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2024.10.25(금) 08;00-19;20
★집결장소/시간;당산역 Grand Convention Center 앞, 08;00
★여행코스;강화도연미정/월곶돈대-강화평화전망대-교동도 화개정원-대륭시장골목-삼별초기념물 관람겸 오찬(서울횟집)-
조양방직카페-갑곶돈대/전쟁박물관-광성보-초지진-저녁식사(두부랑콩비지식당)-김포공항역
★참가;77명(싱글 31명, 부부동반 46명
-강화도 전쟁박물관을 배경으로-
여행하기 좋은 10월이다. 어디를 가나 부드러운 가을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좋을 때다. 10월을 맞이하여 대열동기회 가을야유회는 강화도로 떠나는 여정이다. 여행은 자연속에서 몸과 마음에 평화를 주고 도시의 삶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기회다. 여행 출발지는 지하철2, 9호선 당산역 그랜드 컨벤션센터 앞이다. 관광버스 2대로 출발한다. 참가인원은 부부동반을 포함하여 77명이다. 서울시 강서구와 김포반도를 거쳐 강화도로 향한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섬중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서부전선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 하구를 경계로 북한과 맞닿아 있는 국방의 요충지이다.
강화도는 산과 바다와 갯벌을 품은 아름다운 고장이면서 지붕없는 역사박물관이라고 한다. 강화도의 첫번째 방문지는 연미정과 월곶돈대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 월곶리로 향한다. 연미정(燕尾亭)은 월곶돈대 안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누정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는 월곶돈대 연미정은 돈대 앞 물길이 '제비 꼬리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미정은 삼포왜란(1510 ) 때 중종이 경상좌도 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하사한 정자이다. 연미정에 오르면 강 건너 북한의 개풍군이 눈 앞에 바라보이고 동으로는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미정은 사방이 확트여 강화 8경 중 하나라 할 만큼 절경이다. 특히 달밤의 경치가 아름답고 석양의 풍광도 일품이라고 한다. 월곶돈대 외곽으로 경비초소와 높은 철조망이 가로막고 성곽 안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높은 곳에 연미정이 자리하고 있다. 느티나무 한 그루는 태풍 링링으로 꺾여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이곳은 남북분단의 경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묘호란(1627.2.23-3.3) 때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통한의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월곶돈대는 서해에서 한강과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조선시대 해상교통로의 요충지로 매우 번성한 포구였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강화도 해안을 따라 군사적 요새화한 것은 효종과 숙종때이다. 숙종은 5진 7보, 8포대, 54돈대를 설치했다. 월곶돈대를 관망하고 강화 제적봉평화전망대로 향한다. 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 제적봉에 위치해 있다. 내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2층 유리전망대 관람석에는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관광객들로 꽉차있었다.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경청하였다. 전망대에서 황해북도 개풍군까지는 2km 남짓이라고 하면서 개풍군 최전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형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영상을 보여주는 개풍군의 들녘은 농사일로 트랙터와 소달구지, 많은 농민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헤엄쳐 건널만큼 지척이건만 해안가에는 철조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인기척없는 물줄기를 따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남북이 대치한 최전방이 만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였다. 구름과 새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오직 사람의 발길만 묶였다. 내가 죽기전에 대한민국의 통일된 모습을 보고싶다. 그날이 언제 올련지 꿈같은 얘기다.
전망대 1층에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안쪽 기둥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통일 염원 메시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교동도 화개정원으로 향한다. 교동도는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분단되기 전까지는 황해도까지 헤엄쳐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교동도에서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까지는 직선거리로 2km 거리에 불과하다. 분단된 후에는 안보를 위해 섬 전체를 철책을 설치하여 내륙 같은 섬이 되었다.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로 한양과 가까우면서 조류가 급해 유배지로 최적지였다.
고려 21대 왕 희종, 조선시대 안평대군, 연산군, 임해군, 광해군, 영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됐다. 교동도 출입시에는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출입신청서와 신분증만 제출하면 된다. 교동대교를 건너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고구리, 왼쪽은 읍내리 방면이다.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고구저수지를 만난다. 수도권 강태공들 사이에 대물터로 입소문이 난 유명한 곳이다. 교동도의 들녘이 광활하게 펼쳐져 마치 김제평야를 보는 듯하였다. 평야지대는 원래 갯벌이었다. 강화도와 교동도는 원래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졌으며 조선 후기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교동동로를 타고 고구저수지를 지나 원형로타리에서 좌회전하면 화개정원이 나온다. 화개정원은 화개산 기슭에 조성한 정원이다. 화개정원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작은 초가가 눈에 들어온다. 재현한 연산군 유배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은 교동도로 유배돼 두달 후인 1506년 11월 생을 마감한다. 유배지 초가는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로 둘러져 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두웠다.
