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축일은 보통 그 성인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 날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삶보다 저 세상에서의 완성된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태어난 날까지 기념하는 성인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이죠.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 성모님의 탄생과 함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그것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 날짜는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탄생 6개월 전인 오늘이죠.
세례자 요한이 그만큼 중요하고, 예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이웃과 친척들은 그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합니다.
아버지를 닮아 존경받는 사제가 되라는 의미겠지요.
아버지가 나이도 많이 들었으니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그의 이름을 요한으로 지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일러준 이름이었죠(루카 1,13).
사람들의 물음에 즈카르야는 이렇게 글로 대답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세례자 요한을 빚어 만드셨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엘리사벳이었지만, 요한을 잉태하도록 만들어주셨죠.
예수님 앞에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그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빛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창문을 여는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모두가 다시금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준비, 사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
미사 전에 바치는 참회예식이 그것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는 것,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은총의 빛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간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의롭게 된 사람은 가슴을 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던 세리였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먼저 자비를 믿고 그분께 나의 부족함을 고백해야합니다.
그분의 자비에 의탁하고 매달려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나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註 :
강론에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 아쉬워서 몇자 더 적습니다. '예수(여호수아)'님의 이름 뜻은 '주님(야훼)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요한(여호하난)'은 '주님(야훼)은 자비로우시다.'이구요. 두 이름 모두 천사를 통해 알려주신 것이죠. 하느님의 구원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먼저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시니 어서 회개하고 그분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 요한이 한 일이었죠.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자체로 길이 되시고 구원이 되셨지요.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