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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5코스(원문버스정류장-녹진국민관광지)
여행일 : ‘22. 6. 25(토)
소재지 : 전남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 일원
여행코스 : 산소버스정류장→송정마을→원동마을→장포마을→학동마을→우수영국민관광지→진도대교→녹진국민관광지(12km, 실제는 11.38km를 3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5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해남·영암구간(149.5km)의 다섯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해남의 들녘을 걷는 이 코스의 주요 볼거리로는 우수영 및 녹진 국민관광지를 꼽을 수 있다.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해남군과 진도군에서 경쟁하듯이 유원지를 만들었다. 명량해전의 영웅인 충무공을 그 중심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 들머리는 ‘원문버스정류장’(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서영암 IC에서 내려와 강진방면 2번 국도. 서호교차로(영암군 서호면 서호리)에서 49번 지방도(진도방면), 구지교차로(해남군 화원면 영호리)에서 77번 국도(진도방면), 우수영을 지나 사교교차로(해남군 문내면 석교리)에서 빠져나와 801번 지방도를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문마을’의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네비게이션을 이용(‘원문버스정류장’을 입력)해 찾아갈 수도 있다.
▼ 5코스(안내도는 ‘해남 5코스’로 적고 있다)는 ‘원문버스정류장’에서 ‘녹진국민관광단지’에 이르는 길이 12km의 둘레길이다. 이 코스도 역시 해남의 들녘을 걷는다. 하지만 명량해전의 주 무대인 울돌목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덕분에 해남군과 진도군이 서로 경쟁하듯 만들어놓은 관광단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용암리(龍岩里)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신월마을 방향의 18번 국도 아래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신월마을은 일제강점기 ‘삼덕포 간척지’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 이때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시멘트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널디 너른 해남 들녘에 농업용수를 대주는 수로(水路)다. 그런데 이게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넉넉하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수로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 웅장하면서 로맨틱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우리나라도 저런 것 하나쯤 가졌으면 좋겠다며 입맛을 다셨었는데, 저 수로도 잘만 다듬으면 명품경관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싶다.
▼ 실제는 사교교차로(해남군 문내면 석교리)에서 시작했다. 집사람의 불편한 무릎을 감안해서다. 아니 눈요깃거리도 없는 구간을 줄이는 대신, 그 시간을 울돌목에 조성해놓은 관광단지에서 보내고 싶었다는 게 진짜 이유다. 꼼꼼히 둘러보다 충무공의 애국충정을 조금이라도 나누어갈지 누가 알겠는가.
▼ ‘명량로(우수영·진도 방면)’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5분쯤 지나 만나는 ‘송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선다.
▼ 도로를 벗어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송정마을’이 손짓한다. 법정 동리인 ‘석교리(石橋里)’에 속한 일곱 개(석교·심동·신창·일정·목삼·삼덕·송정)의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이다.
▼ 태극기와 지자체기가 함께 나부끼고 있는 송정마을회관은 어르신들의 쉼터를 겸한다. 무더위에 한파, 미세먼지까지 더한 것을 보면 냉난방은 물론이고 공기청정기까지 갖추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주여건 개선’이라는 화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지자체들의 현실이지 싶다.
▼ 마을로 들어서니 능소화가 반긴다. 여름철을 상징하는 꽃이다. 사람들은 여름의 산하를 ‘초록의 바다’라 일컫는다. 하지만 여름이 깊어갈수록 그런 푸름은 서서히 지겨워진다. 대신 화사한 꽃이 그리워진다. 이때 꽃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주는 꽃이 바로 능소화이다. 그런 능소화가 고즈넉한 시골 담벼락에서 화사하게 피어났다.
▼ 마을 앞 전신주에서 ‘서해랑길’의 표식을 찾아냈다. 이제부터는 서해랑길의 표식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 마을 앞에서 왼편으로 진행한다. 원동마을 방향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2주 전에 걸었던 4코스와는 사뭇 다르다. 간척지의 너른 들녘을 일직선으로 꿰뚫고 지나가던 4코스와는 달리 이번 5코스는 눈에 들어오는 길마다 아름답게 휘어져 있는 것이다.
