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바람 불고 여전히 비구름이 낮게 드리운 아침, 일행을 태운 차는 단성을 코앞에 두고 잠시 장회나루로 들어선다. 짙은 비구름으로 인해 중국의 장가계를 연상케 하는 옥순봉과 구담봉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흐린 날씨 탓인지 한산한 선착장에는 코스모스 꽃들만 화사하다. 두악산 산행은 서너 시간의 짧은 코스다. 잔뜩 흐린 날씨가 오후나 되어야 갠다니 내친 길에 단성면 하방리에 있는 단양신라적성비를 보러 간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진입하는 단양신라적성(사적265호)은 신라 진흥왕 때 축조된 산성으로 대부분 붕괴되고 현재는 겹으로 쌓은 북동쪽의 안쪽 벽 등 일부만 남아 있다. 적성비는 산성 왼편의 계단 위에 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영토를 차지해 영토를 넓히면서 이곳 백성들의 민심을 달래고 본국의 시책을 이해시키기 위해 세운 비다.
- ▲ 데크가 있는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산은 자연미를 더한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의 국경개척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사람 야이치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그와 같이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포고내용이 담겨 있다. 자연석을 이용한 적성비의 윗부분은 잘려나갔으나 양 측면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모처럼 느긋하게 문화유적을 감상하는 여유를 부린 일행을 태우고 차는 상방리로 향한다.
단성치안센터 앞에 차를 세우고 행장을 갖추고 있는데 윤태동씨가 어깨를 잡아끈다. 돌아보니 맞은편 슈퍼마켓 앞에 진풍경이 펼쳐져 있다. 땅콩을 수확한 부모님을 도와 땅콩을 따고 있는 어린 두 남매의 옆에 각자 따낸 땅콩포기의 뿌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성과제로 용돈을 받기로 했나보다. 가지런히 놓인 땅콩뿌리도 예쁘고 아이들 하는 짓도 예쁘다. 남매의 허락을 받아 그 정겨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마을 안 포장도로를 걷는 동안 농가의 뜨락엔 울긋불긋 백일홍과 꽈리꽃, 부추꽃이 한창이고 길가 나무엔 산사자와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사과 과수원을 지나 낙엽송 고갯마루를 지나자 삼거리에 두악산 정상과 단봉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두악산 정상까지는 1.7km, 덥지도 춥지도 않은 시월 초순의 선선한 날씨에 서두를 일 없어 단봉사로 향한다. 아담하고 조용한 암자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들어 빨랫줄엔 실에 꿴 대추꾸러미가 걸려 있고 마당 한켠엔 잘 익은 단호박이 쌓여 있다. 누구 하나 내다보는 이 없는 단봉사를 기웃거리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 ▲ 좌)남쪽으로 이어진 능선 숲길. 우)하방리의 단양신라적성비.
백두대간 소백산 아래 남한강 끝자락에 솟아 있는 두악산 일대는 단양팔경이 펼쳐져 있는 산자수려한 곳이다. 특히 두악산은 단양팔경 중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사인암 등 빼어난 4경이 자리한 단성면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의 도락산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그런지 일요일임에도 산객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행로 초입부터 시화가 새겨진 고색창연한 목판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능선 꼭대기까지 한 시간 삼십분 여 계속되는 울울창창한 숲길은 마냥 조용하고 조망은 전혀 없다. 이따금 나타나는 목판의 시와 벤치가 반가울 뿐이다. 북하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부터 경사는 점차 급해지고 산행은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마지막 급경사의 통나무 계단을 오르노라면 정상부에 심상치 않은 목책이 보인다.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여기에서만큼은 기대는 클수록 좋겠다.
누구의 얌전한 정원에 들어섰나 싶어 화들짝 놀라게 되는 소금무지봉 정상. 이어 터지는 탄성들. 배낭을 내려놓을 사이도 없이 사방 뛰어다니며 조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목조 데크로 꾸며놓은 정상의 중심부에는 북쪽으로 두른 나지막한 돌담 안으로 참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고 나무 앞으로 항아리 세 개가 나란히 묻혀 있다.
