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게 일어나 다시 온 몸을 늘여 요가와 명상을 하고 별주부 쥔장들에게 인사를 한 뒤 서포에서 삼천포 바닷길을 향해 달려간다.
운전을 하며 바라 본 삼천포 역시 사천으로 편입되면서 온갖 것들이 변모를 하였고 그중에서도 구도로의 진면목을 느끼기엔
이미 확장 일로의 도로와 번듯한 도심의 풍경이 예전같지 않아 낯설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부러 작은 골목길을 돌아돌아 해안가를 따라 돌아보았더니만 전에 취재를 하였던 찻집 광포연가 또한
쥔장이 바뀌었는지 낯선 이름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한결같이 오래 간다, 묵은 옛정이 그립다는 역시 과거의 흔적 뿐인지 날마다 새롭게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옛 기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우리네는 과연 전통이라는 것을 계속 이어가게 될런지 그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하긴 삼천포만 그리하겠는가.
전국 어디를 가던지 간에 관광대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횡포와 어줍잖은 변모는 또 얼마나 많더란 말이더냐.
그렇다고 꼭 관광대국으로 거듭 난다는 보장도 없건만 무작위로 변모를 시켜버리는 새로움에는 화가 날 지경이다.
어쨋거나 삼천포를 처음 찾는다는 지인을 위해 해안가를 찾다보니 잠깐 울컥하였지만 삼천포 하면 역시 금방 잡아 온
생선의 팔팔한 기운이 넘치는 회가 최고.
어느 해 인가 삼천포 도공이 장작가마 작업을 한다고 하여 찾아들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장작가마 불 때는 날에는 자주 삼천포를 찾기는 하였지만 년도가 기억되지 못하는 그 해.
도공의 동생이 갓 잡아온 회를 그 자리에서 회쳐가며 먹는데 정말 환상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육질의 쫄깃함과 신선함과 탄력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스읍 습, 고강도 회를 맛보던 그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날의 생선회 맛을 잊지 못해 전국 어느 곳을 가서 먹더라도 내 기억은 항상 삼천포 그날에 머물러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단 일본 여행지에서 특히 남 큐슈 일대 섬을 여행하며 맛 보던 회와는 비교 불가.
거의 대등한 삼천포 회였지만 일본의 맛과는 차원이 다르긴 했더라는 말인데 생선회에도 일종의 격이 있더라는 말씀.
좌우지간 입에 거미줄 치는 중이라며 빨리 달려오라는 도공의 전언에 휘리릭 날아가보니 도공, 혼자서 차를 마시는 중이다.
하도 오랫만에 만나는지라 밀린 이야기는 끝간데 없지만 나선 길이 바빠 일단은 집 바깥으로 나오자니
도공의 도반인 개 여덞마리가 동시다발로 아는 체를 하며 짖어대는 모양새가 마을을 뒤흔들고도 남음이다.
에효, 사람살이 게으르고 귀찮음으로 가득 찬 남정네가 뭔 짐승은 또 그리도 거두는지.
그렇게 회포를 풀면서 다담을 마치고 점심 해결을 위해 길을 나서다가 고성 상족암 바닷가로 방향을 틀어 몽돌해안으로 달려가니
도공의 지인이 운영하는 언덕 위에 자리한 "가마랑 펜션 055 834 8411" 쥔장이 반갑게 쫓아나와 객을 맞아 준다.
가마랑, 고성과 삼천포 일대에서는 나름 유명세를 타는 중이고 개인사적으로 보자면 혼신의 힘을 다해 펜션과
옹기, 항아리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우리 옛것을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하느라 허리가 휘는 중이다.
넒디 너른 뜨락과 몽돌 해변의 절경을 눈 앞에 두고 110볼트의 몸으로 220볼트의 역할을 해내느라 힘들고 지치기도 하련만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열성을 다하는 쥔장.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우리 것 모으기, 일명 골동품 중에서도 조상님네들의 일상이 담긴 항아리와 그에 관련된 물품을 모으느라
전 재산을 털어넣어가며 개인 사료관을 운영중인 쥔장의 노고를 보면서 마음이 편하기 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그나저나 객이 안타까워 하거나 말거나 초연하게 제 할 일을 하면서 손님 접대에 소홀할까 싶어 일일이 쫓아다니며
우리네 물품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유람선으로 안내하여 지극정성으로 냉커피를 내어주는데
상상을 초월할 도공의 찻사발에 내어준 커피 한잔을 마시자니 웬만한 커피는 또 저리 가라 이다.
알고보니 그 지역에서는 이름 난 바리스타이기도 하다는 쥔장 김동인님.
할 일이 너무 많아 엉덩이 붙이고 앉을 새가 없다는 그이고 보면 열심히 살아낸 지난 날을 뒤로 하고 이제는 여유롭게
인생 후반부를 즐길만도 하건만 왜 그리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하고 기를 쓰며 사는지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다.
한때 부산에서 선박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열심을 다한 끝에 얻어진 유명세와 부를 누렸던 만큼
제 2 인생에서는 여유롭게 살아내는 삶이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싶지만 워낙 바지런한 사람이다 보니 그 여유 조차 사치라고 느끼는 듯.
그러나 저러나 부단한 개인의 노력과 발품으로 탄생된 가마랑 같은 곳이 존재함으로 잃어버려지거나
잊혀질 우리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 우리 것으로 보존되는 셈이 아닌가 싶어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렇게 상족암 근처 몽돌해변과 가마랑에서 잠깐의 나절을 함께 보내고 드디어 가정식 집밥으로 유명하다는
삼천포 시내 세자매 쌈밥집으로 휘리릭 달려가 한 여름의 별미, 호박잎 쌈까지 챙겨 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랬지만
아, 역시 된장국이 젬병이다.
말하자면 쌈밥에 알맞는 걸죽한 된장국이 아니어서 실망이었다는 말인데 그 역시 어쩌겠는가.
쌈밥이 주 목적이었으니 그로 인한 행복지수가 높았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을.
다시 도공의 집으로 돌아가 그의 찻사발을 하나씩 선물로 받고 돌아나오는 길,
인생을 되짚아 보느라 오롯이 방안 퉁수가 되어 회환에 젖다보니 대화가 부족해 입에 거미줄 친다는 도공의 목소리가 귀에 남겨지고
그러나 각자 역할과 영역이 다른고로 뒤돌아 삼천포와 아듀....그렇다고 그 인연의 끈이 모르쇠는 아니라는 말씀이니 또 훗날을 기약한다.
안성으로 돌아왔다.
산골짜기 내 집, 공기가 다르고 조용한 것이 천국이 따로 없다.
늘 발품을 팔아 먼길 돌고 나면 내 집만한, 무설재 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전부.
첫댓글 ㅋㅋ 나돌다가 얻게되는 평안이라...
암튼지간에 덕분에 더불어 이리저리 나돌다 돌아왔네요~! ㅎㅎㅎ
ㅎㅎㅎㅎ 그러게나 말입니다.
언제나 나돌아 다닐 궁리를 하지만 여전히 집이 좋다 로 결론이 나는 이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나설 일이 있다면 또 휘리릭 날아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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