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50]나는 ‘설명충(蟲)’ 인가?
‘人生到處有上手’라지만, 세상에는 참 벼라별 사람이 다 있는 것같다. 마음을 비우고 사는 自然人도 있고, 道士然하는 미친 巫俗人도 있지만, 암것도 모르며 그 잘난 여편네에 휩쓸어 날뛰는 천방지축 ‘멧돼지인간’도 있다. 내가 아는 그는 이런 종류의 인간과 類가 다르다. 8년도 넘게 날마다 신새벽에 일어나 佛者도 아닌 듯한데, 백팔배를 한 후 ‘영양가 있는’ 책이나 글을 筆寫하는데 이골이 났다. 그런 후 지인 몇 천명에게 카톡이나 메일로 보낸다던가. 희한하다면 희한한 일이다. 1964년생, 호가 진언(珍彦), 보배같은 선비라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1년에 두세 번 우연케 만나는데, 얼굴이 참 맑아 보기에 좋다. 특이한 것은 명함에 적힌 직업이 ‘제사장(祭司長)’이다. 제사장은 종교상의 의식이나 전례를 맡아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젊으신 분(환갑이 넘었으니 젊지는 않지만)이 이런 ‘고귀한’ 직업을 가졌을까? 신기해 緣由를 물었다. 수 년 전에 무슨 까닭인지 藏風得水(속칭 風水)의 ‘신기(神氣)’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일반 사람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자연 속에 그대로 있는 바람과 물의 얼굴을 그리고 땅 속의 세계가 환히 보임으로써, 이른바 제사장이 됐다는 것이다. 이건 숫제 믿거나말거나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백팔배를 한 후, 여러 책과 좋은 글을 베껴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혼불>을 필사한 애독자 얘기는 들어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들었거니와, 나로선 날마다 읽어보기조차 쉽지 않다. 참말로 그 정성, 제사장답게 대단하다. 유별난 취미이자 특기이다. <주역> <풍수> 5권, <박재일의 5분 고전> 등 수많은 책을 베꼈다. 지금은 나의 추천으로 <김성동 서당> 1, 2권을 베끼고 있다.
아무튼, 보름 전쯤에 그 친구와 인사동에서 잠깐 스쳤는데, 뜬금없이 “우천형도 저처럼 ‘설명충’이지요?”라고 했다. 설명충? 벌레를 뜻하는 충(蟲)은 알겠는데 설명충은 뭐지? 하다가 금세 알아챘다. 자기처럼 뭔가 알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설명(說明)해주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체질의 인간을 가리키는 造語인 듯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그런 것같다. 얼마 전에도 아내로부터 ‘제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설명하려 들지 마’라는 충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쬐금’ 아는 것은 장황하게 길게 말하는 ‘못된 습성이나 버릇’이 결국 ‘잘난 체’로 비친다는 것을 自覺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디 말뿐인가? 글은 더욱 심한 것같아 "쎄게" 反省해야 하는 부분인 것은 알지만, 어느새 고질병처럼 된 것같다.
‘설명충’이라는 칭찬도 아니고 비난도 아닌 말을 들은 후, 내가 아는 ‘충(蟲)’이 무엇이 있지를 생각해 봤다. 맨먼저 우리 부모들이 자라는 자식들을 혼낼 때 쓰던 ‘식충(食蟲)이’ ‘잠충이(잠꾸러기)’가 있을 것이다. 부지런한 나는 이 두 충에 해당되지 않는 대신 ‘책충(冊蟲)이’였다. 활자중독을 빗대어 말하는 '책벌레'도 일종의 정신질환이 아닐까. 어쩌다 신문을 봐도 기사 아래에 있는, 아랫도리 잔글씨 廣告까지 읽을 건 또 무엇인가. 이 버릇은 우리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하여간 '遺傳子(DNA)'는 못말린다(아버지는 유전자라는 단어가 낯설거나 모르시는지 ‘전통’이라고 말했다). 책충이라고 해 별 것은 없다. 초중등시절, 만화와 무협지에 몰빵했다. 무협지 천권을 독파하니 한자 1천자는 거뜬했다. 그때 그 시절에 일반단어 뒤에 대부분 괄호로 한자를 병기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줘도 읽지 않은 만화와 무협소설이지만, 아예 만화방에서 살았다. 책벌레는 당연히 공부를 잘해, 그 잘난 S대 법대는 ‘따논당상’였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해 할 말이 없으나, 온통 거짓말만 하는 멧돼지를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자청하고 돈 안되는 생활글작가라도 된 것은 순전히 책벌레, 책충이 때문일 것이다.
어느날 정민 교수의 『체수유병집滯穗遺秉集-글밭의 이삭 줍기』 책을 읽다가 아주 특이하고 놀라운 ‘충’을 만난 게 삼시충(三尸虫)이다, 虫자는 蟲의 俗子. 삼시충은 우리 몸에 숨어사는데, 두 달에 한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 밤이 되면 주인이 잠든 틈에 하늘나라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그동안 주인의 잘못을 모두 일러바친다는‘고자질쟁이’벌레이다. 그 말을 들은 옥황상제가 우리가 지은 죄만큼 우리 생명을 짧게 한다는데, 無病長壽가 소망인 인간들의 虛를 찌르는 이런 고약한 벌레를 영구추방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니 그날밤 잠을 자지 않거나 삼시충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잘보여야 할 것이다. 온몸에 戰慄이 일지 않은가. 그러니 어떤 죄도 짓지 않고 착하게 살 일이다. 갑자기 평생 감옥에서 콩밥을 먹을 멧돼지가 안쓰러워진다. 사형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쯧쯧.
‘일베충’. 이런 벌레도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참으로 불쾌한 일이다. 어제는 비극적인 세월호사건 11주기가 되는 날. 그 해(2014년)에 광화문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 모임 옆에서 폭식(暴食)투쟁을 하던 자들이 ‘일베충’이라고 했다던가.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을 버젓이 하는 그들은, 벌레보다 못한 '극도로 우매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말없이 다가가 유족 대표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손을 잡고 깊은 위로를 하는 마당이었다. 바퀴벌레보다 더 더러운 일베충이라는 벌레는 이 땅에서 영구추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곤충박사 최재천 교수가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나쁜 벌레가 문제이고 척결대상이지 좋은, 착한 벌레는 또 얼마나 많은가. 벌레에게서 배워야 할 인간들이 참 많은 게 우리가 해결해야 할 宿題가 아닐까. 그나저나 나는 '설명충'을 어떻게 벗어날까? 하릴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