왼편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고 돌탑의 꼭대기에 ‘두악산 721.5m’ 표지석이 얹혀 있다. 그러나 실제 정상은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727m 봉우리다. 사방 거침없이 조망이 트여 있지만 오늘은 고약한 연무 탓에 먼 산들은 실루엣만으로 눈짐작을 할 뿐이다.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는 단양대교를 중심으로 소백산과 덕절산, 용두산, 말목산, 금수산과 도락산 등 단양의 명산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 사이를 남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단양의 크고 작은 산세를 한눈에 두루 살필 수 있는 천혜의 장소로 전망대가 따로 없다.
- ▲ 소금무지봉 정상에서 본 단양대교. 능선의 짙은 단풍이 화사한 분위기를 만든다.
항아리 세 개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부터 이 마을에 불이 자주 났단다. 마을사람들이 불을 끄느라 허둥대는 것을 목격한 어느 도인이, 단양(丹陽) 고을의 지명은 모두 양(陽)으로 화기를 뜻하고, 단양의 진산인 두악산이 불꽃모양의 형세라 강바람이 몰아쳐 단(丹)의 붉은 기운을 몰아세우고 양(陽)의 뜨거운 빛을 밀어대 두악산을 굴뚝 형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 탓에 화재가 잦으니 집집마다 한 명씩 나와 자기가 들어갈 만한 연못을 파고 집 식구대로 물을 부어 화기를 진정시키고, 두악산에 항아리 세 개를 묻어 가운데 항아리에는 소금을, 양편 항아리에는 한강물을 부어놓으면 더 이상 화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단다. 마을사람들이 도인의 말대로 행하고부터 더 이상 화재가 나지 않았단다. 그때부터 두악산은 ‘소금무지산’으로 불리고 자식이 없는 사람이 여기서 기도를 올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영험한 산이 되었다고 한다.
매년 음력 정월에 인근 주민들이 모여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금무지제를 지내기 위해, 산객들의 조망을 배려하기 위해 드넓은 목조 데크는 설치되었으리라. 일망무제, 소금무지 정상에서의 거침없는 조망은 실로 특별한 기분이다. 일행 모두 등산화를 벗은 맨발로 한 시간이 넘게 오수를 즐기거나 책을 읽거나 먼산바라기를 하며 잘 놀다가 뒷들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 ▲ 주능선 봉우리의 편안한 나무 데크. 참나무 한 그루와 항아리 세 개, 돌탑과 거침없는 조망으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금무지봉에서 남쪽 계단으로 내려서면 소선암공원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어여쁜 참나무 숲을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또 하나 정상석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두악산 720m로 표기되어 있다. 남릉으로 내려서서 소선암으로 갈리는 안부를 지나고부터 산길은 점점 흥미로워진다. 조망이 툭 터지는 암릉지대가 나타나는가 하면 우뚝 솟은 고사목 세 그루가 반갑다고 안겨든다. 맞은편으로 여전한 연무 속에 황장산과 대미산, 덕절산과 도락산 능선들이 멀고 가깝게 펼쳐진다.
들머리에서 능선까지 심심했던 산행이 곱절 보상받는 기분이다.
727m의 정상 직전 안부에서 남쪽길로 직행하기 쉬우나 길이 좋지 않다. 능선길을 비켜선 좌측 사면길로 산악회의 시그널이 걸려 있다. 간밤의 비바람으로 길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성급한 낙엽들로 거칠기 짝이 없으나 길의 흔적은 뚜렷하다. 이어 두악산의 최고봉인 727m봉(능선분기점)에 도착한다. 뒷들재를 사이에 두고 남남동쪽에 있는 덕절산(780.2m)과 마주보고 있다.
