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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운동
사람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에 따라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정도에서 지나치면 죄가 될 수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은 분노(忿怒)의 감정이다.
분노 자체가 죄는 아니나 분노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의를 이루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은 영적 생활에서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금식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한번 크게 혈기를 부리면 그 동안 기도가 쌓여진 것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아는 권사님이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성령을 받고나자 영안이 열리며 환상을 보는 등 은사가 임했다. 기도할 때 마다 문제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시니 작정을 하고 열심히 기도를 시작했다. 작정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매일 기도할 때 마다 벽돌들이 한 장씩 올라가면서 영적인 집을 짓는 것을 보여주셨다. 작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자 이제 그 집은 지붕을 다는 일만이 남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그 권사님은 혈기가 아주 많은 분이고 아직 초 신자라서 영적으로 그녀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가정에서 다툴 일이 생기자 참지 못하고 크게 혈기를 부렸는데 그 순간 환상이 열리면서 자신이 그 동안 작정하여 쌓아올린 영적인 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였다. 그것을 보고도 계속 혈기를 반복하자 얼마 못가서 그 환상의 눈도 완전히 닫혀 버리고 말았다.
기도생활과 영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분노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독이 된다.
특히 분노를 자주하는 자들을 마음이 교만한 자들이 대부분이므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 위하여 분노가 일어나도 그 화를 자제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영이 성장할 수 있다.
[이사야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디모데전서 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우리가 사모하는 천국은 화목하고 평화의 나라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예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화평을 포함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자들이다.
[갈라디아5장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와 달리 분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사탄이 맺는 악한 열매들인데 성경에는 그것을 육체의 열매라고 한다. 갈라디아 5장 19-21절에 15가지의 악한 열매를 소개하는데 그것을 죄의 열매이자 사탄의 열매인데 사도 바울이 좋게 표현하여 육체의 열매라고 표현을 했지만 그것을 원색적으로 표현하면 곧 사탄의 열매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사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이 죽어서 들어갈 곳은 어디인가? 삼층 천국에 방문을 하고 온 사도바울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육체의 열매를 맺는 이들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 세상을 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많이 맺고 사탄의 열매인 육체의 열매를 절대로 맺으면 안 된다. 바울은 사탄의 열매(육체의 열매)를 15가지로 분류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 등 6가지 악한 열매가 모두 분노와 연관이 되어 나타나는 악한 열매임을 볼 때 화를 내는 것은 절대로 의를 이루지 못한다.
[갈라디아 5장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은 거룩함과 화평의 하나님이지만 사탄은 분노를 통하여 미움과 분쟁과 이간질을 일으킨다.
합당하지 아니하는 혈기와 분노는 거룩함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분노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분노(의분)가 있지만 오늘 제가 언급하는 분노는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의 육체에서 나온 사탄이 주는 혈기와 분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분노하는 것이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왜 분노가 영적 생활에 해가 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분노는 형벌을 유발한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를 통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 죄지은 사람들이 형벌을 받도록
저주하고 괴롭히며 분노는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니 합당하지 않는 화는 절대로 내지 말아야 한다
[욥기 19: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잠언 19: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2, 분노는 복수심을 가져온다.
사탄은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어 상대방을 계속 미워하고 복수심을 주며 그 결과
자신이 죄와 사탄에게 묶이게 만들므로 마음에 분노를 쌓아 두지 말고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잠언 6:34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혈기를 자주 부리는 이들치고 인격적인 사람이 없다.
자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이성을 잃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잠언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3, 분노하면 기도가 잘 안 된다.
가정에서나 교회 안에서 혈기부리고 화를 내고나서 기도가 잘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탄은 분노를 통하여 기도의 손을 내려오고 기도를 방해한다. 만일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기도가 잘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기도가 막히지 않으려면 마음의 분노를 버리고 화를 내어도 성경대로 해가 지기 전에 서로 화해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4, 분노하면 다툼을 만들게 된다.
분노가 일어나면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불평하고 미워하고 다투게 되며 결국 죄를 짓게 된다. 분노가 많은 이들은 가는 곳곳마다 분쟁을 일으키기 쉽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나 마귀는 분리 이간 분쟁하게 만드니 사탄의 조종을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분노를 버려야 한다.
[잠언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29:8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5, 분노하면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이 분을 참지 못하면 그 분노를 통하여 사탄이 틈을 타고 사탄의 조종을 받으면 홧김에 악한 일을 저지르기 쉽다. 지금 세상에 대하여 화가 난다고 총으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방화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마귀는 분노를 통하여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과 무관한 타인들에게 까지 해를 입힌다. 화가 나도 죄를 짓지 않으려면 빨리 분노를 버리고 다스려야 한다.
