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 키푸르
욤 키푸르를 위한 인지적 고백:비두이(Vidui)
진리를 추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미쯔바와 다른 행실들처럼 성찰과 자기 수정이 필요한 영적 노력입니다.
비판적 사고: 영적 수련
우리는 본능적으로—어쩌면 진화적으로 각인된 성향 탓일지도 모르지만—잠시 멈춰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주장을 검증할 시간을 갖기보다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찰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무수한 인지 편향이 우리의 판단을 흐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자아, 사회적 지위, 종교적 또는 정치적 정체성이 우리의 의견과 연결되어 있을 때, 데이터가 명백히 그런 변화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인지적 지뢰밭은 광활합니다. 그러나 ‘토라트 에메트(torat emet, “진리의 토라”)’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우리가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신성한 사명으로 여긴다면, 비판적 사고를 영적 수련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 탐구와 자기 비판에 헌신하는 데 있어 종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며, 비록 개인적인 대가를 치러야 할지라도 증거에 따라 우리의 견해를 기꺼이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유형의 진리 추구자들이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간의 편견은 필연적으로 스며듭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테슈바(teshuva)를 실천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알파벳 순서로 다양한 죄를 나열하는 욤 키푸르(Yom Kippur)의 비두이(vidui, “고백”) 정신에 따라, 다음은 지적 고백입니다. 이 글은 부분적으로 농담 섞인 어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진심 어린 기도이자, ‘헤쉬본 하-세헬(cheshbon ha-sechel)’, 즉 “지적 성찰”을 촉구하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기 교정을 위해 자신의 인지적 약점 앞에서 가슴을 치거나(혹은 얼굴을 감싸 쥔 채) 반성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과 지식을 더하는 이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훈련과 인격적 자질에 다시 한 번 전념합니다.
비두이 고백: A부터 Z까지의 아크로스티크(Acrostic)
욤 키푸르를 비롯한 가장 성스러운 날들에는, 우리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וטהר לבנו לעבדך באמת
“진리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 주소서.”
우리는 스스로를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자라고 자처하지만, 우리의 사고가 충분히 엄격하고 편견 없으며 자기 비판적이었다고 말할 만큼 뻔뻔하거나 고집스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건전한 추론과 증거에 대한 열린 태도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도 그 길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권위에 호소하며, 우리 자신의 생각이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갖도록 하기보다는 존경받는 권위자의 지지를 근거로 논리를 펼쳤습니다.
우리는 편향의 사각지대를 품고, 타인의 결론을 편향의 산물로 치부하는 한편, 우리 자신의 판단에 미치는 편향의 영향은 무시해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골라내고, 모순되는 증거는 외면했습니다.
우리는 이중 잣대를 만들어, 타인의 신념과 주장을 우리 자신의 것보다 더 엄격한 비판적 검증을 받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진실에 대한 갈망보다 자아와 명성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관점을 고려할 의도가 전혀 없으면서도, 증거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는 척했습니다.
우리는 집단사고와 사회적 압력이 우리의 신념을 형성하고 추론을 왜곡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신념 체계에 맞지 않는 결론을 이단으로 낙인찍고, 그것에 대해 지적으로 탐구할 의무를 스스로 면제했습니다.
우리는 이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이념적 메아리 방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양측의 의견을 듣거나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문제(와 사람)를 판단하며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며, 전문 분야 밖에서도 권위 있는 듯 말했고,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습니다.
우리는 호기심을 잃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점수를 따는 데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꾸어,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 특정 증거를 요구했다가, 그 증거가 제시되면 또 다른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교육과 연구를 소홀히 하고, 대신 기존의 결론에 집착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내부의 반대자들을 배척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상대방의 타당한 주장을 인정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능성과 확률을 혼동하여, ‘가능한’ 설명을 증거의 무게로 뒷받침되는 설명과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했습니다.
우리는 준과학적인 태도를 취하며, 듣는 이들을 감탄시키고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전문 용어를 남발했지만, 과학의 방법론이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그들을 조롱하고 인신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우리는 ‘짚인형 논법’을 구사하며, 타인의 입장을 부정확하고 허약하게 왜곡한 버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는 ‘트로이 목마 전술’을 사용해, 확립된 사실들로 둘러싸서 터무니없는 추측을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우리는 꿋꿋하게 버티며, 상대방이 타당한 주장을 펼쳤을 때조차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공격적으로 장황하게 말하며, 끝없이 복잡한 말장난을 동원해 상대방을 지치게 하고 일관된 반박을 할 수 없게 만들려 했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지식을 숨겼습니다.
우리는 과장된 기대를 품고 극단적인 예측을 내렸으며,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반증이나 더 설득력 있는 논거가 제시되어도 양보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열성적이어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근본주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의견, 그리고 의견 차이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라, 스스로를 비웃고 서로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고의로 저지른 지적 과오와,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아 저지른 과오들. 오늘 고백한 것들과 아직 고백하지 못한 것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우리는 오늘 이곳에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확증 편향과 반쪽 진실에 사로잡힌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지식의 소비자로서 더 분별력 있게 판단하고, 맹신과 순진함, 자기기만을 떨쳐내기 위해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를 교육해 나가기로 다짐합니다.
우리는 자기 비판을 강화하고, 우리 자신의 지적 맹점에 대비하며, 진정한 호기심과 선의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끊임없이 의견을 내세우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배우고, 심지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류가 지적 성장과 사상의 발전으로 이끄는 관문임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현인들(b. 예바모트 14b)이 힐렐과 샴마이 학파에 대해 회상한 바와 같이, 비록 우리가 의견이 다를지라도 진리를 향한 우리의 진지한 탐구가 평화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라”(스가랴 8:19)는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서로 간의 애정과 우정을 실천했습니다.
By David Bar-Cohn is Manager of Operations at the Academic Torah Institute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