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펜 경주 세계한글작가대회 4회
일시:2018년 11월 6일 화요일~9일 금요일
장소:경주 현대호텔, 화백컨벤션홀, 경주 예술의 전당, 동리목월 문학관, 박목월 생가 등
2018년 11월 6일 화요일 서울역 출발, 신경주역 도착, 개회식
* 개회식
국제펜 경주 세계한글작가대회(4회)가 3박 4일간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서울역에서 1시 30분 KTX 열차로 참가하는 문인들이 함께 타고 갔다. 신경주역까지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신경주역에서 하차하여 버스 5대에 나누어 타고 먼저 숙소인 현대호텔로 갔다. 그곳에 짐을 풀고 화백컨벤션 센터로 이동했다. 오늘 첫째 날은 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회식과 환영 마찬이 있다. 손해일 이사장의 대회사와 경주시장, 신달자 조직위원장의 환영사, 그리고 경북 도지사와 국제펜 알제리 회장인 모하메드 마가니 등의 축사가 있었다. 김후란과 신경림 시인의 시낭송과 축하공연 후 만찬을 하며 문우의 정을 나누었다. 첫날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 숙소인 현대호텔로 이동하였다. 뜻깊은 행사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갈 것이다.
2018년 11월 7일 수요일 문학 강연, 문학 발표 등
*문학 강연
오전에는 소설가 김홍신의 사회로 한국의 이근배 시인과 독일의 알브레이트 후베 교수, 일본의 하타노 쎄쓰코 교수의 '한글문학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라는 주제로 문학강연이 있었다. 한국어로 유창하게 강연을 하는 외국인 교수를 보며 한글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독일 후베 교수의 한글과 세종, 훈민정음, 컴퓨터 좌판의 자모음 관계 등 연구 강연은 그 깊이와 정확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일본 쎄쓰코 여자 교수의 춘원 이광수에 대한 연구 논문 발표도 그 치밀성과 깊이에 감탄을 자아냈다. 우리의 한글을 사랑하는 두 분 교수님께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 문학 발표 첫날
오후에는 '세계 한글문학의 민족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장사선, 이승하, 신정순, 이명재 교수의 문학 발표가 있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옆 강의실에서는 한국시인협회 현 회장이신 윤석산 선생님이 발표자의 한 분으로 발표하신다. 그런데 나는 성균관대에서 성찬경 교수님으로부터 시창작 강의를 수강할 때 초청교수로 모셨던 이승하 중앙대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서 이곳 강의실로 들어왔다. 강의실 문 앞에서 윤석산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쾌히 허락하시고 괜찮다고 하셨다. 회장님 강연은 올 여름보령과 제부도 해변시인학교 두 곳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리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강의 시작 전에 이승하 교수님께 인사를 하고 함께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작고하신 성찬경 스승님이 눈물나도록 그리운 날인데 이교수님도 성교수님을 그리워 하셨다. 교수님들의 문학 발표 후에는 미국에서 온 김송희와 황미광, 카자흐스탄에서 온 정장길, 중국 진이친, 일본 이토나츠 작가들의 질문과 답변으로 종합토론이 있었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아쉽게 끝났지만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2018년 11월 8일 목요일 문학 발표, 문학 강연 등
* 행사장 기념 사진
쉬는 시간에 잠시 행사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작년에도 우리 부부는 참석하여서 낯익은 설치물들이다. 높이 또는 낮게 한글 사랑에 대한 안내 자막을 잘 설치하여 참으로 아름답고, 행사의 드높은 위상이 돋보인다. 지인 문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문우의 정도 나누었다. 국제펜 이사장이신 손해일 선생님과도 찍고, 우리 부부의 사진도 찍고 기쁜 날이다. 한글 만세라는 큰 흰 천에 각자 사인한 글자들이 천장 높이 걸려 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뜻깊은 행사이며, 또한 행사장의 고운 추억이 될 것이다.