▼ 길가 경작지도 논 대신 밭으로 바뀌었다. 그래선지 ‘둠벙’을 심심찮게 만난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웅덩이가 바로 ‘둠벙’이다.
▼ 수확을 끝낸 배추밭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런데 밭고랑에 버려진 건 김장용이 아닌 양배추다. 배추의 고장답게 봄철에는 양배추를 생산하는가 보다. 참고로 해남배추는 흰 눈이 쌓인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한겨울에도 아삭하고 신선한 김치를 담아먹을 수 있단다.
▼ 송정마을에서 9분. 둘레길은 아까 송정마을로 들어가면서 헤어졌던 ‘명량로’를 횡단한다. 해남읍과 우수영을 잇는 해남읍의 주요 간선도로(幹線道路)이다.
▼ 횡단지점에는 서해랑길의 이정표(우수영관광지↑ 9.3㎞/ 문내면사무소→ 4.2㎞)가 세워져 있었다. 5코스에 대한 안내(시·종점 거리)는 하단에 따로 적었다. 그런데 종점(녹진 관광지)으로 가는 도중 거치게 되는 우수영이 종점보다도 더 멀게(8.3㎞) 표기된 이유는 뭘까? 그나저나 출발지에서 이곳까지는 2.9km. 핸드폰의 앱은 1.14km를 찍고 있다. 출발지를 옮겨 1.7km를 단축시킨 셈이다.
▼ ‘해남은 논농사?’ 해남이 간척사업으로 생긴 고장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오늘 걷고 있는 문내면은 대부분이 밭이고, 그 밭에서는 한겨울에도 푸른 배추가 자란다. 그게 하도 넓다보니 전국 최대 배추생산지가 되었고, 2006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농산물 지리적표시(제11호)’에까지 등록되었다.
▼ 구릉지의 언덕을 넘자 ‘원동(院洞)’ 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용암리에 속한 자연부락으로, 우수영과 원문에 기원을 둔 지명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하나 더. 이 마을에는 옛 추억을 불러일으킬만한 꼬맹이 정미소가 있으니 놓치지 말자.
▼ 하지(夏至)가 4일 전이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하지는 낮이 가장 길다.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산하는 이미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과실은 저 복숭아처럼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간다.
▼ 원동마을을 지나면서 주변 풍경이 확 바뀐다. 밭 일색이던 아까와는 달리 들녘이 온통 논으로 뒤덮였다. ‘해남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해남이 아니다’라던 어느 글쟁이의 표현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뭔가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게 아닌가. 다가가보니 자리를 잡아가는 모에 빨강색 우렁이 알이 매달렸다. 저 알에서 깨어난 우렁이들은 잡초를 방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용 우렁이가 아닌 유기농 우렁이로 분류한다.
▼ 하지만 논농사 지역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논밭이 번갈아 나오다가 이내 고원을 연상시키는 구릉지로 올라선다. 그러자 강원도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확 펼쳐진다.
▼ 작물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귀리를 심었다. 거친 식감으로 인해 국내 생산이 거의 끊겼다가, 타임지에 ‘건강에 좋은 10대 음식’으로 선정되면서 국내 소비 및 생산량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단다.
▼ 귀리로 뒤덮인 고개를 넘자 둘레길은 19번 국도의 굴다리를 통과한다. 그리고는 선두리의 들녘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만은 그대로다. 흔하디흔한 논이 이곳에서 만큼은 귀하신 몸으로 대접을 받는다.
▼ 지자체가 보여주는 호의는 둘레길 순례자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다. 서해랑길을 걸으며 주의해야 할 내용을 꼼꼼히도 알려준다.
▼ 장포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조물주가 아니면 그 누가 저렇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 오늘의 주전부리도 역시 산딸기가 되어주었다. 걷는 도중 곳곳에서 산딸기 무리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꾼인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두 손 가득이 따더니 내 입에다 넣어준다. 그러자 새콤달콤한 기운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행복하다. 이런 게 사랑인가 보다.
