을 소멸시켰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의 시간은 단순한 사건들의 연대기로 해체되어 버려, 마치 플롯이 제거된 영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순하게 나열된 소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대인은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이고 있다.
“중력의 부재로 인해 사물들은 슬쩍 지나갈 뿐이다. 아무것도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정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최종적이지 않다. 어떤 결정적 단락도 생겨나지 않는다. 더 이상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이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등가의 연결 가능성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즉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완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완결은 구조화된 유기적 시간을 전제한다. 반면 무한의 열린 과정 속에서는 그 무엇도 완결되지 못한다. 미완성이 상상적 상태가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그 자유로움과 무책임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병철은 바우만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궁극적인 자유는 화면의 연출 아래 놓이며, 표면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체험되니 그 이름은 재핑(zapping,.리모컨으로 여러 채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이다.”
향인(香印)/나희덕
북경의 시계골목에서 향인을 찾아다녔다.
19세기까지 그 향시계를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저잣거리 어디에도 이를 아는 이가 없었다.
문자의 본이 새겨진 틀에 향가루를 넣어 태우면
향이 타들어가면서 글자 모양이 나타난다는 시계.
예컨대 재로 된 문장 하나.
“내가 나의 꽃들을 얻기 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
타고 남은 재로 시간을 재는 시계라니!
향이 타들어가는 동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라니!
날이 저물도록 향인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어릴 적 예배당에 앉아 있는 동안
옷핀으로 마룻장 틈을 긁어 일으키던 먼지와 보푸라기의 시간.
시간의 재처럼 드러나던 마룻장 저편의 어둠.
그 먼지와 보푸라기의 시간을 일으켜 나는 어디로 가려 했을까.
어둠의 광맥은 점점 깊어져
그후로 슬픔의 시를 내다 파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마룻장이 아니라 내 속의 어둠을 향해
깊게, 더 깊게, 언어의 곡괭이를 박아 넣어야 했다.
“내가 나의 꽃들을 얻기 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따금 향기로운 문장 앞에 숨을 멈추고
마지막 재와 먼지와 보푸라기로 쓸 문장을 생각한다.
향인(香印).
향기와 재가 되어 사라진 시계
* 한병철 시간의 향기,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2013, 95면.
# 위 작품의 향인(香印)은 <재>를, 동일서에서 인용한 참조자료에선 〈연기〉를 의미하나, <내가 나의 꽃들을 얻기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에 주목한다면, <귀한꽃>에 이르게 된다. 향후 창작에의 더한 다짐을 보게 된다.
※ 중국에서는 향인 印 이라고 불리는 향 시계가 1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유럽인들은 향인을 20세기 중반까지도 보통 향꽂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향불의 연기로 시간을 잰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시간이 향기의 형태를 취할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아마도 낯선 것이었으리라. (p.94)
―(티스토리 아.. 인생, 한병철, 시간의 향기)
유희경의「빛나는 시간」감상 / 장석주
빛나는 시간/ 유희경(1980~ )
약속했으니 다시 시간은
빠르고 느리게 지나간다
이제 모든 것은
빛으로 얼어붙어가고
나는 내 짐승의 일부
이 그림자를 밟고 서서
무엇도 되지 않으리
숨과 피를 지우고
내 살과 뼈와 여자와 개
뚫고 지나가는 선(線)의 선(線)
검푸른 사방 이마 위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망쳐놓으리
그러니, 이 시간은 그저
칼끝 같기만 하여라
...................................................................................
누구나 휴식과 멈춤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경과학자들은 타임푸어(Time poor)는 뇌에서 사고하는 영역이 줄어든다고 한다. 반면 속도를 늦출 때 뇌가 커지고 뇌의 공포중추는 작아진다고 한다. “나는 내 짐승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람은 늘 바쁜 사람이 아닐까. 시간에 쫓기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시간이 “내 살과 뼈와 여자와 개”를 뚫고 지나간다. 명상과 침묵을 하며 시간이 느려지고 멈추는 걸 경험해보라. 하루 27분간만 자기 신체 느낌에 집중하면 대뇌 회백질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뇌의 물리적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이 느긋함 속으로 행복이 깃든다.
장석주(시인)
첫댓글 호수 / 장석남
단추를 한 다섯 개쯤 열면 돼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근심처럼 흐르는 안개를 젖히면 그만이에요
갈대나 물결
새나 바람
평수 많은 밤
어디서 오는지
아주 커다란 보석이죠?
익숙한 별자리가 무어예요? 가령
웃거나 울던 하늘 기슭 같은 것 말이에요
그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해요
단추를 한 다섯쯤 풀면
지나던 메아리가 멈춘 듯
어디서 왔는지
아주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 호수를 찾는 일이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