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달 28일 임실시장.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운 채 힘겹게 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옆집에 사는 할머니인데 다리가 불편해 이동할 때마다 태워드린다”고 말했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서로 도우며 살고 있었다. /임실=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임실을 보면 20년 후 대한민국이 보인다
고령화는 보이지 않게, 그리고 천천히 경제를 마비시킨다. 늙어가면서 씀씀이를 줄이기 때문에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고용도 갉아 먹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경기가 확 살아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고령화 쇼크'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재앙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실 읍내에 있던 목욕탕도 손님이 줄어 최근 문을 닫았다. 임실나래노인복지센터의 김보숙 원장은 "임실 읍내에 하나 있던 목욕탕이었는데 문을 열지 않아 목욕봉사를 못하고 있다"며 "오는 9월에 새 목욕탕이 문을 연다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복지센터가 방문해서 돌봐줘야하는 노인도 80명에서 145명으로 늘었다.
임실에서 옷 장사를 하는 이모(40)씨는 "아동복을 팔다가 워낙 장사가 안 돼 4년 전부터 노인들이 좋아하는 싼 옷들을 갖다 놓았는데, 요즘엔 만원 넘어가면 잘 안 팔린다"고 말했다.
◆"최근엔 묘터 거래밖에 없어"
부동산 시장도 침체돼 있다. 임실시장 앞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양모(49)씨는 "일이 없으니 주인이 자주 가게를 비운다"며 "최근엔 고령화와 이장수요로 묘터 거래만 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임실시장 인근에서 플랜카드 제작 등 광고업을 하는 진모(51)씨는 "식당이 문을 열고 공사를 해야 간판을 다는데 일감이 없다"며 "요양원에 들어갈 환자 모집 플래카드 몇 개와 관청에서 발주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박모(여·43) 사장은 "2~3년 전까지는 노인정에서 분기별로 한 번에 20~30그릇 시켜 자장면 파티라도 했는데 요즘엔 그것도 안 한다"고 말했다.
임실군이 고령화 쇼크를 극복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지역특산물과 관광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군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임실군 관계자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임실치즈피아' 등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치즈마을에는 매년 수만명이 찾고 있어 출발이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지갑 닫는 베이비붐 세대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소비는 이미 줄어들고 있다. 소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714만명)가 2005년부터 50대에 접어들면서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본지가 BC카드에 2004년과 2007년의 카드사용액을 비교해본 결과 베이비붐 세대가 물건을 사고 카드를 긁은 액수는 2004년엔 전체의 25.4%를 차지했지만 2007년엔 20.1%로 급감했다. 이 연령층이 같은 기간 해외에서 카드를 쓴 비율도 전체의 20.7%에서 17.9%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