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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기독교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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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글 스크랩 청도에 가다
김인모 추천 0 조회 67 18.07.27 14: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7월27일 오늘은 연중 가장 더운 시기여서 그런지 전국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길게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지치셨다면 충분한 휴식과 삼계탕 한그릇 하시면서 몸과 마음 회복해 보는게 좋을것 같다.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라고 기상청에서 예보하고 있다

 

 

*안동 휴게소 안동문화체험관

 

 

전체 주간 일기 예보를 살펴보아도 비가 오는날이 당분간은 없는것 같다 간혹 지역적으로 소나기가 내릴 정도이고 일본을 관통하여 올라오는 태풍 종다리 영향으로 비를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작물은 타들어가 가고 하루라도 비를 내려 주어야 피해가 적을 것 같다 팍팍 찌는

더위에 숨까지 차올라 7월의 복더위를 더욱더 크게 실감하게 된다

 

 

 

*동대구 환승센터에서 (고속버스/시외버스/대구전철/KTX동대구역이 한곳에서)

 

 

 

어제는 경상북도 청도군 농공단지내 있는 보일러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뜨거운

날씨에 공장에서 땀흘리고 일하시는 모습에 덥다고 실토하던 내마음을 움추리게

한다 공장내 열발생으로 생산하는 물품으로 몸시나 더운 근로자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더위를 잊게 한다

 

 

 

 

 

온열 질환자 발생 억지를 위해 지금 전국은 비상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에서

과로로인한 온열질환자들이 발생되지 않토록 모두 모두 조심하고 충분한 휴식과

영양가있는 음식이 필요 할 때이다

 

 

*동대구에서 청도로 승용차 이동중에

 

 

 

난생처음 청도라는 곳에 와서 이곳이 널리 알려진 소싸움 경주로 그 유명한 청도라

그런지 여기저기 소와관련된 안내판과 운문산 안내판이 참 많이도 보인다 여행하는

자동차안은 시원한데 차에서만 내리면 정말 펄펄 끓는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버스 기다리는 동안 빵집에서 아이스 커피 한잔하고.............

 

 

              *빵집 푸드가 참 칼러플 하기도하다

 

 

안동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려고 고속버스에서 내려 휴게소로 걸어 들어 가는데 넘어지면 살갈이 데일 정도로 시멘트바닥 열기는 정말 대단하다 코가 막힐정도이고 사람들과 차들도 별로 없어 한산 하기만 하였다

 

 

 

 

 

 

 

일단 고속 버스로 동대구터미날까지 가서 다시 청도로 가는데도 45분 정도가 소모

된다 길가의 도로 안내판을 보니 창녕과 밀양이라는 지명이 나오는것을 보니 이곳이

대구와 청도 창녕,밀양 창원으로 이어지는 길목과 같은 곳이었다

 

 

 

 

 

*먹음직 스런 빵을 바라보며.........

 

 

 

청도군이 궁금하여 인터넷 배과사전에서 찿아보니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청도군

동쪽은 경주시, 서쪽은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북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경산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31′∼129°22′, 북위 35°32′∼36°40′에 위치한다. 면적은 693.90㎢이고, 인구는 4만 475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212개 행정리(127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에 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뻗어있는 태백산맥의 남단(南端)에 자리잡고 있으며, 중앙의 곰티재와 용각산(龍角山, 697m) 및 그 지맥을 중심으로 동서(東西)로 구분되어 있다. 산동이 산악지대(山岳地帶)라면 산서는 비교적 넓은 들이 펼쳐져 있으나 작은 분지(盆地)에 불과하다.

 

 

 

 

 

 

 

동쪽에는 태백산맥의 지맥인 운문산(雲門山, 1,188m)·가지산(加智山, 1,240m)·문복산(文福山, 1,014m)·응강산(832m)·사룡산(四龍山, 685m)·구룡산(九龍山, 675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밀양강(密陽江)의 상류인 동창천(東倉川)이 남류한다.

 

 

 

서쪽에는 비슬산(琵瑟山, 1,084m)·수봉산(秀峰山, 593m)·묘봉산(妙峰山, 513m)·천왕산(天王山, 619m)이 솟아 있다.천왕산(天王山)은 각남면과 풍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성현산맥(省峴山脈) 중의 하나이다. 이 산 동쪽에는 화악산, 서쪽에는 묘봉산·수봉산 등이 솟아 있다. 이 산록에서 청도천이 발원한다.