▼ 고개를 넘으니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하지만 용암방조제를 막아 생겨난 들녘은 벼 대신 갈대만 가득하다. 간척지를 조성한 뒤 염분을 빼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최상의 쌀을 생산하기 위한 과정이라 하겠다.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한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은 질뿐만 아니라 밥맛까지도 뛰어나다고 알려지니 말이다.
▼ 길가에 작년 가을에 생산된 볏짚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곤포 사일리지’가 개발되면서 퇴비로 여겨지던 볏짚이 이젠 가축의 사료로 변신했다. 비닐로 밀봉하고 혐기 발효를 유도하여 최고의 사료로 변신시킨 결과다.
▼ 기분 좋은 풍경만 마냥 펼쳐지는 건 아니다. 코끝을 찡그리며 염소 사육장을 지나는가 하면, 농경지를 침범한 태양광발전소가 싫어 눈살을 찡그리기도 한다.
▼ 말뚝 모양의 이정표(종점 5.1㎞/ 시점 6.2㎞)를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장포마을’이 나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만이다. 장포마을은 법정스님의 생가가 있는 ‘선두리(先頭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탓에 근처 ‘선두마을’에 편입되어 있단다. 회관만 덜렁하니 지어져 있을 뿐 마을 분위기가 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마을회관을 지나자 길이 2차선으로 넓어졌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뒤돌아보니 장포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집이라고 해봐야 대여섯 채가 전부. 옆 동네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하겠다.
▼ 오늘처럼 장마 뒤끝에는 곡예에 가까운 걸음걸이도 필요하다. 질퍽거리는 흙탕물을 피하다보면 발은 어느새 길가 축대위로 옮겨간다. 그리고는 외줄 타는 광대처럼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 이번의 연못은 둠벙의 수준을 넘었다. 맞다. 5코스를 걷다보면 이 정도의 저수지를 여럿 만나게 된다. 학동저수지, 학동1저수지, 학동2저수지 등 이름표까지 당당하게 달았다.
▼ 장포마을을 지나자 한적한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부드럽게 너울대는 구릉지 위로 구불대며 흘러가는 농로가 참으로 매혹적이다. 6월이라 구릉지 대부분이 텅 비었지만,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이면 온통 푸른 배추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 학동마을을 250m쯤 남겨놓은 지점의 이정표(종점 3.7㎞/ 시점 7.6㎞)를 카메라에 담아봤다. 학동마을을 직진 방향에 두고, 둘레길을 오른편으로 우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길은 학동마을에서 다시 만나고 있었다.
▼ 장포마을에서 20분. 둘레길은 ‘학동(鶴洞)’ 마을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고샅길을 따라 마을을 횡단한다. 학동마을은 김장용 배추로 유명하다. 해남의 겨울 배추는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문내면·황산면·화원면 등 화원반도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덕분에 해풍을 먹고 자라 식감이 좋고 미네랄이 풍부하며 달콤하고 고소한 향으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학동마을의 배추밭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3일(KBS-1TV)’까지 촬영했겠는가.
▼ 큼지막한 규모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마을은 회관을 두 개나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무더위 쉼터’로 이용된다. 참고로 학동(鶴洞 또는 학골)이란 지명은 이 마을에서 학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세가 학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할머니들의 자가용도 많이 바뀌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던 분들이 언제부턴가 자신만을 위해 제작된 자가용을 몰고 다닌다. 편의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췄으니 모터가 없는 수동이라고 해서 뭐가 문제겠는가. 내리막길에서는 브레이크를 잡고, 걷다가 지치면 안락한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 그만이다. 마실 것? 의자 아래에 짐칸을 배치했으니 ‘걱정아 물러가라’이다.