[잠언 14: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6. 분노는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마태복음 12: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요 분쟁하는 동리나 집이 굳게 서지 못하리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만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그대로 쌓아두면 그 분노가 시한폭탄이 되어 결국 가정과 공동체를 황폐하고 무너지게 만든다.
가족 중에서 특히 분노를 처리하지 못하고 혈기가 많은 사람이 있으면 마치 시한폭탄과 함께 사는 것처럼 온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분노가 많은 사람들을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분노를 잘하는 사람은 사탄의 도구가 되기가 쉽다. 사탄은 분노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하여 타인을 괴롭히고 나중에 그 자신도 비참하게 된다.
7, 분노가 많은 사람들을 멀리 하라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귀지 말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단자들과 분노가 많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노를 품고 사는 이들을 이단자들과 함께 동격으로 취급을 하시면서 그들과 사귀지 말고 동행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잠언 22: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왜 노를 품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하셨나하면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자들은 마음이 좁은 자들이다. 별일이 아닌데도 상처를 받았다고 원망하는 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웃고 넘어갈 일인데도 자신은 큰 상처를 받았다거나 혹은 자존심이 상했다고 울고불고 화를 낸다. 이러한 자들과 교제하려면 매사에 조심해야 하고 참 피곤해지므로 주위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들지 않는다.
[잠언 18: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잠언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더구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자들에게는 멀리 떨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분노가 많은 이들이 여러분의 형제나 가족이라도 이런 자들에게는 멀리하는 것이 자신과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하셨지만 가정에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으키는 남자들은 혼자 살도록 버려두어야 하는 이유는 자칫하다가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분노를 핑계 삼아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화가 난다고 횟 김에 돈을 탕진하거나 문제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책임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서로의 짐을 지기 전에 먼저 자기 짐을 지라고 하셨다.
[갈라디아서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자기 짐도 질줄 모르는 무책임한 자들이 가정이나 공동체안에서 타인의 짐을 나눌 수 없다.
당신이 평생 분노에 사로잡혀 무책임한 이들을 도와주면 나중에 또 도와주어야 하고 아마도 평생을 도와주어야 할지 모른다. 무책임한 이들을 돕는 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 찰거머리가 당신에게 달라붙게 만드는 일이므로 구제를 해도 잘 분별해서 해야 한다.
[잠언 19: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그래서 주님은 가정이나 교회의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책임하게 자주 분쟁하는 사람들이나
타인을 실족시키고 거치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단자들처럼 떠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기
사람이 분노가 일어난다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나도 모르게 그랬다고 사과를 하지만 엄밀히 분노를 발산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화가 날 때 크게 혈기 부리고 화를 내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며 반대로 화를 참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편을 선택을 하여야한다. 사탄이 아무리 분노를 통해 죄 짓게 만들려고 해도 자신을 다스리고 앞으로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노력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건의 훈련이 된다.
사람이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없을 수 없지만 문제는 화가 난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거나 다른 죄로 연결이 되는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번도 크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
타인을 용납하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대부분 분노는 자신 보다 타인으로 인하여 일어날 때가 많다.
하지만 분노가 일어날 때 절제가 안 되는 것은 타인을 용납하고 품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용납하려면 상대방 중심의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상대방 중심의 사랑을 하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가 많은 이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화평하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간은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든 모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인간관계가 자주 틀어지는 것은 모두 상대방이 자기에게 맞춰 주기를 원하며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부 자기에게 맞추어 주길 바란다면 다툼과 전쟁은 끝임 없이 일어날 것이다, 가정에나 사회에서 다툼을 그치려면 부부 중에 누구 한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방을 용납하고 오래 참아야 평화와 화목이 찾아온다.
[에베소서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골로새서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그러나 관계 속에서 한쪽에서 무조건 참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타인들이 이해하고 알아서 대해주기를 원하지만 인간은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왜 분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화가 났을 때는 무조건 참으려고 하기보다 감정을 다스리고 화를 상대방에게 왜 자신이 화를 내고 있는지를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이 더 낫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지체가 됨으로 서로의 문제점을 고쳐주고 바로잡아 줄 사명이 있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했을 때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말을 해야 상대방도 화가 나게 하는 일들을 고칠 수가 있기에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얼마 전에 소천한 정원목사님이 쓴 글을 보면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란 글이 있는데
잠시 소개를 하고자 한다.
