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럿 브론테(1816 – 1853)
영국 북부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아일랜드 계 성공회 신부에게서 태어났다. 기숙학교 등지에서 공부했고. ‘제인에어’를 썼다.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와는 자매로, 살럿이 언니이다. 여동생 앤도 시를 썼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죽었다.(에밀리도 결핵으로) 자매끼리 문학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에밀리와 벨기에 유학을 갔다가 1846년에 돌아와서, 에밀리와 2인 시집을 냈으나 딱 2권만 팔렸다.
1847년에 ‘제인 에어’를 써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제인 에어>
주인공 제인 에어는 고아가 되어 삼촌 댁에서 자라다. 여기저기에서 공부했고, 어린 프랑스 소녀 아델의 가정교사가 되어서 그 집을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델의 아버지 로체스터의 청혼을 받아들였으나, 정신이상의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집을 나와버린다.
하여간에 이런 줄거리인데, 아주 인기가 높고 유명한 소설이 되었다.
고딕소설의 전통도 이었다고 한다.
"제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혼도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혼도 있고 꼭 같은 감정도 지니고 있어요. (중략) 지금 제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동등한 자격으로 말이에요. 사실상 우리는 현재도 동등하지만 말이에요."
하찮은 신분의 한 가정교사 여인이 짝사랑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이런 당돌한 말을 늘어놓는다는 건 빅토리아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절대적인 가부장 사회였다. 샬럿 브론테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소설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집주인 로체스터에게 연정을 품게 되지만 로체스터에겐 정신병을 앓는 부인이 있었다. 제인 에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며 저택을 떠나고, 눈 쌓인 길에서 빈사 상태로 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환상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로체스터 목소리를 듣고 저택으로 달려간다. 저택에 가보니 불이 나서 로체스터는 화상을 입어 실명한 상태였고, 부인은 사망한 다음이었다. 제인 에어는 자신이 로체스터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그와 결혼한다.
줄거리 자체는 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학으로 문학을 깨우친 빅토리아 시대 한 여성이 최초로 창조해낸 스토리텔링으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4) 에밀리 브론테(1818 – 1848)
언니가 살럿 브론테이고, 막내가 앤 브론테로서, 함께 문학소녀 시기를 거친다. 셋이 시집도 냈다.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이 ‘폭풍의 언덕’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브론테 자매는 엄마가 일찍 죽었으므로 이모의 보살핌을 받았다. 오빠는 아편도 하고, 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오빠가 죽은 지 3개월 뒤에 에밀리도 역시 결핵으로 죽었다 폭풍의 언덕을 발표할 당시에는 비윤리적인 작품이라 하여 좋은 평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어서 서머 셋 모움 등이 극찬함으로 명작 중의 명작 대우를 받는다.
주인공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내면의 움직임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범벅이 되어 뒤엉킨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줄거리>
사랑이 얼키고 설키면서 복수를 하고, 또 복수를 하고
1801년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폭풍의 언덕에 세입자인 로크우드씨가 찾아온다. (집주인은 히드클리프) 가정부 넬리 딘에게 그동안 있었던 두 집안의 역사에 대해서 듣는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이었던 언쇼는 리버풀에 갔다가 거지꼴을 한 소년을 데려온다. 이 아이가 히드클리프이다. 가족들은 이 소년을 학대했고, 특히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미워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머슴처럼 가혹하게 학대한다.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라 친구이자 서로 좋아하는 캐서린까지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아들인 에드거에게 사랑을 품자, 이에 상심한 히드클리프는 가출한다.
몇 년후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 히드클리프는 그는 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턴에게 자신이 당한대로 앙갚음을 하여, 무식한 머슴으로 키운다. 새끼 뻐꾸기가 다른 새의 알들을 내치는 것처럼, 폭풍의 언덕의 주인이 머슴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서 결혼한 뒤, 복수심에 불타서 학대한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이사벨라는 런던으로 달아나서 아들을 낳는다. 한편 에드거는 죽은 아내가 남긴 외동딸 캐서린을 곱게 키운다. 이 아들은 히드클리프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 아래 세대들은 또 아들과 딸이 사랑하는 것으로 ------, 이야기가 진행한다.
히드클리프는 아들을 캐서린(자기의 애인이 시집가서 낳은 딸)과 결혼시켜서 드러시크로스를 먹어치울 생각을 한다. 결국 히드클리프는 아들을 캐서린과 강제로 결혼시켜, 탐욕을 채운다. 딘(가정부)은 셋방을 구해서 어릴적부터 모셔온 캐서린 아가씨를 다시 모시고 싶어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1802년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가던 로크우드는 폭풍의 언덕에 다시 온다. 전세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는데, 딘 아주머니는 히드클리프가 죽었다고 했다. 비가 몰아치는 날, 눈도 못 감고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어턴과 캐서린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결혼을 앞두면서, 폭풍의 집과 드러시크로스저택의 불행한 역사는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현대문학은 ‘고독’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이 문제를 잘 다루었다. 극단적인 금욕과 고립이 가장 난폭하게 표출된 작품이다. 이것은 완전히 정신이상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에는 현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소설은 사랑과 미움,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뛰어 넘는 차원의 빅극을 보여준다.
문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차원에서, 폭풍의 언덕을 또 다른 방법으로
읽기를 해봅시다.
요약하면 신분이 다르고, 남과 여의 성 차이 등이 깔려 있으므로 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으로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주인집의 아들(힌들러)과 딸(캐서린), 그리고 이 집의 머슴인 아이 히드클리프)
주인집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히드클리프는 다른 사람이고, 남이다.
*짚시 라는 말에는 인종이 다른 사람, 집없이 떠도는 사람의 뜻이 있고
유럽인은 두려운 존재로 인식한다. 히드클리프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부를 이룬 부르주아지와 도시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은 짚시적 사람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외부의 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소설에 나타나는 갈등은 일반적으로 가정의 밖에서 일어나며,
가정은 외부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곳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폭풍의 언덕은 집 안이 갈등의 장소가 된다. 리버풀에서 데려온 아이, 히드클리프는 집없는 아이로서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반대로, 하층민이 상층민으로 상승하는 방법은(하층민은 아주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공부나, 고시 시험 등의 방법이 차단된 사회에서는 상류층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방법이다.(현실에서는 이것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 등의 문학에서는 아주 즐겨 사용한다.)
히드클리프는 주인집 딸 캐서린과 결혼하고자 한다.(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실패하자 가출하여, (소설에서는 지워져버린 히드클리프 인생이다.) 돈 많은 부자가 되어 나타난다.(소설이니까 가능하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일언반구도 없다. 독자의 심리적 욕망을 채워주므로 돈 번 방법에는 관심도 없다.)
신분에서 인생 역전이 일어나면서 잔인한 복수극을 벌린다.
(복수는 고딕 소설에서 나오는 잔인함과 같으므로, 고딕양식이 남아 있다라고 한다.)
현대의 이 소설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줌으로 독자에게 재미를 주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금 배운 사람이니까 깊은 읽기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작이라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작품들이 모두 이런 읽기가 가능합니다.
(*브론테 자매의 소설은 낭만주의 소설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