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과 감탄의 추억여행/이탈리아편
최명애
갑갑했던 코로나 3년의 속박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서유럽 여행을 예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렸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린다. ‘이제 위험한 코스가 남아 있구나. 기장은 노련한 분일까?’ 장시간 비행이 마치 요술봉을 타고 가는 것 같아 조용히 창가 자리에 앉아 기도한다. 좌석은 일찍 예약하여 앞자리로 배정이 되어 다행이다. TV 로만 보았던 여행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니…. 가슴은 온통 설레임으로 가득 찬다.
13시간 30분 만에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탈리아는 담배 피우는 것이 자유로운 나라이긴 하지만 고약한 담배냄새는 우리를 괴롭혔다. 여행하는 동안 우릴 태우고 이곳저곳을 누빌 전용버스에 탑승함으로 서유럽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차 한잔을 하려고 물을 끓이니 하얀 가루가 둥둥 떠 있다. 유럽은 물속에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다는 줄은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호텔서 나온 물을 끓여보니 훨씬 덜하다. 첫날부터 먹는 물에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유럽 여행이 힘들다고 하는 건 7시간의 시차 때문이다. 신체가 하루 한 시간씩 적응한다고 한다. 첫날 피곤한 상태라 잠은 잘 왔지만, 새벽 2시에 눈이 저절로 뜨인다. 한국은 아침 9시경이다. 맑고 영롱한 새소리가 듣기 좋아 창문을 열어보니 밖은 아직 어두컴컴하다.
바티칸 성당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 줄이 성벽을 돌아서 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적극적인 활동이 감동적이었다. 바티칸은 당초 예약은 했으나 현지 사정상 High Pass 예약을 못 하여 2시간 30분 가까이 빗속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예약비 10 EUR씩을 즉석에서 환불해 주었다. 비오는 날 마신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의 맛은 잊을 수 없다.
바티칸 박물관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 기적 같을 정도로 넓고 웅장하다. 천장과 벽면의 작품들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시스타나 소성당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을 보는 순간 역사책에서 보던 작품이 눈앞에 있다는 감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인간의 예술혼이 훌륭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하느님이 준 재능이긴 하지만 인내심이 없이는 위대한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는가. 평소 매스컴을 통해 보기만 했던 엄청난 인류 유산을 보고 있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천장을 올려다보며.눈에 담고 핸드폰에 담고 가슴에 담느라 바빴다.
관광 수익이 많은 도시 답게 전체가 유적지이고 골목마다 볼거리이다. 비는 오다 말기를 반복했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로마 시내 관광은 큰 버스가 진입할 수 없기에 관광업 승인을 받은 8인승 차량 벤츠로 갈아탔다. 잘생긴 이탈리아 기사님의 에스코트를 받는 벤츠 투어는 참 즐겁고 편리했다. 검투사 시합,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 장면이 실현된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고대 로마의 대규모 전차 경기장 터,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목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 진실의 입,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였으며 사법, 정치, 종교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포로로마노 전경,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전설로 유명한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 스페인 계단, 돔 정상의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판테온 신전을 마지막으로 벤츠 투어를 마쳤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흔적이 남은 유적지를 밟는다는것도 영광스러웠다. 로마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박물관이다. 가는 곳마다 고대 로마의 흔적들이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관광의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불편한 점은 역시 물과 화장실사용, 극심한 소매치기가 득실거린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역사에서 소멸한 비운의 도시 폼페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단 18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작품들이 발굴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화산으로 묻힌 도시를 정성스레 발굴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또 관광 자원으로 변모시켰다. 2천 년 전의 생활 모습, 낙서 등의 흔적을 남긴 인간적인 욕망의 모습들을 보니 그때의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발굴할 보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니 그저 부럽기만하다.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멋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급 휴양지 쏘렌토 해변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는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이다. 길이 좁고 험악해 미니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여기저기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폴리 항 도시의 아름다움은 자연환경을 활용한 인간들의 위대한 힘을 엿볼 수 있었다. 가이드가 사 준 레몬 티의 상큼한 향기가 온 몸에 퍼졌다..이국사람 임을 실감한다. 상큼한 향기와 맛이 살짝 피곤했던 생각들을 떨쳐 버린다. 레몬은 올리브, 오렌지와 함께 이 지역의 유명한 특산품으로 거리마다 동네마다 가득 심어져 있었다. 아말피 해안의 협곡과 절벽을 이용해 만들어진 자연 예술작품은 탄성을 자아냈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포지타노 마을 전망대에 내렸다. 그림 같은 풍경들이 우리의 눈을 마음껏 만족시켜 주었다. 어느 새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
작은 여객선을 15분 정도 타고 물 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는 바리톤의 굵직한 보이스로 유쾌하게 인사를 하였다. 한 땀 한 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섬 베네치아는 바다를 이용한 대운하 길에 수상버스, 수상택시, 다리, 기찻길, 버스정류장, 등의 도시시설이 다 되어있다. 인간의 힘으로 만든 위대한 예술품이다. 20분가량 타는 곤돌라는 좁디좁은 베네치아 수로를 누비고 다녔다. 수로 양옆에는 건물들이 빼곡히 붙어 있어 조용히 해야 한다. 수상택시를 타고 많은 인류 유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바빠진 눈은 잠시도 쉴새없었다. 순간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30분가량 황홀하게 아드리브해를 시원하게 달리던 수상택시는 우리를 육지에 내려 줬다. 300년이 넘는 카페의 고풍스런 분위기에 에스프레소 커피 맛까지 가미하여 점심을 먹었다. 베네치아의 여정은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작한 서유럽여행. 처음엔 조금 긴 여행일정이라 약간의 두려운 마음도 있었으나 평생토록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며 아쉬움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릴 준비를 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인생살이도 여행이 아니던가. 멋진 여행을 마치고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감동과 설레임을 간직하며 살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