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깨끗한 법과 빈두로의 신통
1 부처님은 어느 날 새로 세워진 기원정사에서 설법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나의 법을 상속하는 사람이 되고 물질을 상속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므로 이런 말을 하노라. 비구여, 만일 너희들이 내게서 물질의 상속자가 된다면, '사문 석가의 제자들은 물질을 위하여 출가하고, 법을 위하여 출가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할 것이다.
비구여, 내가 공양하던 음식을 남겨 두었을 때에, 두 비구가 밖으로부터 매우 주리고 피곤하여 돌아왔다고 하자. 나는 그들에게 '여기 남은 음식이 있으니 먹겠거든 먹어라. 너희들이 먹지 않으면, 깨끗한 땅이나 벌레가 성하지 않을 곳에 버려라'고 하면, 한 비구는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물질의 상속자는 되지 말라고 하셨다. 이 음식은 물질이다. 나는 이 음식을 먹지 않고, 차라리 주리고 피곤함을 견디리라.' 하고 그대로 했다. 또 한 비구는 '이 음식을 먹고서 주리고 피곤함을 면하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했다고 하자. 비구여, 먼저 비구는 찬양할 바이다. 왜냐하면, 그 비구는 오랫동안 욕심을 없애고 족한 줄 알며, 번뇌의 독한 화살을 뽑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비구여,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까닭에 '나의 제자는 법의 상속자가 되고 물질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2 어느 날 밤, 부처님이 기원정사의 강당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재가자의 집에 가까이 할 때에는, 달의 비유와 같이 마음과 몸을 잘 정돈하여라. 재가자의 집에서는 항상 새로 들어온 비구와 같이 겸손하여라. 비유하건대, 옛 우물이나 산벼랑이나 깊은 못을 내려다 볼 때에, 마음과 몸을 움츠리고 단속하듯, 이 재가자에게 가까이 할 적에도 그렇게 하라. 가섭 비구는 그와 같이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재가자의 집에 가까이 할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 저희들의 모범이시며 의지할 곳이니, 부처님께서 지도하시는 대로 마음을 가지렵니다."
그때 부처님은 손을 허공에 흔드시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이 손이 공중에 붙지 않고 얽어맨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비구는 어디 가든지 그 집에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법을 들려주고, 공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공덕을 얻도록'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얻어서 기뻐 만족하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얻음에도 기뻐 만족하라. 이와 같이 비구는 처음 재가자의 집에 가까이 할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가섭처럼 어느 집에 갈지라도 그 집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며, 잡히거나 얽어 매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3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구의 깨끗한 설법과 깨끗하지 않은 설법이란 어떠한 것이냐?"
비구들은 잠자코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잘 들으라. 비구로서 이렇게 생각하며 설법하는 이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나의 설법을 들어주면 좋겠다. 듣고서 기뻐해 주면 좋겠다. 기뻐서 나에게 기뻐한다는 표시를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설법하는 것은 깨끗하지 못한 설법이다. 비구들이여, 또 이렇게 생각하고 설법하는 이가 있다고 하자. '법은 부처님께서 이미 잘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받아 믿고 행하면, 현세에도 좋은 과보를 받게 되리라. 또 그것은 열반으로 인도하는 법이니, 지식 있는 이는 각기 알아야 할 법이다. 그러면 내가 설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같이 생각하고 참된 교법에 맞도록 자비로써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 그것은 깨끗한 설법이라고 하리라. 비구여, 가섭은 실로 이와 같이 설법하는 것이다. 비구여, 너희들도 또한 가섭과 같이 법을 설하지 않아서는 안 되리라."
4 존자 빈두로는 교상미국의 우데나 왕의 국사의 아들이다. 삼 베다를 배워 통달하고 바라문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였다. 어느 날 왕사성에 갔다가 부처님의 교단이 임금님의 두터운 공양과 존경을 받는 것을 보고, 뜻 아니게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비구가 되어 계를 지키고 도를 닦는데도, 그는 성욕의 감정이 매우 성해서 그 때문에 수도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힘껏 정진하여 마침내 애착심과 탐욕심을 끊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가끔 목건련과 같이 행각했다. 그때 왕사성의 부호인 부발타의 아들 주데카는 진기한 전단향 나무를 얻고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향나무로써 비구들이 쓰는 바리때를 만들어 주고, 그 나무 부스러기만을 내가 쓰리라'고.
정성껏 바리때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잘 만든 바리때를 높은 장대로 공중에 달아놓고 선전했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통으로 그 바리때를 가져가도록 하라'고. 그때 이름 높은 출가자들이 이런 시험을 당하자 모두 그곳에 모였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그 높은 장대만 쳐다볼 뿐, 한 사람도 신통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빈두로와 목건련이 걸식하러 나왔다가, 빈두로는 목건련에게 말했다.
"스님, 높은 신통을 갖추고 계시니, 이 여러 사람 앞에 보여 주어 저 바리때를 가져가심이 어떻겠습니까?"
목건련이 사양하니, 권하던 빈두로가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빈두로는 신통을 나타내어 공중에 올라가 여러 사람의 갈채를 받으며, 바리때를 가져왔다. 장자는 두 스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바리때에 맛있는 음식을 가득 채워 공양하는데, 사람들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뒤를 좇아 대숲절에까지 따라왔다. 절에서는 문득 왁자하고 소란했다. 그것은 빈두로가 신통으로 높은 장대 위에 달아 놓은 바리때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고, 비구들을 모아놓고, 빈두로에게 그런 사실을 물으셨다. 빈두로는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것은 사실입니다."
"빈두로여, 그것은 사문이 할 일이 아니다. 너는 어찌하여 조그마한 바리때 하나를 갖기 위하여, 신통을 보이었는가? 믿지 않는 자를 믿게 하기 위하여, 믿음 있는 자를 더 정진하게 하기 위하여 한 것은 아니다. 비구들이여, 재가자에게 신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 향나무 바리때를 부수어서 향가루를 만들어, 안약에 쓰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나무 바리때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승가의 규율이다."
일찍이, 부처님의 이름이 세상에 떨치자, 그 중에는 부처님의 신기함을 보고자 제자가 된 자가 더러 있었다. 바른 법에는 신기함이 없고, 부처님은 다만 진실하게 네 가지 진리를 가르쳐 주시었다. 이제는 제자가 신통을 나타내는 일을 금했다. 그 뒤로 외도들은 기뻐하며 '사문 석가모니에게도 사람을 초월한 법이 없다. 그 교는 평범한 것이다' 라고 비평하였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불평을 하며, 교단을 떠난 자도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만 올바른 이법에 따라 가르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