1.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아내에게 당신을 만나고 지금까지 같이 함께하고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그리고 얼마나 당신의 헌신과 수고를 고마워하고 있는 지를 이야기 합니다. 아내는 감정 표현이 별로 없어서 나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적이 거의 그런 이야기에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백은 나에게 기쁨을 주며 또한 표현을 안 해도 아내에게 즐거움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2, 나는 아내가 무엇을 부탁을 할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즉시로 움직인다. “여보 옥상에 빨래 좀 널어줘요.” 여보 쓰레기 좀 버려줄래요.“하면 대체로 1초안에 움직입니다. 나는 그녀의 부탁이 곧 주님의 명령이라고 믿습니다. 그녀의 말을 소홀히 하면서 주님께 기도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 아내가 조금 비싼 것을 사도 되냐고 물으면 “여보 나와 지금까지 함께 있으면서 그렇게 나를 몰라요? 당신이 즐거운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기쁨이지요. 얼마든지 사도 되요.” 그러나 나에 대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사는 것을 욥납 하지 않습니다.
4. 아내가 내게 무엇을 부탁하거나 미안해하면 “ 괜찮아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가 무엇인들 못하겠어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했지만 자주 이런 고백하다가 보니 실제로 그러한 마음이 많이 들게 되었고 실제로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과 생명이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차피 생명이란 어차피 나누어주고 죽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나는 일체 반찬 투정이나 음식 투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해주는 음식은 항상 맛있게 감사함으로 먹으며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며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 감사의 표현을 할 것을 가르칩니다. 음식을 투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며 부부가 가장 가까운 사이니 만큼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아내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일테니까요?
6, 나는 돈을 일체 건드리지 아니하며 일체 수입은 아내에게 다줍니다. 나는 돈이 필요 없지만 아내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니 돈을 쓸 때가 많을 것입니다. 내가 책을 사려고 돈이 필요할 때는 그만큼 아내가 나에게 줍니다. 남은 것은 나의 책상에 놓아둡니다, 그러면 그녀가 필요하면 가져가기도 하고 그래서 그녀는 나의 전 재산이 얼마인지 항상 알 수 있습니다.
7, 나와 아내는 손톱만한 비밀이 없으며 나는 모든 생각을 그녀에게 이야기 하고 그녀도 똑같이 합니다. 그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하게 알고 있으며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내가 조금만 기분이 상해도 그녀가 알고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보다 자기들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때로는 엄마에게 대하여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항상 엄마가 아빠보다 너희들을 훨씬 더 사랑한다고 가르칩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그녀의 입장을 세어주며 용돈도 꼭 엄마에게 타게 합니다. 그녀의 부모님께 대하여는 물질이 여의치 못하여 잘 섬기지는 못하지만 실정적으로 항상 아내가 마음을 쓰는 것 이상으로 배려하고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들의 부모를 더 챙기려고 하고 그런 것을 통하여 갈등의 씨앗이 생기는 것에 대하여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9, 아내가 말을 할 때 나는 전심을 기울여 그녀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녀의 말에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듣습니다. 나는 그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도 잘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10, 나는 아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용납하며 그녀를 결코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합니다. 그녀가 어떤 점이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신아에 대한 문제이든 성품과 기질에 대한 문제이든 나는 그녀에게 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사랑하고 용납하며 받아 드립니다. 설사 그녀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습을 사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화란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받아주셨을 때 우리가 변화 되는 것처럼 온전한 사랑과 용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요구하고 부담을 주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를 위하여 짐을 지고 기도할 뿐 그녀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녀가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많은 성향들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보다 자신을 허물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훨씬더 행복하다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11. 나의 결혼 생활의 목적은 그녀의 행복이지 나의 행복은 아닙니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든지 그녀가 즐겁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녀가 기뻐하는 것과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서로 부딪칠 때는 나는 주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서 그녀의 기쁨을 막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대부분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자에게 강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강압입니다.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느끼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가 몹시 희생을 하고 사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삶을 즐기고 누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대 중심의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것인지는 경험해야 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정원 목사님의 위의 글은 모든 가정에 모본이 되는 귀한 글이며 모든 부부가 정원목사님처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아마도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하는 가정이 없을 것이다. 위의 글을 통하여 타인에 대한 사랑과 용납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타인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자기 부인이 안 되었다는 증거이며 자신의 마음의 용량이 상대방보다 작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타인을 품으려고 하면 내 마음의 그릇이 상대방보다 더 커야 용납할 수 있다.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붙여 놓아도 다 품을 수 있다.
인간관계 속에서 화를 내는 이유가 상대방이 안 품어지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마음의 평강이 깨어지고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파문이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넉넉하게 품을 수 있다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해도 내 마음의 평강을 흔들지 못할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사울의 그릇이 다윗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품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살려 주었고 압살롬의 반역 때 베냐민 자손인 시므이가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했다.
