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1주년기념 독립문공원 걷기
역사와 문화 나들이 포토&이야기
▲독립문
사적 제32호. 높이 14.28m, 너비 11.48m. 모화관 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1896년(건양 1) 독립
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45×30㎝ 크기의 화강암 1,850개를 쌓아 만든 이 문은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내부 왼쪽에 옥상으로 통하
는 돌층계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난간을 둘렀다. 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다.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으며, 당시 서양건축의 조영경험이 있던 목수 심의석이 공사 감독을 맡아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들었다.//다음백과사전
▲ 단체 사진 한 분이 삐졌네요.ㅍㄹㅅ님이 급한 일이 생겨 조금 늦게 합류~
■ 함께한 사람들...늘애 봄날에 셀렌 시월애 에녹 첼시 푸른산 하나우마 한솔 현호새...이같또로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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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가 몰리는 포토존. 잠시 순서를 기다린 후 인증 샷~관람을 온 분이 촬영.
▲심훈(시인 소설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루셨네요.
시인 뿐만이 아니라 언론인 영화감독 그리고 극본도 쓰신 분이다.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1936년 영화 <상록수>감독을 맞아 단성사에서 개봉되기도 했다.35세에 세상을 떠났다.
▲ 현진건(소설가)도...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1900년 9월 2일 대구 우정국장이던 현경운의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독립 운동을 하던 형 정건이 있던 중국 상하이의 후장(扈江)대학 독일어 전문부에서 공부하다가 마치지 못하고 1919년
귀국한다. 이상화 · 백기만 등과 동인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20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같은 해 11월 『개벽』 5호에
「희생화(犧牲花)」를 발표한다. 그러나 황석우가 이 첫 작품을 혹평하는 등 작가로서 산뜻한 출발을 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1921년 1월 『개벽』에 「빈처(貧妻)」를 발표함으로써, 아직 사실주의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때에 사실주의 작가라는 칭호를 얻고,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발돋움한다. 『백조』 동인을 거쳐 ‘파스큘라’와
‘카프’로 이어지는 현진건의 문학적 편력은 사상의 변천 과정과 맞물려 있는데, 이는 3·1운동 실패 이후 젊은 지식인들의
의식을 점유한 낭패감과 좌절감에서 비롯된, 계급적 한계에 대한 자각이 그 추동력이었다.
잠시 두 분을 그리며 머리를 숙인다.
▲한 시민이 숙연한 얼굴로 안내판을 보고 있다. 사~알 작 셔터를 눌었다.
▲ 연못. 연꽃은 아직...
▲강제 노역 시간... 직업 훈련을 가장하여...
▲No Way Out. 탈옥을 막기 위한 장벽.ㅠㅠㅠ
▲김광섭. 민국일보 발행인 경희대 교수 역임.
성북동 비둘기를 지으신 시인이기도 하다.
길상사와 한용운 시인의 집 탐방시 꼭 찾는 시인의 언덕이다.
-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산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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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과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 자는
연상, 호는 연하 또는 백범으로 1919년 상해로 망명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동학농민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다.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을 거쳐 국무위원과 주석을 지냈다. 이후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민족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고자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고 좌우합작의 이념적 통합을 이루었다. 해방 이후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그는 반탁운동을 맹렬히
전개했고 완전자주독립노선을 주장했으나, 1949년 6월 경교장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저서로는 <백범일지>가 있다.
▲강제 수역만이 아니라 혹독한 작업을 했던 옥사 전경 사진.
▲ 붉은 벽돌에 새겨진 피와 눈물의 흔적이 아닐까? ㅜㅜㅜ
▲ 한센병동.
나병(癩病)은 한자 癩(문둥병 라)와 病(병 병)을 합친 것으로, 癩는 두음 법칙에 의해 '나'로 읽힌다. 이는 말 그대로 '문둥
병'을 가리키는 말이며 '살이 썩거나 물러서 힘없이 처져 떨어지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동사 '문드러지다'에서 왔다.
그러나 한센병을 앓고 있는 한센인들의 사회에서 이 말들은 전통적으로 편견과 차별이 담긴 표현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문둥병'이나 '나병'보다 병균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한센병' 쪽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나무위키
▲ 민족의 혼 그릇.
▲ 그릇 안에는 이승을 떠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저 있다.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 사형수들의 마지막 비명을 들었던 통곡의 나무가 삶을 마감했다.수령(壽齡)은 100년으로 추정된다.
귀를 열고 들었을게다. 나뭇잎과 가지가 흔들렸을 것이다. 눈물도 흘렸고...
▲ 뒤를 돌아 찰칵~한 컷을 담는다.동행한 님들 모르게 고개 숙여 삼가 명복(命福)을 빈다.
▲ 쓰러지기 전 생전의 미루나무.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리었다.
▲인왕산 줄기가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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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축제-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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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연 무대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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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뜻깊은 광복절 걷기와 음악회 였는지요?
귀가가 늦지는 안았는지요...
개인 사진 중 불편한 사진은 지워 드리겠습니다.
내년에도 함께하시어요.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ㆍ
덕분에 멋진공연도 잘 감상했습니다ㆍ
선열들의 희생정신에 다시한번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해야함을 다짐해봅니다ㆍ감사 합니다ㆍ
광복절을 맞아 뜻 깊은 시간을 가졌지요.
선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렸던 하루였구요.
잊지 말아야 할 역사현장을
보면서 희생하신 선열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해졌어요
뜻깊은 광복절날 좋은 길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흑과도 같은 암울함에서도 목숨을 바치신
영령들께 머리 숙였던 뜻 깊은 일정을 보냈지요.
처음으로 가본현장 이었어요 잊지말아야할 현장이었어요 맛집 순대국도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선조님들의 나라 사랑을 체감했지요.
내년에는 손자 손녀들과 손잡고 오시어요.
자세히도 올려주셨습니다
역시 이같또로따님~~♡♡
이리 멋진 하루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8,15일의 감동을 이렇게 보내게 되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태권도의 퍼포먼스 멋진 중창단의 하모니
그리고 손승연과 박정현은 비줄수 없는 멋진 환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또 자주 뵙기를요~~^^
어두움 속에서 해방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영령을 기억해야지요.
현호새님~음악회의 감흥도 보람차셨겠지요?
81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젊은 엄마와 아들이 함께
역사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생생한 현장교육이구나 싶었고,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왔습니다.
하나우마님과 함께하여 더욱 의미가 깊었지요.
내년에는 코스를 좀 바꾸어 안가 본 곳도 찾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