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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3일(월)
* 시작 기도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주님...
모세가 첫 번째 증거의 돌판을 깨뜨리고 나서 두 번째 돌판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
시내 산에서 40일 낮밤을 금식하며 하나님과 대면한 관계로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자로서 율법은 정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듯 모세 역시 정죄의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 있는 없어질 영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습니다(고후 3:7).
이를 안 모세는 백성들을 만날 때는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덮어 그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수건이 벗겨졌습니다.
하여 이 종도 구약을 읽을 때에 율법에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자유합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도 볼 수 없었으나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자이지만 그 질그릇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사오니 심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마 25:14-30
제목 : 각각 그 재능대로 주고 떠났더니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 나의 묵상
한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멀리 외국으로 떠났다.
오랜 시간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하였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즉시 가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와 똑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한 달란트를 가져다가 땅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주인이 왔을 때 자기가 받았던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다 주었다.
그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다 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주인을 두려워해서 그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두고 그것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에게는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긴다.
그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자로 알았더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은행에 맡겨서 그 이자라도 받았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 악한 자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있는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서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본문의 달란트는 당시 금이나 은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서 예수님 당시에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금 한 달란트의 크기는 금 34Kg에 해당하는 돈으로 이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에 해당된다.
따라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금 170kg을 받은 것이고, 두 달란트는 금 68kg에 해당한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적은 액수이지만 금 34kg이라면 결코 적지 않은 중량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적다고 화가 나서 그냥 땅에 묻어버린 것 같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칭찬을 한 것처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도 동일한 칭찬을 하였다.
그것은 남긴 이익의 크기로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이 남긴 이익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가서 장사를 하여 한 달란트만 이익을 내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익을 내지 못한 이유를 주인의 완고한 성격에 두면서 이를 핑계로 그저 한 달란트를 돌려 준 것이다.
주인은 이런 자를 가리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꾸중을 하고 그에게 있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있는 자에게 주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달란트는 15절에 그들의 ‘재능대로’ 받았다는 말씀처럼 넓은 의미에서는 재능과 은사를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지금도 각자가 받은 재능과 은사가 다르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다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적어보인다고 그것을 하나님께 짜증을 부리고 투정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재능과 은사대로 살면 된다.
그 사는 것은 그것으로 이 땅에서 많은 돈을 버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사는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잘못은 그것으로 그 무엇을 많이 누리려는데 있지 않았다.
그의 잘못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이로 보건대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선물은 주는 이의 마음을 받는 것이며 그것을 받는 그 자체로 기쁨이다.
얼마를 받았는지, 그 양이나 질에 있지 않다.
달란트라는 은혜의 선물은 이를 주신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셔서 그 분량만큼 주신 것이다.
하여 주신 분량만큼을 가지고 그 나라와 의를 이룰 때 그 가치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다.
이들이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가지고 두 달란트를 남길지라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차이가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결코 그 누림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주인의 칭찬을 이 두 사람이 똑같이 받게 된 것이다.
이를 보면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로 바로 서는 것이다.
전쟁에 이기고도 자신의 손이 잘린 것으로 인하여 낙심하고 넘어진다면 이는 마치 삼손이 고백했던 것처럼 큰 구원을 받았으나 목이 말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삿 15: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있지 않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우리의 연약함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내가 내 힘으로 싸우는 싸움은 백전백패이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싸워주시기에 우리의 영적 싸움은 패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잘 싸우고 난 뒤에 삼손처럼 할례 받지 못한 자 곧 악한 영들에 넘어지는 것은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악한 날에 악의 주체인 마귀를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 즉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그 목적은 결국 넘어지지 않고 서기 위함이다.
이렇게 서는 것은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다.
따라서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배를 남긴 것으로 인하여 자랑하거나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렇게 섰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할지라도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때마다 일마다 이런 고백을 해야 한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처럼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하셨습니다’라는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내가 비록 남들보다 적은 달란트를 받았다할지라도 그조차도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그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감사를 모르는 자였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가 너무도 크고 귀한데 나는 그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저 입술로는 감사를 말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 중심에는 그런 고백이 우러나오지 않았다.
이는 비교의식과 패배의식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하나님께 원망하기를, 나는 왜 이렇게 몸이 약하게 태어났느냐고 원망했었다.
또한 남들에 비해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곤 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선물이 많다.
찬양의 은사며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의 소속이 바뀐 것 역시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 증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하심이 원초적인 복음이요 이 복음이 나를 새 사람으로 인도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는 이 복음을 먼 거리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 안으로 들어간다.
하여 복음 그 자체이신 우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함께 무덤에 장사되어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 곧 우리 주님과 복음으로 연합하는 것이 새 생명으로 사는 기본이다(롬 6:4).
아무 것도 아닌 나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아들로 삼아주신 것은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요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나의 생명이요 전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오늘도 누리며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하심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생명이요 나의 전부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노력과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은 모두 그릇된 열심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의 열심은 자기의 열심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을 죽이는 그릇된 열심이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열심이 바로 이런 그릇된 열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열심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내게 주신 달란트 곧 은사와 재능은 나를 돋보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그분의 뜻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고 날마다 영생을 누리는 주의 귀한 자녀의 본분을 다하게 하옵소서.
날 구원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며 그 나라를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영생의 은혜를 더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