이를 위리안치(圍籬安置)라고 한다. 화개정원은 전망대까지 지그재그로 오르며 다섯가지 정원으로 구성된다. 약 18만 본의 식물이 계절별 다양한 색깔로 수놓는다. 곳곳에 설치한 선배드 해먹등에서 교동도 들판과 바다를 조망하며 쉬어가는 것도 이 정원을 즐기는 방법이다, 또 하나의 재미는 화개산을 상징하는 솥뚜껑 조형물 8개 가운데 6개를 찾아 인증하면 강화기념품을 제공한다. 화개정원의 진면목은 탐방로와 쉼터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광이다. 화개전망대에 오르면 전망은 정점을 찍는다. 두 날개의 부리가 돌출한 모양의 전망대는 강화군의 상징 새인 저어새를 형상화했다.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투명유리 스카이워크로 되어있다. 그러나 시간관계상 가보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눈을 호강시키고 대륭시장으로 향한다. 대륭시장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의 집결지였다.. 전쟁이 끝나면 얼른 돌아가려고 고향과 가까운 대륭리 일대에 진을 쳤다. 대륭시장은 실향민들이 황해도 연백시장을 그대로 본떠 만든 골목시장으로 교동도에서 유일한 번화가다. 그러나 시간이 멈춘 듯 1960-70년대 풍경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KT와 지자체가 시장내에 '교동스튜디오'를 구축하고 인공지능 TV '기가지니'를 설치했다.
추억이 담긴 노래를 신청하면 대륭시장에 설치된 11개 스피커로 그때 그 시절 노래가 흘러나온다. 교동스튜디오에선 지금은 사라진 1960-70년대 교복및 교련복 등의 소품도 빌려줘 과거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교동도 초입에서 사람들을 반겨주는 교동제비집은 교동도의 관광거점이자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교동 주민들은 이곳에서 카페와 갤러리 안내데스크 등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교동 제비집은 교동도의 관광명소를 360도로 볼 수 있는 가상현상(VR), 관광객이 자신의 사진과 마음에 드는 콘덴츠를 골라 넣을 수 있는 교동신문 만들기 등 체험형 콘덴츠들이 준비돼 있다.
입구에는 전기자전거를 포함한 대여용 자전거가 있다. 해안선을 따라 39km의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자전거로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숨겨둔 보물 쿠폰을 찾는 일은 여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대륭시장은 외지인의 발길이 늘어 관광시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교동향교이지만 시간관계상 생략하기로 하였다. 전인구 인솔자가 대신 설명해 준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고 한다. 안향(安珦, 1243-1306)은 1289년 11월 고려 충렬왕을 호종하여 직접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1290년 돌아왔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외포리 서울횟집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즐기고 그 지방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오찬메뉴는 밴댕이회무침에 생선회와 서더리탕이다. 바다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싱싱한 회다. 다양한 맛과 색깔의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채웠다. 밥을 먹는 여유로움속에서 행복한 모습이 가득했다. 서로 권커니 잣거니하면서 정겹게 이야기 나누고 삼별초기념물로 향한다. 삼별초는 800여년전 몽골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고려의 무장 사병집단이다. 1260년 원나라의 압력에 의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려는 고려 조정에 맞서 3년간 처절한 항전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삼별초 유허비 앞에는 진돗개와 돌하루방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항쟁했던 진도와 제주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조양방직카페로 향한다 조양방직은 1958년에 폐업했다. 직물공장도 반세기 넘게 흉물로 방치됐다가 2017년 지역을 대표하는 휴식공간이자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대한민국 제과 명장 송영광씨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카페다. 과거 방직공장 당시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품들로 가득채웠다. 공장작업 테이블 등은 카페 탁자로 활용하고 있으며, 모든 공간과 소품이 하나의 미술품이다.
