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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수 교수 자작시 해설
천문天文
─강아지는 어디에 있는가
파란 철대 문 앞 강아지 집.
목에 쇠줄 고리를 찬 강아지.
들고나는 주인 내외에게
꼬리를 치며 집을 지킨다.
눈치껏 강아지 먹이를 노리는
까치, 참새, 둘이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큰길을 따라 나간
골목길.
손바닥만 한 채소밭이
활짝 펼쳐 쥔
강아지의 하늘
강아지는 지금
어디에 실존하는가.
이미 쓰여져 있는
천문 속 한 개 단어인가.
강아지는 이따금씩
고개를 하늘로 들어
멍멍 짖는다.
큰 길을 따라간 골목길이
아직 어디에도 도착 못 했을 터.
어디에도 없는
멍멍이를 부르는가.
이 시는 내 집 4층에서 내려다보는, 단층 옆집 철대 문 앞에 늘 강아지 한 마리가 쇠고리를 차고 집을 지키는 풍경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관점은 내가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훔쳐보고 있다는 시점 문제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강아지라도 몰래 보며 그 행동과 처지를 보고 있는 일은 그 시점의 사물화(소유화)로 하여 흥미와 함께 존재의 무거움과 실재의 객관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훔쳐보는 객관적인 시적 거리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강아지는 지금 제 먹이를 얻는 대가로 쇠고리를 차고 주인의 명령대로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을 자각 못하고, 그래서 주인에게 속고 있습니다. 즉 강아지는 제 목의 쇠고리를 구속인 줄 모릅니다. 사실 우리들도 운명의 속임수에 속고 살지만 자각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에는 무지의 생존 법칙이 있습니다.
나의 아내는 자기의 그 ‘아내’(남편에 대한 의무를 요구하는 말)란 말이 나의 쇠고리인 것을 모릅니다. 아내 역시 그 말에 속고 있습니다. 내가 아내 몰래 시적 거리에서 훔쳐보고 있으니 나는 참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4층 창안에서 매일 강아지를 훔쳐보며 내려다보듯 나는 아내를 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남편인 나는 역시 아내의 쇠고리임을 깨닫고 스스로 기가 찹니다. 인생은 서로가 쇠고리에 걸려 있는 겁니다. 결국 나도 나 스스로를 훔쳐보게 된 것입니다. 훔쳐보기의 심리적 기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짓이 명색이 시인이라는 자들의 고상한 시점이라니 아이러니합니다.
인간의 많은 언어는 상당히 쇠고리들입니다. 무엇인가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언어거나, 당위를 주장하는 언어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중심 언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큰 예가 삼강오륜과 같은 윤리일 겁니다(이 큰 굴레가 그런 것들의 표본입니다). 아들, 아버지, 선생, 제자 친구 등등 다 쇠고리 언어들입니다. 강아지라는 말 자체가 이미 인간이 강아지 목에 건 쇠고리 언어입니다. 한편 강아지는 지붕 위의 까치, 참새들과 먹이를 두고 경쟁의 고리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아지는 작은 채소밭이 꽉 쥐고 있는 덕택으로 그 비좁은 공간의 집에서도 강아지는 하늘(강아지하늘)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희망이나 자유라는 고리입니다. 거기다가 골목길이 큰 길을 자주 따라 나갔다 되돌아옵니다. 비록 어디엔가 도착할 곳을 찾지 못했지만 탈출의 길 찾기, 새길 내기 본능의 고리입니다. 요약하면 강아지는 묶임과 풀림 즉 구속과 자유라는 아이러니 속에 있습니다(이런 모순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고 천지질서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늘이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내가 강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속절없이 강아지 신세가 됩니다. 내가 현재 있는 내 집의 모든 풍경, 즉 각종 무슨 정원수 같은 것들, 건물, 마당, 그리고 내 행동들 등등은 하늘이 재미있게 훔쳐보고 즐길 꺼리들일 것이며 하늘이 어떤, 의미 있는 나, 전문수에 대한 우습고 어리석은 아이러니를 한 편 문장으로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늘의 사물화(소유)가 된 것입니다. 강아지가 나라는 인간의 인문으로 그 존재 실재를 쓴 시 문장 속 한 단어가 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늘이 소유하고 우리 몰래 써 놓은 문장 속의 한개 형상물이라고 본다면 흥미롭지 않습니까. 모든 존재의 형상과 구조는 어떤 한개 의미로도 규정지울 수 없는 실존적 현존재입니다. 하느님이라는 절대성(즉 자연의 법칙, 천지의 이치, 어떤 위대한 지혜)에 대한 의존과 근거 설정은 그래서 한 시론의 논리가 기댈 언덕이 됩니다.
