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산 스님
경허 스님은 팔만대장경은 물론이거니와 유교의 사서삼경과 장자까지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 있어 무엇을 들이대도 새기는데 막힘이 없었던 대강백(大講伯)으로 선의 중흥조가 된 위대한 선객이었다. 하지만 그의 언행에서는 권위의식이나 위엄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선사께서는 자신을 다스리는 데는 추상같았지만 제자들에게는 격식을 집어던지고 그때그때 번뜩이는 해학과 기지로 깨우침을 주신 흔적이 경허어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선사께서는 제자 사랑이 애틋하고 사무쳤던 분이다. 특히 만공당 월면선사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한 것이었다.
천장사에 수월ㆍ혜월ㆍ월면이 함께 했던 시절. 수월은 주로 땔나무를 했었고, 혜월은 사전(寺田)을 가꾸는 소임에 전념했다. 경허선사의 수발은 막내인 만공당 월면의 차지였다.
그리고 수월과 혜월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사제의 인연을 맺고 법을 이은 것이지만, 만공은 열네 살에 경허선사와 만나 그림자처럼 시봉을 했으므로, 경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온전하게 경허의 가르침을 통해 득도한 진정한 의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경허선사는 한동안 월면 사미승을 운수행각이나 탁발 시에도 데리고 다녔다. 영특했던 사미승 월면을 몹시 아꼈다는 반증이다. 하루는 사미승 월면이 경허선사께 묻는다.
“스님! 도(道)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이옵니까?” “도가 대체 무엇이냐?” “예, 스님?” “도라는 것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천지사방에 있는 것이다.” “천지사방에 도 아닌 것이 없다고요?” “그래. 꽃피는 것도 도고, 꽃이 지는 것도 도다. 바람이 부는 것도, 불지 않는 것도 역시 도다. 그 오묘한 도리를 알면 누구나 부처를 볼 것이니라.”
“부처가 어디 있는데요?” “벽에 걸려있는 저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거기에 부처가 있다.” 거울을 향해 눈을 주었던 월면이 말한다. “이 거울 속에는 제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경허선사의 죽비가 사정없이 월면의 등을 내려쳤다. 월면은 기겁을 했다. “아니 왜 때리십니까요?” “아직도 부처를 보지 못하였느냐?” “스님, 거울 속 어디에 부처가 있단 말씀이에요!” 다시 죽비가 내리친다. “왜 자꾸 때리기만 하십니까요!” “거울을 다시 보아라.” “제 얼굴밖에 안 보인다니까요!” “잘 보아두어라. 그 얼굴이 바로 부처니라.“ “예? 제 얼굴이 부처라고요?” “그렇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지 말거라.”
스승은 사무치게 가르치기 위해 애정의 매를 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경허선사가 월면을 가르칠 때 굳이 딱딱한 경학이나 계율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어린 제자를 데리고 운수행각이나 탁발을 다니면서 그저 흰 구름, 피고 지는 꽃, 흐르는 물, 솔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서 도를 구하고 부처를 찾도록 유도하였다.
말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저절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한국 불교사에 수많은 조사가 있고, 제자가 존재하지만, 경허와 만공의 사제지연이 가장 돋보인다. 경허가 있기에 만공이 있고, 만공이 있기에 경허가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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