조양방직에 찾아오는 고객들은 주말 기준 4,000여명, 평일기준 1,000여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갑곶돈대로 향한다. 강화대로에서 역사관입구교차로로 가면 강화전쟁박물관이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갑곶돈대는 해안가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갑곶돈대는 고려 강화 천도 시기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가장 중요한 요새였으며,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인 동시에 외적이 칩입했을 때 왕실이 피난하는 제일의 후보지였다. 그러나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병력 600여명이 이곳으로 상륙해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쟁유물 120점을 4개의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강화전쟁박물관 옆에 탱자나무가 눈길을 끈다. 수령이 무려 400년이라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성밖에 탱자나무를 심어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해안동로를 따라 광성보로 향한다. 광성보(廣城堡)는 1658년(효종 9) 강화도 방비를 위해 해안가에 설치된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와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하였다.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은 끝까지 분전했으나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였다. 광성보에는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이 있다. 최종 목적지인 초지진으로 향한다. 초지진(草芝鎭)은 1866년(고종3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에 의해 함락되었으며,1876년(고종8년) 신미양요 당시 미해병대에 의해 다시 한번 함락당하기도 했다. 1875년(고종12년) 운요호 사건 당시 일본 해군육전대 의해 초지진이 파괴되었다. 초지진에는 근대에 사용했던 포좌와 총좌가 있고 대포 등이 전시되어있다.
지금도 성채와 소나무에는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미국및 일본제국의 침략자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전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녁식사 시간이다. 두부랑콩비지 강화직영점에서 맑은순두부와 두부전골로 맛잇게 식사하고 초지대교를 건너 김포공항역으로 향한다. 전인구 인솔자는 차량 이동간 안드레아 보첼리아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Time To Say Goodbye, 조수미의 그리운 금강산을 들려주어 여행의 피로를 푸는 감초같은 음악이었다. 19시 20분경에 김포공항역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각산진비(各散盡飛)하였다.
이번 강화도 여행은 몸소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역사공부 시간이었으며, 가을의 낭만을 즐기며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여행이었다. 그리고 공기 맑은 청정한 지역에서 자연과 벗삼으니 심신이 절로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에 동기생들 모두 만심환희(滿心歡喜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통일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뼈아팠다. 통일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역사문화해설사로 나선 구재림, 전인구 동기에게 감사를 드린다. 인생에서 남는 것은 여행뿐이다. 건강할 때 틈틈이 여행하는 길만이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동기생들과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멋진 일인가. 대열동기회 브라보!
당산역 부근 그랜드컨밴션센터 앞 주차장에서 출발(08;00)
월곶돈대, 연미정
월곶돈대
연미정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
갈매기 조형물에서
망배단
화개정원
연산군 유배지
연산군이 탱자나무 울타리 안 초가집에서 2개월간 생활
연산군이 유배 당시 조형물
화개정원(물의정원,역사문화의정원,추억의정원,평화의정원,자유의정원)
화개정원 쉼터
화개산은 정상에서 보면 마치 솥뚜껑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나팔꽃 모양의 폭포수
화개정원에서 바라본 화개산 정상 전망대
60-70년대 머물러있는 대륭시장
60-70년대 흑백사진들
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제비집
교동제비집
제비조형물
제비 조형물에서 포즈를 취한 전인구 부부
서울 횟집
서더리탕과 생선회,밴댕이무침
삼별초가 항거했던 장소에서 떠났던 곳의 상징 조형물(진돗개, 돌하루방)
삼별초군 호국항거 유적지
조양방직카페
갑곶돈대
세게금속활자 발상 중흥 기념비
강화전쟁박물관
강화도의 전쟁 영웅들
대장군포와 신포
수령 400년 탱자나무
광성보
강화해협
광성돈대에 배치된 포에 대하여 설명하는 권안도 동기
광성돈대 성벽을 따라 강화해협을 구경
초지진
포탄의 상흔이 있는 소나무
초지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우측에 초지대교
초지진에서 200m가량 떨어진 두부랑 콩비지 식당
맑은 순두부와 두부전골
첫댓글 ,파이팅 차성근! 성동고16회도 파이팅^^ ! 강화도 교동도 역사 지지(地誌) 공부 잘 했네. 내가 찍은 사진도 활용해 반갑고, 초지진 내 모습 잡아준 사진 올려준 것도 고맙네! 오늘 광교산 산자락과 수월 팔달산 자전거 라이딩하려 만나서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