▼ 마을 앞 비닐하우스는 농작물 대신 담뱃잎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수익성이 더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나저나 옛날에는 동네마다 가득가득 논과 밭을 채웠던 담배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옆집 순이네도, 뒷집 철수네도 모두 담배농사로 먹고 살았다.
▼ 마을을 빠져나오니 삼거리에서 ‘삼정마을’ 표지석이 반긴다. 하지만 둘레길은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우회하라 이른다.
▼ 그러나 이 길도 ‘삼정마을’로 연결되고 있었다. ‘학동리(鶴洞里)’를 구성하는 4개의 자연부락(명안·삼정·충무·학동) 가운데 하나다. 다만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고 스치듯 지나친다.
▼ 언덕으로 오르면서 바다와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해남반도에서 가지쳐나간 화원반도(花原半島)와 진도 사이의 바다, 즉 ‘명량해협’이다. 오른편에서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는 건 무인도인 ‘녹도(사슴섬)’일 것이다.
▼ 삼정마을을 지난 둘레길은 이제 임도를 따른다. 모처럼 만난 그늘진 길이다.
▼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지난번 드린 팁처럼 서해랑길은 앞사람과의 간격을 200m쯤 유지하며 따라가는 게 좋다. 앞사람의 동선을 잘만 감안하면 상당한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사람들처럼 오히려 고생을 더 하는 경우도 있다. 탐방로를 벗어나 왼편으로 이동했으나 지름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 나오는 사람들이다.
▼ 앞사람들을 타산지석삼아 오른편으로 향한다. 둘레길은 이정표(종점 1.6㎞/ 시점 9.7㎞)를 만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선다. 5코스 유일의 숲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 웃자란 잡초를 헤치며 고개를 넘자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나타난다. ‘명량대첩공원’은 이순신장군이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막아 조선을 구한 ‘명량대첩’의 현장에 조성된 기념공원이다. 이색대첩비를 출발해 전망대를 거친 다음 해전사기념전시관까지 1.1km구간에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 데크 산책로를 따라 ‘우수영국민관광지’로 들어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만이다. 울돌목은 ‘정유재란 3대 수군 대승지’ 중 하나인 명량대첩의 격전지다. 세계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11의 대승리를 거뒀다. 어느 지자체가 이런 호재를 그냥 지나치겠는가. 임진왜란 최후의 교두보였던 울돌목 일대를 성역화해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1990년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진도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쌍둥이 다리로, 다리 북단(해남)에 ‘우수영국민관광지’, 남단(진도)에는 ‘녹진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 ‘이 뭐꼬!’ 이젠 식상해져버린 화두가 되었지만, 저 구조물의 정체는 대체 뭘까? 2년 전쯤 공수훈련용 탑을 이색대첩비로 탈바꿈시켰다는 기사가 떴었는데, 저것 역시 공수훈련용의 시설이 아닐까?
▼ 몇 걸음 더 걷자 우수영 국민관광지의 얼굴마담이랄 수 있는 ‘이색대첩비’가 얼굴을 내민다. 너무나 유명한 이순신의 어록,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가 적혀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니 이 얼마나 비장한 마음가짐인가.
▼ 독특하게 생긴 조형물도 보인다. 이순신장군의 쇠사슬 전법에 사용한 ‘쇠사슬감기 틀’의 모형이란다. 해남과 진도 해안에 쇠사슬을 매어 놓고 일본 함선을 유인하여 급한 물살을 이용하여 쇠사슬을 양쪽에서 당김으로써 배를 전복시켜 격침시키고 빠져나온 함선들은 근접한 거리에 있던 조선수군이 섬멸시켰다고 하는 구전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근년 바닷가 바위에 박혀 있는 큰 쇠고리가 발견되었고, 당시 널리 사용된 기술과 장비를 참작하여 복원시켰다.
