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이루지 못한 잠을 뒤로 하고 송광사로 향하였다.
날밤을 새웠거나 진드기에 물리거나 비몽사몽인 것은 마찬가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매표소의 노익장은 두눈을 부릅뜨고 일방적으로 그냥 통과하는 사람들을 걸러낸다.
참, 서글픈 현상이라고 하여야 할지 직업 의식에 대한 팽배한 자부심이라고 하여야 할지 모르겠으나.
전국 어디나 산사의 길자락은 돈, 경제로 환산된다는 아이러니.
숲길을 걸으며 맞는 신 새벽의 공기 덕분에 지쳐있던 온 몸의 세포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하고
간만에 걷는 이른 산사의 매력에 빠져 한 컷 날리자니 편백나무 군락지가 눈에 뜨인다.
달려가 잠시 두 팔을 벌려 합일을 이루고 나니 마음 또한 편안하고 날밤을 새워 기력 소진이던 몸이 다시 소생하기 시작한다.
무릇 이른 새벽길을 걷는 것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독소를 전신으로 맞는 것이라 하였지만
굳이 집 떠나와 맞이하는 산책길 즐거움을 모르쇠 하기는 곤란한지라 마구잡이로 들어오던지 말던지 그저 초록을 누릴 뿐이다.
나름 일찌감치 송광사를 찾았던 터라 고요할까 싶었으나 아하, 요즘은 템플스테이 기간이었던 것.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이 두런두런 소곤소곤, 아차 싶었지만
덕분에 호젓한 송광사를 통채로 맞아하려던 욕심은 접었다.
긴 시간동안 경내 곳곳을 돌며 진지하게 마음을 다스리고 아무도 찾지 않은 곳으로 오르려는 찰나
촤르르 미끄러지는 발을 당기면서 거부당하는구나 싶었어도 동행인의 재촉에 의해 올라갔더니만 역시 스님네들의 공부 도량이다.
발길을 돌려 다시 한번 송광사를 눈에 담고 주암호를 향해 내처 달리지만 워낙 굽이굽이 돌아드는 산길인지라
최저 속도를 유지하며 운전을 하다보니 아뿔사 주암호 물길이 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고 보면 촬영 포인트는 꽝이요 이왕 돌아든 길자락이니 쉬어 갈까 하고 산등성이로 방향을 바꾸고 보니
어라, 개인 사유지와 그들의 집이 떠억 허니 버티고 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주암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워놓고 가져간 매트를 활용해 바람 쐴 자리를 마련하면서
여행용 음식을 꺼내어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려는 찰나 주인 아주머니께서 열무김치 국수를 말아오셨다.
친절하시기도 하지, 아니라도 그들의 영역에 잠시 실례하는 것도 죄송하건만 친절하기 이를데 없어 미안하기만 했다.
사실 송광사 앞, *신 식당에서 너무 같잖은 아침을 선택했던 불찰은 역시 블로거의 추천이었지만 정말 한심할 지경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꼬막정식을 선택하였지만 먹을 것 없은 가짓수 늘이기 반찬과 한 숟가락도 뜨기 힘든 된장국,
별 수 없이 된장국은 다시 끓여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아침이 부실하였다는 말씀이니 주인 아주머니의 배려가 고마울 지경.
고향이 주암댐의 건설로 수몰되고 인천으로 나갔다가 30년 만에 다시 고향집 뒷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는 아저씨.
다섯 딸을 잘 키워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누릴까 싶었더니 소소한 일이 만만치 않다는 하소연이지만
나름 정신없이 살아낸 과거를 뒤로 하고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시는 듯하다.
마침 주인장 내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피붙이들이 휴가를 맞이하여 하나 둘, 고향집으로 모여들고
갈 길 바쁜 우리는 순천만을 향해 고고고.
한낮의 뜨거움을 머리에 이고 순천만으로 찾아들자니 어찌 도시가 그리도 뒤숭숭하다냐 싶도록 난리굿판 같다.
물론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중심에 서 있던 도시였음이니 당연하다 싶어도 편편치 않은 도심의 공기가 어깨를 짓눌러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도착한 순천만에서의 황홀지경은 뭐라 표현 할 길이 없음이니 예전에 시간이 늦어 산 정상 전망대까지 오르지 못하고 돌아온 기억이
아쉬웠던 터라 작렬하는 태양과는 별개로 기어이 산을 올라 촬영 포인트에 이르니 여기저기 북적북적 인파 가득하다.
다들 어렵게 올라왔지만 환타스틱한 풍경에 환호성을 지르기 일쑤고 한 컷 날리는 셔텨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태양과는 관계 없는 안개, 일명 헤이즈라 불리는 것이 너무 난무하여 촬영의 맛을 흐리는 것 같았어도
한참을 풍광에 매료되어 바라만 보다가 질세라 한 컷. 노을이 내려 올 때 까지 그곳에 머물렀으면 더욱 근사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
좋았겠다 싶었지만 다음 약속이 기다리는지라 다시 되돌아나와 카페 "갤러리 도솔"에서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삼천포로 쓔웅.
마침 그날이 지인의 생일이라고 해서 순천 시내를 들러 케잌과 샴페인을 사들고 전라도를 넘어 경상도로 고고씽.
삼천포 하고도 서포읍 "별주부" 한식당. 새로 둥지를 옮겨 마련한 곳에서 맞게 되는 간만에 만나는 지인의 생일을 축하하며 또 하루를 마감한다.
와중에 여름 전어회를 별미로 맛보는 순간, 담백하기 짝이 없는 전어회에 그동안 잃어버렸던 미식에의 탐닉이 다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등 돌리고 돌아앉은 시아버지를 바로 돌아 앉게 만든다는 깔끔하고 담백한 여름 전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가을 전어, 여름 전어회는 삼천포의 명물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언감생심, 여름 전어회를 구경 조차 하지도 않는다지만 간만에 맛 본 여름 전어회 맛에 푹 빠져
날것, 회를 좋아하는 쥔장으로서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헤엄치고 나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한정식 집이라 다양한 음식이 참으로 많았으나 오로지 전어회와 생선튀김에 빠져 다른 음식은 손도 대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생선회 앞에서는 다른 음식이 눈에 들어올리 없는 법.
그밤, 와인에 취해 나름 숙면을 취하고자 하였으나 역시 집 나가서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은 듯.
결국은 가수면 상태로 뒤척이다가 일찌감치 일어나 명상에 돌입하고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아침은 선식으로 해결하고 삼천포 해안가를 내처 돌아돌아 바다를 배경으로 노닐다가
삼천포의 오랜 지인 달묵 도공에게로 날아간다.
첫댓글 아 그러니까 송광사에서 삼천포로 빠지셨군요. ^^
즐거운 여행길 마치고 편히 오세요.
ㅎㅎㅎㅎ 맞아요.
잘 다녀왔답니다.
안개가 어쩌구 하지만 순천만 사진은 참으로 좋소이다~!
그곳은 웬만해서는 거의 같은 사진일 듯.
석양이 비치먄 그야말로 환상일텐데 싶엇어도 오래 못 기다리고 하산하여 아쉬움이 남는다는.
날씨도 받혀줘야 하는 법인데 맑은 안개가 가득 껴 있어서 좀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