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물입니다"
♥어느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여름에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하면 시내 최고급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수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어머니와 누나와 저는 미국 이모네로 갑자기 떠났습니다.
1988년 2월 추운 겨울날, 저희는 미국 JFK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이모부는 낡고 작은 차에 짐을 실었고 우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아주 허름한 2층짜리 다세대 주택 앞에서 섰고,
그곳에서 11명이 1년을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전교 1등을 하던 누나는 바로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늘 꼴찌만 하던 저는 ABC도 몰랐기에 원래는 6학년에 올라가야 하는 나이에
4학년으로 몇달 뒤 들어갔습니다.
무턱대고 아무 반이나 들어갔는데
6학년 반으로 잘못 들어갔고, 끔직한 저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식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하는 누나가 줄리어드 프리칼리지에 합격해야 했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두 번이나 떨어졌고 세번째에야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의 악몽 같은 학교생활은 더해만 갔습니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운동도 못하는 동양 아이를
아이들은 괴롭혔고, 쉬는 시간이면 한대씩 툭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1달러 25센트의 점심 급식비를 아끼려 어머니는 도시락을 매일 싸주셨는데 아이들은
우유를 내 도시락에 붓기도 했고,
저는 너무 맞아서 귀가 찢어져 피가 나거나 사물함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난과 놀림을 피할 곳은 오직 화장실이었습니다.
하루는 변기 위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누나는 똑똑하게 만들어 주셔서 엄마의 사랑을 받게 하시면서,
왜 저는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해서 맨날 야단만 맞게 하시는 거냐구요!”
저는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처음으로 제게 오시는게 느껴졌습니다.
'얘야~ 내가 여기 있잖아.. 너와 늘 함께 있잖아~ 내가 친구해주면 되잖니?'
“사람들은 내 이름도 부르지 않아요. 누나의 동생이라고만 해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실수로 태어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란다.
저는 환청인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친구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무작정 믿고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마음 속 무언가 단단한 반석 같은 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국에서 몇 달 배운 게 전부였는데 미국에서 들으니 너무 반가워 그 소리를 따라 밴드부실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나보고 플루트를 한번 불어보라고 하셨고,
저는 한국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와 나비야 정도만 겨우 불었는데
불현듯 한번도 불어보지 않은 애국가의 멜로디가 생각이 나서 불었습니다.
나도 선생님도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그 플루트를 주시면서 밴드부에 매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정말 열심히 불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기뻤고,
무엇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게 더 좋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줄리어드 프리스쿨 시험을 치고 싶어요”
어머니와 누나는 황당해하며 아무나 줄리어드를 가는 줄 아느냐
레슨비가 얼마나 비싼데 우리 형편에는 불가능하다며 혼을 내셨습니다.
정식 레슨 없이 시험 기회는 단 한번만 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맡은 저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시험 보는 날, 어머니는 일을 하셔야 했기에
혼자서 뉴저지에서 맨하튼까지 혼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저는 쟁쟁한 아이들의 옷차림과 악기, 부모님들의 보살핌에 기가 죽었고
어차피 떨어질거라고 생각해서 제스처까지 해가며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박수를 치면서 웃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5분도 되기 전에 끝났는데
저는 전곡을 다 연주했고, 한 교수님이 낡고 싸구려 악기를 보시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일주일 뒤 줄리어드에서 온 우편물을 먼저 잡아든 누나는 비웃으며
“야, 불합격 통지가 어떻게 일주일만에 오니? 창피하지도 않니?
이제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또 시험 치겠다는 소리 절대 하지마”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혹시 아버지한테 온 편지를 보고 우시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저를 보더니 갑자가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얘야, 네가 줄리어드에 붙었어.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저는 그렇게 13세에 줄리어드 프리스쿨에 들어갔습니다.
왕따에서 줄리어드 장학생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빈민촌 거리로..
8년 동안 전 세계 80개국,
2년 간 일본에서 200회 연주하며 오직 청중만을 위해 연주하는 그…
세계적인 플루리스트로서 부와 명예를 다 누릴 수 있음에도
가장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연주로 복음을 전하는 그..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 의 메인 연주와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그..
그는 바로 2013년 <하나님의 연주자>란 책을 발간한 "송솔나무" 집사입니다.
교수들로부터 천재라고 칭송 받았던 그의 인생은 과연 줄리어드 입학 후 탄탄대로였을까요?
빈민촌으로, 아프리카로, 일본으로 전 세계를 돌며 연주하는 그는
사실 플루트를 연주하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고로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은 오른쪽 다리는 왼쪽에 비해 70%밖에 못 씁니다.
그래서 연주 때 오래 서 있을 수가 없고,
또한 폐의 64%밖에 못 쓰는 심한 천식 환자입니다.
2006년부터 복용하는 천식 약은 우울증과 불면증, 공황장애를 유발해
연주를 마치고 아무리 피곤해도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유학 중에 그는 악기를 세 차례 도둑맞았는데,
1000만원이 넘는 비싼 악기를 잃어버린 세 번째에는 상실감에
악기가 없어 학교에 갈수도 없었기에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대중가수 앨범 및 영화와 드라마 OST에 참여하며 세상 음악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 가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는 방황끝에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연주자로서 전 세계 86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솔나무님,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나 비전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그 분께 순종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의 최고의 자기관리입니다. “
고난을 통과하며 정금처럼 다듬어진 그의 삶과 음악은
온 세상의 상처받고 소외된 영혼들을 치유하는 마술피리(magic flute)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책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 공부를 못한 것에 감사합니다.
특히 수학을 못해서 계산에 약한 것에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준 것을 계산하지 못하니까요
어릴 때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서
힘든 생활 가운데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덕분에 미국에 갈수 있었고,
힘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집이 없고, 차가 없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늘 학교에서 놀림당하고 맞은 것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하나님을 제 친구로 삼을 수 있었고,
일을 하다 맞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니까요.
천식과 공황장애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담배를 못 피게 되었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연주자로 무대에 설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세번이나 악기를 도둑맞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무엇보다 지켜야할 것은
재물이 아니라 마음임을 알았으니까요
젊은 시절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제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글에서
첫댓글 주님께 의지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역경과 시련을 발판으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