▼ 의병들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조형물도 여럿 보인다. 명랑대첩은 당시 해남과 진도의 해안지방 사람들이 수군과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운 항쟁의 결과였다. 부자·형제, 이웃들이 끝까지 싸웠다며, 안내문은 적선에 포위된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구하다가 적군이 쏜 탄환에 맞아 전사한 마하수와 네 아들, 낫과 곡괭이를 들고 싸우다 전사한 조응량 부자와 양응지, 돌과 창으로 일본군을 무찌르다가 전사한 오국신·오계적 부자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었다.
▼ 폐선을 수리하고 있는 민초들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눈에 띈다. 칠천량의 패전 이후 우리에게 남은 전선은 부서진 판옥선 아홉 척이 전부였다. 이때 밤낮으로 폐선을 수리해 명량해전을 가능케 했던 이들은, 정충량, 김세호 등과 함께 혼신의 힘을 기울인 무명의 선장과 목수들이었단다.
▼ 수변무대를 지나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으로 간다. 사진의 오른편 건물(왼편은 케이블카 탑승장)인데, 정유재란 당시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역사와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꾸며져 있다. 건물 외형은 판옥선을 본떴다고 한다.
▼ 전시 공간은 옛 역사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꾸몄다. 1층은 명량해전 당일 치열한 전투상황을 알려주는 난중일기가 패널로 구성돼 관람객을 맞는 가운데, 명량대첩의 현장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4D영상관이 운영돼 직접 배를 타고 명량해전 격전의 현장을 눈앞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 2층은 당시 사용하던 무기들을 전시했다. 또한 조선의 판옥선과 왜선을 재현해 조선 수군의 전력과 전술, 지형 등 승전 요소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 3층은 ‘세계 7대 해전’의 그래픽 패널, 명량대첩 승리의 숨은 주역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의 변천과정도 엿볼 수 있다.
▼ 이제 외부를 돌아볼 차례다. 맨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는 생략. 그 아래의 ‘명량대첩탑’부터 찾았다. 왜적을 물리친 상황을 부조형식으로 기록해놓은 일종의 기념물이라 하겠다. 계단 아래에는 ‘회령포의 결의’란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다. 명량해전을 코앞에 둔 시점. 회령포에 당도한 이순신이 전라우수사 김억추 등 관내 장수들과 더불어 최후의 결전을 맹세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 또 다른 ‘이순신 어록비’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말은 곡창지대인 호남이 왜적에 넘어가면 나라 전체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임진·정유·병자란 구국공신충혼비와 뜻풀이까지 해놓은 어록비, 기념공원 조성비 등의 빗돌들을 곳곳에 세워놓았다.
▼ 명색이 국민관광지인데 포토죤 하나 없겠는가. 울돌목은 물론이고, 진도대교와 진토타워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당에 들어앉았다.
▼ 바닷가에 선 이순신은 갑옷이 아닌 평복에 칼 대신 지도를 들었다. 무장의 기본인 어깨의 힘도 뺐다. ‘고뇌하는 이순신’이라니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을 숱한 좌절과 고뇌, 목숨을 건 전투, 그리고 펼치고자 하는 전술 등으로 고뇌하고 있는 이순신을 묘사하고 있을 것이다.
▼ 매표소 앞 광장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다. 진도아리랑 등의 민요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있는데 내용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 광장 한켠은 체험마당 차지다. 장군복장으로 사진을 찍거나. 판옥선 만들기, 이순신 어록쓰기 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명색이 관광지인데 먹거리가 빠질 수 있겠는가. 작은 식당가과 푸드 트럭이 들어섰는가 하면,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곳도 눈에 띈다.
