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예정된 일정을 기꺼이 지켜낸다는 것,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누구나 미리 준비 된 계획에 동참하고 싶어하지만 살다보면 어찌 그리도 변수가 많은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발로 끝내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추진하기로 이미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돌발상황이 생겨버리면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 않음은 비극일 터.
그런 의미로 보자면 지난 일주일이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갔어도 나름대로 계획한
막바지 주말의 일탈을 지켜낼 수 있어 거의 횡재 수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단 이번 여행에서 식탐, 미식가로서의 존재감은 완전 상실하여 식도락의 즐거움은 누리지 못함이 아쉽기는 했으나
처음부터 블로거들의 추천지를 찾아가보자 하였던 오판이 문제였던 셈이니 그 또한 남 탓할 일은 아니겠다.
맛에 대한 한 각자 취향도 다르고 식감도 다를 터이니 굳이 꼬집고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하여도 집 떠난 뒤에 맛보는 먹거리를 맛볼 즐거움을 놓쳤다는 것은
정말 곤욕스런 일이긴 했고 스스로 찾아 볼 엄두를 내지 않은 것 또한 자책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웬만하면 기본은 하여야 하는 법인데 어쩌다 보니 불로거들이 추천해 놓은 곳마다 나름 관광지로서의 자부심은 커녕
근간을 잃어버린 음식점 뿐이나 그런 기본적인 것과 별개로 아무런 양심없이 써내려간 블로거의 추천이
한심하기도 하고 그것을 믿고 찾아간 쥔장의 행보가 어처구니 없고 어이 없다.
어쨋든 일단 떠나기로 예정된 전날, 일정에 없던 스케줄을 해결하느라 늦은 귀소 본능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기는 하였어도, 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었어도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담양 죽녹원.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티비 프로그램 1박 2일에 소개된 이후로는 더더욱 밀려서 다닐 만큼이 되었으니
어느 곳 한 군데 한가롭게 촬영하기가 쉽지 않아 다시 찾은 발걸음이 무색했지만 그저 쉼을 즐기자면 나름 괜찮다.
하지만 못말리는 군상들은 어디에나 포진해 있기 마련인지라 기어이 손이 닿는 대나무마다 자기네들의 이름을 새겨
사랑을 남발하고 연인임을 증명하고 이름 석자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 뭔가를 증빙한다고 하는 짓거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눈 앞에 보이는 대나무 마디 마디에 꼴불견 짓들을 해놓으니 사진 촬영하기가 만만치 않아 더더욱 애를 먹기도 하였으니 제대로 짜증이 일고
그 인간들이 정말로 사랑에 골인하여 행복하게 잘사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남사스런 행태를 벌이고서 얻은 사랑이 과연 오래 갈 일이기는 한지 그것이 궁금하다는 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글씨가 새겨진 대나무들을 피해 촬영을 간신히 해내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블로거 추천 레스토랑을 찾았다.
담양하면 워낙 떡갈비와 죽순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찾아을 때 이미 맛보기도 했고 줄줄이 늘어놓는 반찬 가짓수만 많은 음식보다는
이번에는 늘 먹는 음식과 다른 차원의 우아한 식사를 하고 싶어 찾아들었다.
일정 부분은 만족이고 반은 실패, 새우 튀김은 바삭한 것이 강추할만 하였으나 떡갈비 스테이크는 느끼하다.
좀더 담백한 맛이었다면 싶은 아쉬움. 그러나 후식으로 나온 커피는 다행스럽게도 입을 즐겁게 하고 찜찜했던 마음을 풀어낼만 하다.
다시 움직인다.
애초부터 특별한 코스를 정하고 움직이는 동선이 아니었던지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장소를 헌팅하였고
메타쉐콰이어 길을 지나 금성산성이 낙점되었다.
가는 길에 만만디로 눈에 보이는 곳마다 촬영을 하며 찾아든 금성산성, 첫 느낌으로 찾지 못해 캠핑장을 지나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
다시 너른 주차장을 찾아들어 주차를 하고 지나쳐 온 산길로 걸어가야 했으니 넉넉잡아 30분이라던 산길은 놀멘몰멘 1시간에 걸쳐 올랐다.
좌우지간 이번 여행은 걷는 발품이 많아 죽기살기로 걸었더니 돌아온 지금도 종아리 근육이 풀어지지 않는다.