* 문학 발표 둘째날
세째 날은 오전에는 '한민족 문학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주제로 공광규 시인, 정용원 시인, 중국 석화 시인, 원용우 문학박사의 문학 발표가 있었고 미국에서 온 명계웅, 독일에서 온 쾨벨연숙, 등 여러 문인들의 질문과 답변으로 종합토론이 있었다. 오후에는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이라는 주제로 신달자, 독일의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의 문학강연이 있었다. 후베 교수는 독일인인데 한글문학 전문가다.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 2'란 주제로 한글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섬세한 발표를 했다. 그는 컴퓨터 좌판배열을 한글 중심으로 맞게 재조립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에 대한 특허를 내고 실행하기 위한 절차를 준비중이라니 감사했다. 한글이 더욱 발전해서 세계적으로 빛나길 빈다.
* 경주 예술의 전당 저녁 공연
저녁에는 경주예술의 전당에서 손해일 이사장의 폐회식이 선포되고, 경주시민과 함께 하는 한글문학축제가 열렸다. 국악협회 두두리의 타악 포퍼먼스, 정병수 무용단의 '한국무용 태평성대, 챙강춤', 경주교향악단 현악앙상불의 연주, 가수의 '야생화' 등 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 가곡 열창이 있었다. 음악과 무용 등 정성껏 베풀어주시는 경주시에게 고마웠다.
2018년 11월 9일 금요일 현대호텔 출발, 동리목월 문학관, 박목월 생가 등
* 경주 현대호텔 숙소
그 동안 3박 4일 간 유숙하며 행사를 치렀던 형대호텔을 오늘 떠난다. 외부에서 행사일정을 보내고 오후에 상경한다. 작년 행사 때에도 여기에서 유숙했는데 우리 부부는 작년에도 참여하여 그날의 추억과 함께 오늘의 추억도 담아간다. 아쉬움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경주시에세 베풀어주는 관광버스에 승차하여 떠나왔다.
* 동리목월 문학관
오늘은 행사 마지막 날이다. '동리 목월 문학관'과 박목월 생가를 탐방하였다. 문학관에서 먼저 영사일로 가서 김동리와 박목월에 대한 영상을 보고 전시자료를 살펴보았다. 사단법인 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는 13명이 모여 2000년 12월 1일에 결성되었다. 공선섭, 김봉환, 김종섭, 김태중, 박기태, 박종택, 박형채, 서영수, 손동수, 신평, 오해보, 이근식, 장윤익 등이다. 전국에서 온 회원, 문인, 예술인 등 330여명이 동리ㆍ목월기념사업를 정식으로 발족시켜 회장에 장윤익, 부회장에 오해보, 서영수를 선출하였다. 문학관 운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동리ㆍ목월의 연구서 발간과 유품관리, 문학관의 홍보 및 관련된 각종 행사의 계획과 진행 등 문학관의 위상을 높이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으로부터 기증ㆍ위탁받은 김동리와 박목월의 저서를 비롯 약 7천 여종의 장서와 육필원고를 보관하고 있다. 문학자료 1천 5백여 점, 생활유품 2백 50여점, 추사ㆍ운보ㆍ월전 등의 애장품 30여 점 등 국내문학관 중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2005년 김동리선생 서거 10주기를 맞아 김동리문학제를 개최키로 하고 김동리 기념사업회총회를 열어, 제2대 회장에 김주영, 부회장에 한승원, 김원일, 김지연, 김형영, 상임실행위원으로 백시종, 황충상을 선출했다. 문학상은 1998년 6월 17일 김동리의 3주기에 제자인 소설가 이문구, 이동하, 황충상, 이채형, 유만상 등과 시인 감태준 등이 모여 김동리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이문구가 회장을 맡았다. 시상식은 작가의 생일인 11월 24일에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1,500만원이 수여된다. 목월선생의 제자들은 이 문학관 건립을 위하여 긴밀한 유대를 가지며 서로 협조해 왔다. 목월선생의 제자들은 2001년 2월3일의 발기인대회의 참석을 비롯해서 유품과 자료수집, 전시작품의 해설과 내용의 감수, 시공회사들의 작업진행보고회 참석, 개관식을 즈음한 추모 시화전, 백일장, 목월문학 심포지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를 도왔다. 목월선생의 흉상 제작비용도 함께 내어 김동호 조각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목월문학포럼회장 이건청 시인과 허영자, 오세영 시인 등이 감수하여 훌륭한 작품이 출산되었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와 문예창작 교육의 장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기념사업회와 목월선생의 문하생들은 전국민들의 애호와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경주에 이런 훌륭한 문인이 둘이나 있다는 것은 큰 축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관람하고 정원에 있는 기념비도 들러보고 중식식당으로 옮겼다. 그리고 오후에는 박목월 생가로 이동한다.
