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주도권과 인간의 순종과 인내
사도행전 16:6~15
찬송가 445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중에 한 단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그가 이차 전도 여행을 할 때에 애초에 계획하였던 소아시아 전도 길이 막혔을 때에 바울이 당황했으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새로운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나 우리 자신의 길과 행할 일에 대하여 계획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고, 마음에 소원하는 바 꿈과 소원을 갖고 살아가도록 지음받았기에, 우리는 바라고 원하는 바를 추구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뜻을 정하고 그 길을 추진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인간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계획해놓으신 뜻과 계획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사야 55:8,9 말씀에 이르기를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래서 잠언의 저자 지혜자 역시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잠언 16:9 말씀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19:2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20: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0:2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분명 인간의 계획과 뜻이 있지만 이와 별도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일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하늘과 땅처럼 크게 벌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넥타이를 어떤 것을 매야 하는지, 옷을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야 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나 직장이나 이사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묻지 않으면 그로 인하여 뜻하지 아니한 어려움과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어떤 일의 방해와 지연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과 불일치할 수 있다라는 점을 인식하고 내 뜻과 내 계획만을 주장하고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가를 알기 전에는 섣불리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합당한 신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내 뜻과 내 계획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찾고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계획과 뜻이 있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굉장히 민감하였습니다. 자기의 선한 계획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께서 반대하시고 막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영께서 어떻게 자기의 뜻을 보여주셨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령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환경으로 알려주시기도 하시고 예언으로 알려주시기도 하시고 환상으로나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알려주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도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고 찾는 자에게 분명히 그 뜻을 알려주신다는 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과 동행하는 일행들도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면서 서쪽으로 행하여 드로아 항구에 도착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께서 바울에 환상을 보여주심으로써 지중해의 에게해의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레미야 29:12,13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예레미야 33: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시편 32:6 이하에 이르기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기 원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간청하십시오. 그리할진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뜻을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분명한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이 주어질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우리가 그의 뜻에 순종하여 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즉각적인 외적 성과가 나타나거나 그 순종의 길에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환상을 보고 에게해를 건너 마게도냐를 건너 빌립보 시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곳에서 전도의 성과가 즉각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수일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맞이하여 기도처에 갔다가 거기서 한 사람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 한 사람을 얻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전도하다가 점치는 여종을 만나 귀신을 내쫓았다가 엄청난 핍박을 바울과 실라가 당하여 매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감옥에 갇힌 중에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양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열어주시고 발에 단단히 맨 차꼬도 풀어주시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 밤 감옥의 간수장과 그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순종한다 하더라도 당장 무슨 기적처럼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순종하며 인내하며 여전히 믿음의 선한 영적 싸움을 계속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순종하면서 영적인 씨름을 벌이면서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한평생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여준 사도 바울의 선교단의 행보에 나타난 영적 교훈을 마음에 깊이 아로새깁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점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가 차분하게 찾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찾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뜻과 계획을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되 인내와 기도와 겸손 속에서 성령님과 계속 동행합시다. 그리할진대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요 우리의 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