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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4-26
1. 상처가 많은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에덴동산처럼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족한 곳이 아닙니다. 마치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자 두루 다니는 험악한 세상이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균형을 잃어버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고,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별하는 슬픔을 겪게도 되고,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부도를 만나 도산하는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불구의 몸이 되기도 하고 교통사고, 폭발사고, 붕괴사고, 화재사고와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하여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 살면서 아무런 아픔과 상처도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끔찍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고, 그 과정 속에는 부서지고 깨지고 찢겨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며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고난과 아픔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마치 나 혼자만 이런 고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남들은 모두 멀쩡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고, 나만 버림받고 외면당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성도들이 가정을 심방해 보면,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가정도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 나름대로 아픔과 상처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가정은 물질적인 문제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가정은 건강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가정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난을 당합니다. 부부간에, 동기간에, 친구간에 서로 주고받은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영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다 좋은 것 같은데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요. 때로는 귀신이 사로잡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모태에서 조성될 때, 나의 잉태가 부모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했다면 이것부터 상처가 된다고 합니다. 내가 잉태되어 있는 동안 엄마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의 분위기까지도 다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무의식 속에 남아서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벧전5:9-10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리시라.” 사람은 모두 종류가 다를 뿐이지, 동일한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은 잠깐 당하게 하시고 결국은 온전하고 굳건하게, 강하고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2. 마라의 광야생활
오늘 성경본문에 보시면 430년동안 애굽 종살이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홍해 바다가 마치 육지같이 갈라지는 감격을 눈으로 보았으나 행진이 이어지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막 길을 3일간을 행군하면서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마라 우물을 발견하고는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 뿐 마라 우물의 물이 마실 수 없는 오염된 쓴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자 모세는 곧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대로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쓴물이 치료되어 단물로 변했습니다. 이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호와 라파, 주님 나를 치료하셨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료하시는 의사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오로지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켜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질병에서 치료하여 주시고 공동체의 건강을 약속하여 주신다는 신앙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쓴맛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풍요하기는 한데 허기지고, 쪼들리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것 같은데 거짓되고, 사람은 많은데 고독하고, 참 좋은 세상 같은데 너무 쓴맛이 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쓴 맛으로 가득한 세상에, 그리고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아들을 던지기 원하셨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실감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내가 지시한 한 나무, 나의 생명나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라. 내 아들을 받아들여라! 그리하면 너의 인생의 모든 쓴 뿌리를 제거하고 단맛 나고 살맛나는 인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뽑아 물에 던지면 그 나무는 죽습니다. 하나님은 그 품안에 있는 독생하신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쓴맛으로 가득한 인생, 쓴 뿌리로 가득한 인생을 단맛 나는 것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참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 때부터 지나간 내 과거의 모든 쓰디쓴 경험들도 달콤한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돌아오면 어느 사이엔가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 우리의 가장 쓰라리고 아팠던 경험들을 복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쓰라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호와 라파, 치료하는 여호와, 의사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알아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무엇을 치유하실까요?
