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9 - 교토 북쪽 산골 마을 오하라에 도착해 산젠인 절을 찾아 구경하다!
2024년 11월 20일 이시야마데라 (石山寺) 를 보고 사카모토 히에이잔구치 (坂本比叡山口) 역에 내려
케이블카 Cable Car 를 타고 히에이잔 엔랴쿠지 比叡山 延歷寺 를 구경한 후에
로프웨이와 케이블카를 타고 케이블 야세 ク-ブル 八瀕 역에 내려 루리코인 (瑠璃光院) 을 찾습니다.
이제 오하라 大原(대원) 에 산젠인(三千院) 과 호센인(宝泉院) 을 보아야 하니 야세히에잔구치역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20분을 시골길을 달려서 오하라에 도착합니다.
여기 오하라(大原) 마을은 산으로 둘러 쌓인 산골인데.... 마을은 산으로 언덕을 올라가면서
들어서 있으니 염색 가게와 간장 가게며 떡가게를 지나 올라가니 평지로 고급 식당들을
지나서 산젠인(三千院) 절에 도착해 어전문(御展門) 으로 들어가서는 700엔 입장료를 냅니다.
그러고는 객전(客展) 으로 들어가는데.... 오하라(大原) 의 산젠인 大原(三千院) 은 아름다운
단풍이 이끼와 어울린 예술 같은 절경으로 국보 아미타 산존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는 천태종의 사원이자 오하라 산책의 중심지로 오늘은 중국인들이 엄청 많습니다.
왕생극락원이라는 전각을 지나니 유청원의 이끼가 눈에 들어오고 돌 조각가 스기무라 타카시의
직품이 놓여져 있으니....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도 같습니다?
50m 의 길지 않은 참배길을 따라 걷노라면 단풍 나무가 가지를 치고 있어 경내에서는 푸른
이끼 뜰 위에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인 잎들이 아름답게 쌓이는걸 볼수 있습니다.
산젠인 (三千院 삼천원) 은 녹색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붉고 노란색의 단풍나무로
색이 물드는게 장관이니.... 10월 28일(금)부터 11월 28일(월)은
"산젠인 모미지 축제" 의 기간으로 비불금색 부동명왕의 개문도 행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년은 늦더위로 인해 단풍시즌이 평년 보다 열흘 정도가 늦어졌으니.... 여기 산젠인
도 단풍의 절정 시기는 11월 하순 부터 12월 초순 까지로 여겨지며,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분이 모찌와 차를 아이들과 먹는데 마눌은 저건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나요?
산젠인에서 특히 볼만한 곳으로는 산젠인 주작문과 왕생극악원에 유청원 등이 있으며
그외에도 정원과 또 신사에는 노랑색 은행나무와 빨강색 모미지(단풍) 인가 합니다.
산젠인에서 단풍을 즐기는 일본인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즈미 지하루씨가 동아일보
에 올린 “한국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던 한 일본인의 부고”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2014년 3월, 인사동의 한 주점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 ‘쓰치다 마키 (土田真樹)’ 라는 일본인
이 있었다. 곁에는 거품이 올라오는 생맥주, 카메라와 렌즈들,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취재한 내용을 보여줬으니 이날은 마키가 한국에 온지 25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35년간 한국에 살며 활동한 일본인 한국 영화 전문 저널리스트 쓰치다 마키가 지난달
25일,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홋카이도에서 열린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가.... 개막식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일어서지 못했다. 13일 고향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장례식과 작별 의식이 열렸다.
그는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일본의 영화
전문지 ‘키네마준보’ 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일본에 소개했다. 영화 자막이나 시나리오 번역
등에 참여했으니 오랫동안 일본 영화계와 한국 영화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공로는 결코 작지 않다.
그를 언제부터 알고지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제나 영화 관련 행사장에 늘 있었고,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 웨이’ 의 시나리오 교정도 함께 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와는
달리 겁도 없이 한국인 속으로 쑥 들어가 지내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어떨 때는 조금 거북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외로운 타지에서 같은 일본인인 그가 ‘도라에몽’ 처럼 둥글고 큰 덩치로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왠지 든든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한참 보이지 않아 걱정하다가, 재회했을때 기뻐서
‘살아 있었냐?’ 고 농담하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 말문이 막힌다.
고인의 장례식은 호샤쿠지 (法積寺) 라는 유서 깊은 절에서 전통식으로 거행됐다.
친인척과 한국과 도쿄에서 달려온 지인들이 참석했는데, 다행히
페이스북 라이브로 식을 생중계해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그를 보낼 수 있었다.
장례식 후 절 뒤 가족묘에 납골했다. 그런데 묘비에 그의 이름이 ‘츠치다 마키’ 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어 많은 사람이 또 한 번 그걸 보고 눈물을 흘렸다. 상주(喪主) 인 여동생
우타코(詩子) 씨가 ‘한국을 너무나 사랑했던 오빠’ 를 위한 마지막 그리고 영원한 선물을 해준 것이다.
오후에는 마키가 글을 쓰며 자주 찾았던 카페에서 작별 행사가 열렸다. 그 카페에서
보이는 바다를 건너면 부산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새
가까워지며 한 사람씩 마키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울다가 뒤집어지게 웃기도 했다.
여동생이 가업을 이어 남편과 함께 야마구치현의 하기(萩) 시에서 94년 된 양과자점
‘겐 마쓰이치’ 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브랜디 케이크는 한국
영화인들 사이에 이름난 간식이었다. 그로부터 선물받았던 이가 꽤 많았다고 추억했다.
그가 한국에서 고생한 것은 사실이다. 독하지 못해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거나 돈을
떼여 힘들어 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고정된 거처 없이 지병있는 몸으로
옮겨다녔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역시 기쁘게 지냈다.
이달 5일 사망 소식을 듣고 서울 용산의 한 호프집에 추모 자리가 마련됐고, 소셜미디어
를 통해 조의금이 모아져 전해졌다. 유족들은 눈물 흘리며 한국인들의
따스한 정에 감사했다. 그의 고향에 머무는 이틀 동안 우타코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에서는 가족의 속도 많이 상하게 했지만... 그가 한국에서 잘 지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한국과
도쿄에서 온 사람들을 보며 속상했던 마음이 다 풀렸다고 한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조금 부족한 그였지만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았고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냈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韓国を愛し映画を愛した男の最後のエピロ―グ ( 한국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한 남자
의 마지막 에필로그 )” 라는 여동생의 글이 장례식이 열린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 영화로부터 사랑받아 더없이
행복했던 쓰치다 마키’ 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