여하튼 동학혁명의 근거지요 피흘린 영령들이 들락거리는 산성길을 간신히 오르니 경관이 수려하고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나
이미 기진맥진이라 넋놓고 주저 않았더니만 바람결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한참을 맥없이 주저 앉아 바람에 휘둘린 잎새와 놀다보니 해질녘이라 노을을 감상하며 촬영 포인트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늦은 시간에 어둠을 헤치며 산성 내려갈 길이 아무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철수하자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
한 켠에서 문화재 소속 촬영팀이 금성산성의 이모저모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날밤을 새울 준비를 하건만
바쁜 우리는 그들과 달리 서둘러 하산하자니 발길이 날아갈 듯.
우여곡절 끝에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와 심기 일전하여 순천 송광사로 가는 길.
밤이 내려와도 한참이라 가는 길목이 어둠에 잠겼어도 돌아드는 주암호 물길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나 이미 늦은 밤이라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구석구석을 빙빙 돌아도 여전히 하룻밤 묵을 곳이 빈한하고 결국엔 낡고 허름하며 오래된 여관에 몸을 뉘이자니 참 그렇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 신명을 다한 몸인지라 이제는 쉬어야 함이 마땅하니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음이니 별 수 없이 선택하였으나 쉬 잠들지 못하는 밤,
워낙 집 떠나면 잠을 못자기도 하지만 그놈의 진드기와의 전쟁. 사투를 벌이느라 더더욱 잠을 잘 수 없었다는 말씀.
그럴 때 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일본 여행지가 생각이 난다.
어느 곳 하나 소홀함 없이 관광객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친절함과 서비스 정신.
우리에게는 상실된, 사라져 버린 서비스를 막닥뜨리자니 정말 욱 하고 성질이 오른다.
너무 낡고 허름하여 대책이 서지 않은 실내, 외양은 번듯하건만 주인이나 실내 청결도는 불친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름하여 여관, 아주 오래된 흑백의 기억을 찾아 온 송광사의 추억은 몹쓸 장소의 선택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삼십 여년 전에 법정 스님을 취재하기 위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 타고 산길을 돌아들어 찾아간 곳 송광사.
초저녁에 도착하여 절집에 비어있는 방을 차지하고 하룻밤 묵었던 기억과 비슷한 나이 또래 어린 스님들과 밤새도록 까지는 아니어도
늦은 밤까지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다음 날 불일암에서 내려오신 법정스님으로 부터 맨발의 청춘으로서
지청구를 엄청나게 들었던 기억.
말하자면 감히 스님들 계신 방에 맨발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 화근이었던 셈인데 그 시절은 성정이 들끓던 청춘 시절이었으니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터라 속가의 행태를 마구잡이로 내어보였던 탓에 혼줄이 나고도 남았을 일이더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까짓 맨발이 뭐 그리 대단하다더냐, 먹물 옷으로 갈아 입은 스님네들은 그 정도는 초월해야 하는 것 쯤은 아닐까 싶고
그런 이유로 혼을 내시긴 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욱 법정 스님이 그립기도 했던 그 밤,
밤새 뒤척임만 있었다.
첫댓글 각설하고~
춘천시민으로^^
졸래졸래~하고 가옵니다
고작, 스맛폰으로.
ㅎㅎㅎㅎ 춘천시민 입성이군요.
휘리릭 날아들터이니 기다리시길.
오랫만에 보는 대나무들과 메타사콰이어길이 그래도 눈을 즐겁게하네요~! ^ ^
여관들 더럽지요~! 으휴~! 잘데가 못되는데... 으~~~! 몇번 안가봤지만 대체로 다...
ㅎㅎㅎㅎ 메타세콰이어 길은 마음대로 걷지도 못한답니다 지금은.
입장료를 내어야만 한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는 길에 한 컷.
참내, 아무리 향수를 불러일으킬 여관이라고 하더라도 좀 깨끗하게 하면 안되는지.
절 집 앞에서의 여관은 죄다 그렇다는 말이고 보면 관광대국으로 이르는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요.
와~ 담양 옆이 순창인데,,, 시댁이어요~ 좋은 여행 되셔요^^
아, 그렇구나.
지난 번 스케줄은 순창을 거쳐갔지만 이번엔 그러질 못했지만 다음엔 꼭 들러봐야징.
즐겁게 다녀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