* 중식 식당 주변풍경
중식삭당으로 이동하며 경주 시가지를 보았다. 왕릉이 도심에 있어서 천년 신라의 향수를 자아낸다. 나는 경주 김씨다 나의 조상님들 묘소라고 생각하니 참 흐뭇하다. 첨성대 곁을 지나간다. 큰 공원안에 있다. 이곳 식당은 작년에도 왔었다. 식당 바로 앞에도 큰 무덤이 있다. 옛 신라의 식단을 연상하는 그릇과 음식 등으로 정성 깃들여 베풀어주는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잊지 못할 고마운 손길이다.
* 박목월 생가
박목월 생가는 경주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기 어려운 곳인데 시간을 내어 갔습니다. 넓은 자락에 동상도 세우고, 시낭송 건물도 마련해 놓았고, 초가지붕의 생가를 잘 복원해 놓았다. 먼저 시낭송 건물에 모여서 박목월에 대한 여러 이약를 들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토담집 생가는 헐려나가고 낮은 기와집이 새로 지어져 파란 대문을 달고 있었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늘 생가가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주시가 나서서 복원했다. 시가 박목월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냈고, 시 '청노루', '윤사월'의 배경이 된 건천읍 모량리에 안채와 사랑채, 디딜방앗간이 있는 생가를 복원하였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고 할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목월 시인은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 단석산 기슭 아래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모량리의 유지였던 부모 슬하에서 2남 2녀의 맏이로 성장한 목월은 집에서 가까운 건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동잡지에 동요가 게재돼 급우들 사이에서 별명이 '시인'으로 통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주의 한 금융조합에 취직하고 유익순 여사와 결혼한 그는 <문장>지에 목월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투고, 1939년 '연륜'이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받으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추천을 받은 박두진, 조지훈과<청록집>을 발간한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은 출간되자마자 국내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목월의 시편들은 자연과 고향의 질박한 아름다움을 짧은 시행 속에서 담아낸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2014년 6월 경주가 낳은 한국문단의 거목 박목월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었다. 개관식에는 목월 선생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목월선생의 친구였던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목월문학포럼 이건청 회장, 시인 허영자·김성춘, 원로시인 이근식 등의 목월선생 제자들이 참석했다. 박목월 시인의 생가 복원은 시인이 어렸을 때 살았던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터(4,172)㎡에 안채, 사랑채, 디딜방앗간, 관리동, 화장실, 시낭송장, 주차장으로 구성되었다. 목월 동상, 시비, 동요 ‘송아지’를 상징하는 칡소 조형물과 산책로도 조성되었다. 목월 생가 복원은 지난 2011년 7월부터 생가복원위원회를 열어 가족과 문인 등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생가 복원을 시작했다. 생가의 고증은 목월 선생의 제자이자 원로 문인인 고 이근식 선생과 과거 목월 생가에 거주했다는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추진했다. 목월 생가가 복원되고 지금은 문인들과 관광객이 널리 찾는 문학의 명소가 되었다.
경주시의 문학에 대한 문인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생가 중앙 마당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뒤로 생가가 있다. 그리고 계곡 입구에는 정자와 우물도 있다. 곳곳을 둘러보며 훌륭하게 살다가신 선배 문인의 족적을 따라 많은 것을 배우고, 시인의 사명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하고 왔다.
* 신경주역 출발 상경
행사 기간 동안 문학에 대하여, 한글에 대하여, 세계 속의 한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신경주역에서 오후 2시 30분 KTX로 왔다. 한국에서 보는 한글에 대한 시각과 외국인이 보는 한글에 대한 시각, 그리고 공통적인 사실은 참으로 소중한 한글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문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도 견고하게 다지고 왔다. 더욱 한글을 사랑하고, 더욱 충실한 시인이 되겠노라 가슴 깊이 새기고 왔다. 서울역에 오후 5시에 도착하여 귀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