▼ 우수영관광지와 진도타워를 오가는 해상케이블카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단다. 울돌목해협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하늘에서 역사의 현장인 명량해협을 온전히 볼 수 있단다. 특히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을 탑승할 경우 영화 명량에서 놀라움을 선사한 울돌목 회오리를 발아래로 감상할 수 있다나? 진도대교의 미려한 자태와 보석처럼 빛나는 다도해도 함께 담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 30분 정도의 관광지 투어를 끝내고 진도대교를 건넌다. 길이 484m에 너비가 11.7m인 이 다리는 한국 최초(1984년 개통)의 사장교로 알려진다. 교각을 세울 수 없는 울돌목해협의 여건 때문에 양쪽 해안에 강철교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취했다. 2001년에는 제2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국내 최초의 쌍둥이 사장교가 된다. 하나 더. 수문장은 지자체의 특징을 잘 살렸다. 우수영의 고장 해남은 거북선, 반면에 진도군에서는 진돗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 북단의 바닷가에는 110m 길이의 스카이워크가 놓였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삼아, 바닥을 투명유리로 깔고 직선거리로 32m까지 바다를 향해 띄우면서 스릴감을 극대화했다. 강화유리 위를 걸으며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는데다 아슬아슬한 스릴감까지 더해져 우수영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되었단다.
▼ 다리 아래로는 ‘명량해협’이 펼쳐진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수로로 가장 좁은 부분은 폭 325m에 수심이 25m에 불과하다. 해류가 이 좁은 수로를 지날 때 격류가 부딪히며 천둥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 불린다. 그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왜적을 대파한 전투가 ‘명량대첩’이다.
▼ 다리 남단에는 ‘녹진국민관광단지’가 들어섰다. 해남구간의 종점이자 진도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녹진(鹿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017년 둔전리 및 녹진리 일원 25만여㎡를 관광지로 지정받아 공공시설과 숙박시설, 상가시설, 관광·휴양·오락 시설을 조성해가는 중이다. ‘망금산’꼭대기 진도타워에서 이 광장까지 모노레일도 놓인단다.
▼ 널따란 광장의 한켠에는 ‘진도대교준공기념탑’이 자리를 차고앉았다. 이순신장군이 벼락같이 일본 해군을 무찌른 이곳에, 그로부터 387년 만에 다리가 놓였단다. 그러면서 이 다리는 해남과 진도를 이을 뿐만 아니라 이 겨레의 영원한 넋의 역사를 잇는 의미를 지녔다고 적고 있다.
▼ 녹진관광지에도 꽤 많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국조 단군상도 그중 하나다.
▼ 바닷가에는 ‘주말장터’가 들어섰다. 농수특산물 판매와 먹거리 장터, 공연마당 등이 열리는데,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한단다. 참고로 진도는 ‘전복대파 꼬치구이’와 ‘울금 카페라테’가 특색 있는 음식으로 꼽히며, 홍주·구기자·울금·검정쌀·전복·미역 등의 특산물도 구입할 수 있다.
▼ 실물 크기의 판옥선도 전시해 놓았다. 판옥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군선으로 일본 함대를 격파하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2층 구조로 나무판자로 갑판 위에 집을 꾸몄다 하여 판옥선이라 명명됐고 대장선은 160명까지 승선할 수 있단다.
▼ ‘명량대첩 해전도’가 눈길을 끈다. 그림에는 홀로 왜군을 막아선 이순신의 배가 보이고 뒤쪽에 나란히 선 판옥선이 그려져 있다. 고군분투다. 원균의 패전으로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된다. 이때 우리 수군이 보유한 배는 겨우 13척, 하지만 133척이나 되는 왜선을 무찔렀다. 명량대첩의 승리 비결은 신비의 울돌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밀물 때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좁은 울돌목으로 한꺼번에 밀려오다가 서해로 빠져 나가면 해안 양쪽에 급경사가 생겨 빠른 급조류로 변하게 된다. 325m의 폭이지만 실제로 배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것은 40-50m에 불과하단다.
▼ 완주를 증명해주는 서해랑길 안내판은 18번 국도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세워져 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을 걸었다. 앱이 11.38km를 찍고 있으니,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우수영관광지를 둘러보느라 그만큼 지체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코스를 줄여주었지만 집사람에겐 이마저도 무리였던가 보다. 우수영과 녹진 관광지를 꼼꼼히 살펴본다며 속도를 내더니만 집에 돌아와서까지 무릎통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다음 주말에 가려는 지리산둘레길은 난이도가 ‘상’으로 꼽힌다는데 어이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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