사면을 가로질러 희미한 세능선을 타고 15분 정도 걸으면 뒷들재에 닿는다. 예전에 하선암 일대 주민들이 단양장을 보러 다녔다는 뒷들재는 아름드리 고목이 저 혼자 외롭게 고개를 지키고 있다. 뒷들재에서 십여 분 지점의 계류를 건너 느릅나무골 외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림처럼 어여쁜 대잠리 마을이 나타난다.
사과밭엔 사과열매가 붉고 소로를 따라 으름덩굴과 밤나무, 감나무가 즐비하다. 일행은 양손에 으름열매를 들고도 바닥에 나뒹구는 밤을 줍느라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대잠마을을 빠져나와 대잠교를 건너 건너편 솔밭휴게소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하선암의 풍광은 시선 주는 곳마다 아찔 현기증이 일게 아름답다.
- ▲ 727m 정상과 덕절산이 보이는 능선길. 등산객이 많지 않은 탓에 길은 자연 그대로다.
산행길잡이
○ 단성치안센터~소금무지봉~정상~뒷들재~안마을~솔밭휴게소 <3~4시간 소요>
○ 단성치안센터~소금무지봉~소선암휴게소 <3시간 소요>
○ 단성치안센터~소금무지봉~정상~뒷들재~덕절산~가산리 <5~ 6시간 소요>두악산은 단양팔경 일대 큰 산과 계곡의 명성에 밀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다소 거칠기까지 한 등산로는 유명한 산과 인파에 지친 산객들의 마음에 신선한 유혹을 보내온다. 단성치안센터 오른쪽 도로에 있는 두악산 안내판을 따라 이어진 소로를 따라 10여 분 올라간 고개에서 동남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단봉사 삼거리 외에는 정상까지 외길이다.
정상에서 남릉을 타고 뒷들재를 지나 덕절산까지의 연계산행도 할 수 있다. 산행코스가 짧아 산행 전이나 산행 후 주변 명승지를 둘러보는 보너스를 누릴 수 있다. 주능선의 봉우리들은 조망이 빼어나다. 처녀지 같은 정상 남쪽 능선의 운치와 하산 후 둘러보는 선암계곡의 풍광이 두악산을 더욱 빛나게 한다.
교통(지역번호 061)
○ 대중교통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가 단양을 지난다. 하루 8회 운행하며 2시간 25분이 소요된다. 오전은 06:10, 08:20, 10:30에 있으며 오후 단양에서 청량리행은 14:51, 16:20, 18:25, 20:16에 있다. 버스는 동서울에서 단양까지 하루 8회 운행하며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동서울발 단양행 오전 차편은 06:59, 08:00, 09:00, 10:00에 있고 단양에서 동서울행은 하루 22회 운행한다.단양시외버스터미널(422-2293) 옆 고수대교에서 벌천행 시내버스(단성치안센터 앞 하차) 06:20, 06:45, 07:35, 07:45, 08:20, 10:00, 10:30, 11:00, 11:30, 12:05 버스가 있으며 하선암에서 고수대교까지는 오후 13:20, 15:00, 17:00, 18:00, 20:00에 버스가 있다. 들머리인 단성삼거리까지는 군내버스인 25인승 마이크로버스가 다닌다. 단양택시(422-0412), 단성택시(422-5900, 010-4701-8131).
○ 자가용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 이용→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진입→ 단양IC→ 단양방면 5번 국도→ 북하삼거리에서 충주, 문경(36, 59번 국도)방향 좌회전→단성중학교 방향 직진→ 단성치안센터숙박·맛집(지역번호 043)
소선암자연휴양림(422-7839), 솔밭휴게소펜션(422-1473), 소선암 오토캠핑장(423-0599) 등의 숙소가 있고 한방닭백숙 전문 도락산장(422-1411), 염소요리 전문 하선암휴게소(421-3006), 쏘가리매운탕 전문 호반식당(421-0888) 등이 있다.
/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