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무용연구소 서양의 춤을 알리고자 만든, 배구자 무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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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5. 10:00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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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무용연구소
서양의 춤을 알리고자 만든, 배구자 무용연구소
요약 1929년 여름, 신당동에서 처음 문을 연 배구자 무용연구소. 설립자는 배구자.
배구자는 일본에서 유명한 덴카스 연예단 입단하여 빼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인기를 얻음.
마술보다 무용에 뜻을 가지고 덴카스를 나와 남편 홍순언을 만나 무용연구소를 설립.
서양무용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춤을 창작하려고 노력함.
처음으로 무용연구소를 개설했던 배구자
그녀는 동양극장의 산파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최승희에게 가려져 무용사에서 소외되어왔다.
서양의 춤을 가르치고 보급시킬 목적으로 맨 처음 무용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은 배구자(裵龜子)다. 1929년 여름, 신당동에서 문을 연 연구소의 이름은 '배구자 무용연구소'였다.
그녀는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토 슈즈를 신은 인물이기도 하다. 또 1928년 경성공회당에서 처음으로 서양춤 공연을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62년 성영문화사에서 발간한 「한국 연예대감」에 의하면 배구자는 1907년 대전 태생으로, 7세 때에 그의 고모이자 양어머니인 배정자에 의해 도일, 당시 일본에서 유명한 덴카스 연예단에 입단했다. 덴카스는 마술사로, 춤과 노래 그리고 곡예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해 인기를 얻었는데, 이곳에서의 춤과 노래는 정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을 지닌 것이었다고 한다.
배구자가 본격적으로 서양춤을 접하게 된 것은 15세 때 도미하여 백계 러시아 무용가인 파블로바에게 4년간 사사했을 때라고 한다. 처음으로 국내 공연을 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용연구소를 개설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22세. 그녀는 이미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부터 국내 신문에 자주 보도되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즉, 덴카스는 어린 배구자가 소속되어 있는 연예단을 이끌고 한국 땅에도 건너와 여러 차례 공연을 했고, 그때마다 '천재 소녀 배구자'는 취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에도 그녀가 배정자의 조카라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빼어난 미모에다 재능까지 갖추었던 그녀는 덴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부터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중에서도 덴카스를 떠나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뜻밖의 일이었다.
덴카스를 떠났던 것은 이를테면 탈출이요, 도망이었다. 덴카스는 배구자의 천재성을 보고, 일본인 제자들을 제쳐두고 그녀를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마술보다 무용에 뜻이 있었던 배구자는 무작정 연예단에서 나와 평양으로 향했다.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 철도국 직영의 호텔에서 그만 여비가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이때 그녀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그 호텔의 지배인이었던 홍순언이었다. 그는 한국인이었고, 배구자의 포부를 잘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가까워지더니 부부가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연애를 했기 때문에 세상에 곧바로 알려졌다.
배구자는 거기서 중국행을 포기하고 돌아와 무용연구소를 차렸다. 그 뒷바라지를 해준 것은 물론 남편 홍순언이었다.
홍순언은 훗날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이었던 동양극장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배구자는 또한 남편과 함께 그 무대를 활용하여 신파극을 정착시킨 흥행사이기도 했다.
배구자는 서양무용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춤을 창작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무용연구소를 개설한 해 9월에는 연구생들을 거느리고 제1회 배구자 무용 발표회를 열었는데, 그때의 주 레퍼토리는 <금은의 황녀> <아리랑> 등이었다. 이 발표회가 끝나자 평양·수원·청주 등지를 순회하고, 이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공연을 갖기도 했다.
춤에 대한 그녀의 주관은 <매일신보> 1931년 1월 9일 자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금년부터는 특히 우리의 자랑인 조선 민요를 자주 무용화하여 무대에 올리는 동시에, 우리의 조상이 남겨준 검무·승무 같은 것을 이용하여 가무극 같은 데에도 손을 대어볼까 합니다"하고 포부를 말한 적이 있다.
그녀가 무대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1950년대 중반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평범하게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하와이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무용을 해외에 알리는 데 공헌이 컸던 할라 배(裵)는 그녀의 동생이다. 본명은 배용자. 배구자에겐 그밖에 숙자라는 동생도 있었는데, 그녀들 모두 '배구자 무용연구소'의 연구생들이었다. 배구자는 동생들과 함께 '배구자 소녀 가극단'을 만들어 일본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무용연구소 - 서양의 춤을 알리고자 만든, 배구자 무용연구소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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