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유다 아하스 왕의 외교 및 종교 정책
(열왕기하 16장 1-14절)
1-4.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요담왕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아하스가 28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그의 통치 초엽 아버지 요담왕의 섭정을 받았기 때문에 통치 기간은 16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하스왕의 통치 말년에는 아들 히스기야와 공동으로 통치했으므로 사실상 아하스왕의 통치는 3년에 불과했다.
아하스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가나안의 토착 신의 바알 우상을 만들어 힌놈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자녀를 불살라 몰렉에게 희생제사를 했다.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이방신을 섬기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했다. 그는 성전의 기명들을 다른 위치로 옮기거나 훼파했다. 심지어 성전의 문을 폐쇄해 버리는 일까지 자행했다. 아하스왕은 바알뿐만 아니라 다메섹의 신까지도 섬겼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3세의 도움으로 아람 왕국 다메섹을 치고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그 때 아하스왕이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서 단의 우상을 보고 그 것을 본을 떠서 가져와 단을 만들어 제사했다.
5-6.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엘랏은 다메섹에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람의 르신이 이곳을 먼저 정복한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대하 28장17절에서는 에돔인의 침략으로 유다 백성이 사로잡혀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아람을 에돔으로 고치는 것은 당연히 일이다. 그리고 엘랏을 회복하는 일에 아람 왕 르신의 공로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엘랏 항구를 상실한 일은 유다에게 있어서 매우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하스는 앗수르의 도움을 긴박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7-9.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아하스왕의 외교정책은 친 앗수르 정책이었는데, 이는 예루살렘 방백들이 앗수르 제국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보다 복종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단독통치 초엽 아람 왕국 르신과 북 이스라엘 베가왕이 반 앗수르 동맹을 맺고, 유다 왕국도 앗수르에 대항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하스왕은 앗시리아 디글랏 빌레셀3세에게 예물을 보내면서 아람 왕국을 물리쳐주기를 요청했는데, 그 일이 성사되어 다글랏 빌레셋3세는 유다 왕국에 출정하여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을 축출해 버렸다. 아람 왕국과 북 이스라엘이 철수하면서 유다 왕국 성읍에 큰 손해를 입히고, 12만 명의 백성을 살육하고 20만 명을 사로잡아 갔으며, 유다 방백을 죽이고, 많은 재물을 노략질 해갔다. 선지자 오뎃의 충고로 북 이스라엘은 포로를 되돌려 보냈다.
유다 왕국이 정계가 혼란해지자 예속되었던 블레셋과 에돔이 일어서서 유다 왕국을 공격해왔다. 이 시기에 에돔은 유다 왕국의 간섭없이 엘랏을 통하여 무역을 하고, 서방으로는 해안 도로와 연결하는 육로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블레셋도 유다를 침략하여 여러 성읍을 취했는데, 아하스왕은 앗수르 디글랏 빌레셋3세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리어 디글랏 빌레셋에게 군박만 받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10-14.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아하스는 디글랏 빌레셀이 자기의 요청대로 응해 준 것을 감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이 유다로 침공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를 찾아 다메섹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 왕들은 이웃의 왕들로부터 뇌물을 받기 위하여 따로 접견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아하스는 그곳에서 앗수르 왕을 만났던 것이다.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당시 앗수르 왕들은 자기 제단을 따로 가지고 다녀서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은 흔히 그들의 진영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글랏 빌레셀을 방문하러 갔던 아하스는 그 제단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만들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하스가 앗수르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본떠 만든 것이 앗수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자원해서 그렇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아하스가 이 제단을 만들라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을 때 우리야는 제사장으로서 이일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하스가 여호와 숭배를 디글랏 빌레셀처럼 개인적인 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온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규례의 법도를 지키도록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사장이 특정한 왕에게만 복속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범죄하는 것을 수수 방관했다는 것이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아하스가 제단을 보고 마음으로 좋게 여겨 제사를 준비해서 행동으로 나타냈음을 시사한다. 이 말은 앗수르의 제단을 본뜬 것을 아하스가 개인용으로 삼아 제사드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는 다른 왕 자신을 위한 제사임을 의미한다. 수은제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인데, 감사제는 지나간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서원제는 장차 받을 축복의 조건 제사로, 자원제는 축복에 대한 조건이라기보다는 기도에 대한 보조 제사 형식으로 드렸다.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아하스의 명령에 의해 만든 새 제단은 성소의 정면 중앙에 위치 하도록 하고 옛 솔로몬이 만든 놋제단은 한쪽 구석에 치워져 버렸다는 것이다.
(요약 정리)
아하스는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로, 20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의 종교정책과 외교정책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지 못한 왕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정책으로는 여호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숭배하고 산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아하스는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모방하여 가나안의 바알 신상을 부어 만들고 숭배했으며, 심지어 아들을 불 가운데 자나가게 하는 가증한 인신제사 풍속까지 따른다.
외교정책으로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아하스를 공격한 것에 대해서, 왕은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그를 위해 성전과 왕궁에 있는 금과 은을 보낸다. 앗수르 왕은 이에 응답하여 다메섹을 점령하고 아람을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아하스를 공격하며, 왕은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고 그를 위해 여호와의 성전과 왕국에 있는 금과 은을 보낸다. 앗수르 왕은 이에 응답하여 다메섹을 점령하고 아람을 정복한다.
아하스 왕의 통치와 그의 타락한 행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방 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했고, 그 결과 영적으로 철저히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될 때는 분명히 종교적 타락이 뒤따르게 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히 타락의 조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타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마음으로는 욕망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