 

 

남쪽에는 억산(億山, 944m)·구만산(九萬山, 785m)·철마산(鐵馬山, 630m)·화악산(華嶽山, 932m) 등이 솟아 있다. 북쪽에는 삼성산(三聖山, 663m)·상원산(上院山, 700m)·선의산(仙義山, 759m) 등은 금호강(琴湖江)유역과 밀양강유역의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을 보면 풍각면 일대의 산지에서 발원한 청도천(淸道川: 일명 요길천·송읍천)이 남쪽의 천왕산·묘봉산·수봉산·비슬산 등에서 발원하는 풍각천(豊角川)·봉기천(鳳岐川)·각북천(角北川) 등과 합류한 뒤 군의 중앙부를 관류하여 화양읍과 청도읍을 지나 남류한다.

 

 

 

동창천(東倉川)은 운문면의 북부를 서남류하여 금천면 중앙을 흘러 매전면 북지리에서 북부산지서 발원한 춘천(春川)과 합류하여 남류한다. 청도읍 내호리에서 이 양하천이 만나 밀양강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 발달된 소규모의 충적지는 농경지로 이용되며, 청도천유역은 비교적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하천부지의 개간으로 과수원이 개발되어 새로운 사과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기후는 내륙에 위치하며 한서의 차가 크며, 연평균기온 13.2℃, 1월 평균기온 -1.6℃, 8월 평균기온 25.1℃이며, 연강수량은 1,243㎜이다

 

 

 


이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유적은 군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즉, 화양읍 범곡리의 지석묘, 각남면 화리의 지석묘와 석관묘 등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물·유적으로서 당시 사회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들이다.

 

 

 

 

이러한 사회분화과정을 통해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다. 변진 24개국의 하나인 우유국(優由國)이 이곳에 비정되기도 한다. 우유국의 실체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42년(유리왕 19) 이곳에 위치한 이서국(伊西國)이 신라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보면, 이 두 소국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 때 이서국은 신라 지배체제 내에 완전히 흡수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297년(유례왕 14) 그들이 신라를 공격하여 금성(金城: 지금의 경주)을 포위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서국은 신라에 편입되었고, 부근에 있는 구도성(仇刀城)내의 솔이산성(率伊山城) 등과 함께 병합되어 이서군(伊西郡)으로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이서군은 분리, 독립되었으며, 그 예하의 구도성은 오악현(烏嶽縣), 경산성은 형산현(荊山縣), 솔이산성은 소산현(蘇山縣)으로 각각 개편되어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밀양)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는 군현들이 과거의 산성의 이름으로 돌아가 호족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주로 견훤(甄萱)의 세력권에 흡수되어 신라를 공략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고려 통일 이후 940년(태조 23)경주대도독부가 성립되면서 대성군과 오악·형산·소산 등 3개 현이 통합되어 새로이 청도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1010년(현종 1)도주(道州)로 되었다가 1109년(예종 4) 감무(監務)가 설치되었으며,
1342년(충혜왕 복위 3) 이곳 출신 김선장(金善莊)의 공로에 의해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으나 다음해에 강등되었다.

 

 

 

1366년(공민왕 15)김한귀(金漢貴)의 청원에 의해 다시 지군사로 승격되었다.고려 후기의 읍격(邑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역적인 변동은 없었다. 군사의 동원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640호 6,718인이었으며, 토지는 절반만이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이 지역은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 많아 다스리기 어렵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조선 초기 이래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등은 사림파로 이름을 크게 떨쳤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운룡(李雲龍)이 왜적의
소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소지역주의가 채택되어 전국이 23부로 나누어지자 대구부에 속하게 되었다. 다음해의 지방제도 개편으로 인한 13도제하에서는 3등군으로서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대구군으로부터 풍각면·각남면·각북면 지역을 할양 받았고, 1912년밀양군과의 부분적인 지역조정을 끝으로 현재의 영역이 고정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지역인사들은 숙명(肅明)·문명(文明) 등의 학교를 건립하여 신교육보급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항일의식도 높아, 1919년 3·1운동 때에는 군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운동과 일본인에 대한 습격을 병행함으로써 독립회복에 노력하였다.

 

 

 

 

1949년 8월 14일청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4년청도읍의 유호(楡湖), 화양면의 남성현(南省峴) 2개 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화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5월 1일이서면 고면리가 흥선리로, 청도읍 구미리(九尾里)가 구미리(龜尾里)로 개칭되었으며, 1992년 1월 1일금천면 방지리 일부가 운문면에 편입되어 운문면 방지리가 신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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