이렇게 나보다 높은 큰 절대성과의 인연을 연계 고리로 하여 시 작업의 방향을 잡은 것이 오늘 저의 시세계라고 펼치는 이 시 콘서트의 핵심입니다. 물론 이것도 큰 시각에서는 나 역시 속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하느님의 훔쳐보는 눈에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들이 어리석음과 무지에 속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히 나의 천문시론天文詩論이란 것도 나의 무지의 어리석음이 만든 헛소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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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요약)
천문天文
─강아지는 어디에 있는가
(천문-하늘의 이치, 법칙)
(강아지의 존재는 어디에? 존재는 무(관계성, 변화성으로 무규정성)
이 시는 고리를 객관적 상관물로 하여 묶임과 풀림 즉 구속과 자유라는 아이러니를 표현
연기의 화엄식 버전인 상즉상입에 의해 묶인대로 의존하고 만나고 관계지워진다. 묶임에서 풀림으로, 작은 세계에서 큰 세계로 점층적 구조를 보여준다.니체의 낙타에서 사자로 아이로 나아가는 식이다.강아지는 나의 실상에 다름아니다.무명에서 반야로 나아가되 수에서 끊어서 애나 취로 가서는 안되며 보다 큰 세계로 위상정립을 해야 한다.
파란 철대 문 앞 강아지 집.
목에 쇠줄 고리를 찬 강아지.
들고나는 주인 내외에게
꼬리를 치며 집을 지킨다.
(강아지의 쇠줄 고리(의무, 지배, 묶임, 구속)는 먹이를 주는 주인 내외)
(주인과 하인에 묶임)
눈치껏 강아지 먹이를 노리는
까치, 참새, 둘이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강아지는 지붕 위의 까치, 참새들과 먹이를 두고 경쟁의 고리에 걸려 있음)
(약육강식에 묶임)
(강아지가) 큰길을 따라 나간
골목길.
(골목길(좁은 시야/인식능력, 작은 세계)의 쇠줄 고리 - 큰 길(큰 세계)
(강아지의 골목길이 큰 길을 자주 따라 나갔다 되돌아옴. 비록 어디엔가 도착할 곳을 찾지 못했지만 탈출의 길 찾기, 새길 내기 본능의 고리)
(큰길에 묶임)
손바닥만 한 채소밭이
활짝 펼쳐 쥔
강아지의 하늘
(강아지의 긍정적 쇠줄 고리(풀림) - 채소밭(희망)은 하늘에 묶임)
(강아지는 작은 채소밭이 꽉 쥐고 있는 덕택으로 그 비좁은 공간의 집에서도 희망이나 자유라는 고리인 하늘(강아지하늘)을 누릴 수가 있음)
(하늘에 묶임)
강아지는 지금
어디에 실존하는가.
이미 쓰여져 있는
천문 속 한 개 단어인가.
(모든 존재의 형상과 구조는 어떤 한개 의미로도 규정지울 수 없는 실존적 현존재)
(모든 존재는 하늘이 소유하고 우리 몰래 써 놓은 문장 속의 한개 형상물에 불과)
(무수한 상대에 묶이는 연기, 고정돤 존재는 없음)
강아지는 이따금씩
고개를 하늘로 들어
멍멍 짖는다.
큰 길을 따라간 골목길이
아직 어디에도 도착 못 했을 터.
어디에도 없는
멍멍이를 부르는가.
(강아지라는 존재는 하느님이라는 절대성(즉 자연의 법칙, 천지의 이치, 어떤 위대한 지혜)에 대한 의존)
(모든 존재는 결국 다른 존재에 묶이며 큰 세계를 지향하지만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는 즉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
(연기를 알았으니 수이제 무명을
<참고>
천문, 무정설법
공사상, 12연기론, 막대기론
상즉상입
인식론
니체:낙타-사자-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