나중에 반란이 평정이 되어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고 이때 시므이가 찾아와서 용서를 구할 때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은 다윗의 마음의 그릇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힘들에 하는 타인을 용납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넓혀서 상대방보다 넓은 마음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끔 관계 속에서 문제를 만드시는 이유는 당신의 마음의 용량을 넓히고 뾰쪽하거나 각진 마음을 넓히시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을 힘들게 하는 대상을 품지 못할 때 자신의 마음의 그릇의 용량이 얼마나 되는 지를 볼 수 있다. 만일 화가 계속 나고 상대방이 잘 안품어진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을 당신 자신에게 찾아보기를 권면한다.
이것까지 참으라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 그 화를 억누르고 참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 안에 어둠들이 분노를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혈기를 부리게 만들어 죄를 짓도록 마음을 격동하게 하는데 그것을 참을 수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 때문이다. 분노가 일어나고 감정이 격동이 될 때 그것을 누르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잠언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마귀는 사건을 통하여 상처 받게 만들고 분노하여 죄를 짓게 만드나 주님은 그러한 일조차도 참을 수 있도록 절제의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 중에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는 열매가 절제이다. 절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 있는 성령님의 능력이다. 성경에 보면 분노를 절제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한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체포되었을 때 베드로가 검을 휘둘러 대제사자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다. 그러자 주님은 떨어진 귀를 붙여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다. 시몬 베드로의 행동이 예수님을 지키고자하는 합당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타인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죄로 연결이 된다면 합당하지 않는 분노이므로 이것까지 참으라는 것이다.
온유함
분노를 다스리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온유한 마음이다. 온유함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잘 길들인 준마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지고 길들여진 훈련된 성품이다.
온유함을 배워야 할 것은 예수님의 성품이 바로 온유한 성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얼마나 온유하신지 모든 사람들을 품는 것이 가능했다. 예수님은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거친 제자들을 3년 동안 품었으며 자신을 팔아버린 가롯유다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들을 타인의 무거운 짐을 잘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온 인류의 무거운 죄 짐을 지고 가신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하심 때문이다.
[마태복음 11: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실 때 자신을 철저히 비우시고 아버지 뜻에 맞추셨다. 예수님은 자신 모든 감정과 의지와 뜻조차도 모두 아버지의 뜻에 맞추어 사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온 인류를 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의 위대한 점은 온유함에 있다. 그러기에 그는 6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품고 다스렸다.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온유한 사람들을 타인의 심령을 만지고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마음이 무겁고 상한 자들이 온유한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 마음의 고민들을 마음껏 이야기 하고나면 그 마음에 평화와 쉼을 얻게 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서 부르짖고 기도하거나 나의 사정을 울면서 하소연하고 나면 마음이 잠잠해지고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이며 온유한 사람들은 누구와 대화를 내도 상대방의 마음을 잠잠하게 만든다. 당신이 앞으로 화를 내지 않으려면 항상 예수님처럼 온유한 마음이 되고 당신의 입술에 나오는 말이 온유해지도록 기도하라.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온유한 사람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동일한 태도로 대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우호적으로 대하지만 자신을 비난하고 판단하거나 전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화를 내고 매우 냉담하게 대하게 된다. 지금 당신 곁에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 얄미운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온유함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당신이 앞으로 절대로 화를 내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화를 내지 말고 용납하고 온유함으로 대하도록 좋은 선택하라. 참고 용납하는 마음속에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스며든다. 지금 다신 주변에서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 얼굴만 보아도 화가 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들을 품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축복하면 당신의 마음에 주님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마음을 흔드는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분노를 고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함을 배우는 여정이 된다.
이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분노를 잘 다스리기를 바란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당신은 대적의 문을 얻는 용사가 된다.
당신 곁의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도 용납하기를 바란다.
온유한 자는 나를 비우고 타인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온유하면 그가 가는 곳곳마다 화목하게 만든다.
온유한 자는 마음이 너그럽고 겸손한 자들이다.
온유한 사람들에게는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온유한 사람들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온유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다.
참지 못할 만큼 예기치 않는 분노가 일어나도 그 일이 진리와 배치되지 않는 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품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당신의 분노를 다스리기 바란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이제부터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겠다. 라고 굳게 결심하고 기도해보라,
자주 화를 내는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화를 내지 않겠다고 작정을 하고 일주일에 성공을 하면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참겠다고 작정하고 결심해보라.
만일 한 달을 참고 성공을 하면 당신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라.
OOO 한 너 달 동안 화를 내지 않고 참느라고 참 수고했다.
OOO아 너 참을성이 대단한 자야.
OOO아 너를 사랑한다. 라고 자신을 칭찬해주라,
만일 한 주간동안 화를 내지 않으면 한 달도 그럴 수 있고 한 달을 화내지 않으면
일 년을 참을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평생을 화를 내지 않고 살수도 있을 것이다.
올 한해 당신과 제가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한 번도 내지 않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 글 목동천사>
출처: 다음 : 목동천사 cafe.daum.net/angelonechoi/U3A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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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