하나님께는 치료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물을 치료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치료하십니다. 먼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아픔의 연속인 이유는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갖가지 병리적인 현상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한 여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 여인은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이 다섯이었는데 그 사람들과 헤어졌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살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여인을 주님께서는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과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고, 주님을 만난 여인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온 동네를 다니며 주님을 소개했고, 치유 받은 한 여인의 헌신으로 온 동네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치유자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치유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치유자이십니다. 사도들도 치유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8절을 보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의 하나는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질병을 치유 받은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큰 구원의 역사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홍수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때 하나님은 노아만 구원 받게 하시지 않고 노아의 가족들을 함께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의 관영함으로 멸망할 때도 보면 롯과 롯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도 구원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입니까? 기생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의 간수를 구원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가정이 치유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변하면 그가 가는 곳이 변하고, 그가 하는 일이 변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합니다. 가정의 파괴가 심각한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가정을 살리고 치료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4. 환경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만 치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도 치유하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했던 환경을 치유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9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니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환경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열왕기하 2장을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첫 번째 행하신 이적은 여리고의 물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의 물이 좋지 않아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여리고가 농사를 짓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물을 고치시고 물이 고쳐지니 농사를 짓는 환경이 좋아져서 토산이 익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치유는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많은 병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이 오염되면 우리 인간도 오염되고, 자연이 병들면 우리 인간도 병들고, 자연이 치유되면 우리 인간도 치유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게 되면 국가적으로 안정이 되고 건강할 때가 있었고, 국가적으로 병들고 불안정한 때가 있었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건강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는 국가도 건강했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병들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면 국가적으로도 병들고 불안정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병든 국가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신앙이 좋았던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국가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왕성하던 시기입니다. 반대로 극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는 국가적인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제로 자랑할 만한 역사가 별로 없습니다. 늘 주변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당했고 괴로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엄청나게 큰 축복을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딱 한 가지를 말하라면 하나님의 치유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구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치유하시는데도 여러 가지 도구들과 치료약이 있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하십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은 가장 강력한 치료약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란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상처들은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고 치유 됩니다. 그러나 큰 상처는 치유하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큰 상처는 수술을 하거나 약을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적인 치유약입니다. 이 세상이 가진 상처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 많은 상처들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율법의 저주’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죄의 삯’입니다. 율법의 저주와 죄의 삯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약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신 이유가 우리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을 치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죄를 도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날을 가진 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들어와야 그 말씀이 병을 찔러 쪼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운동력)이 있으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을 살려내시고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환자 중에는 친히 손을 데셔서 치유하신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되었습니다. 한번은 몇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만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는 치유되어 침상을 들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언 4장 22절을 보면 “그것은(말씀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치료되고, 말씀이 단체를 장악하면 말씀의 능력으로 단체가 치유되고, 말씀이 한 민족의 가치관을 지배하면 민족이 치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대인관계, 성령이 일하시는 가정생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생활, 사회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인생이 질병이 치유됩니다. 인생이 살아납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악귀 들렸던 사울이 치유되었습니다. 사울이 치유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수금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메이커 있는 수금이라 사울이 치유되었을까요? 아니면 다윗의 수금 타는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악기를 탁월하게 잘 다루지만 치유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다윗의 존재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가 흘러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해적의 나라였습니다. 어느 날 해적들이 영국 서해안에 살던 패트릭이라는 경건한 사람을 잡아갔습니다. 그 결과 해적의 땅 아일랜드는 패트릭이라는 경건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화 되기 시작했으며 해적의 땅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땅으로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존재들로 살아가면 우리가 가는 곳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가정도, 환경도, 회사도, 지역도, 국가도 살아나고 치유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치유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그 사람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치유의 능력이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에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원이 필요치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병원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영적 병원인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개인의 상처, 가정의 상처, 국가의 상처 등 어떤 상처가 되었든 치료하여 더 좋은 상태로 돌려놓으실 수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6. 순종하는 사람을 치료하여 주십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하나님은 치유의 조건으로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는 자를 치유하십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나아만은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 기대를 가지고 엘리사의 집 앞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치료될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리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할 때 무서운 나병이 나았습니다. 성경은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치유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더 좋은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이 걸렸을 때 벽을 향하여 지난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철저히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나아서 15년이나 생명이 더 연장되었습니다.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또 하나의 치유의 조건으로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몸을 함부로 하고 무리하게 혹사하면 병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아닌데 병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처럼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경우가 있습니다(요 9:3). 또 한편으로는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고백한 것과 같이 교만하지 않도록 가시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고후 12:7). 그러나 죄로 인해 병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병의 근원을 치료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5장 16절에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여기서 의인은 의를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의를 행하는 자를 치유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영육 간에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또 하나의 치유의 조건으로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는 곧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신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은 명약 중에 명약입니다. 누구든지 이 약을 먹으면(지키면) 먼저 영혼이 살고 육신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질병을 수술하는 수술 칼이 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술하는 의사는 환자를 마취하고 나쁜 것들(고름, 썩은 살, 종양 등)을 다 도려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수술 칼과 같아서 우리의 잘못된 것, 나쁜 것들을 다 도려내어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치유됩니다.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질병에 걸렸든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고 법도와 규례를 지키면 영적이든, 육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병에 있다고 할지라도 치료가 급속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치유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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