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B형간염을 필두로 예방접종 인생이 시작된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예방접종은 생후 18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줄어드는데, 이 때문에 예방주사는 어린이들이 맞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취약한 바이러스가 다른 만큼 그에 맞는 예방접종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건강의 수호자, 예방접종에 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살펴본다. |
[서울톡톡] 예방접종이란 전염성 질병과 후유증이 심각한 병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면역원으로 사용하는 접종액은 백신(vaccination)이라고 한다. 백신에 사용하는 항원은 크게 세균성 항원과 바이러스성 항원이 있는데, 세균성 항원에는 사멸된 전체 세균, 병원체가 체외로 배출하는 독소를 멸독한 톡소이드, 독성을 약화시킨 생세균체 등이 있다. 바이러스성 항원에는 생약독화한 것과 사멸된 백신 등이 포함된다.
사실 예방접종은 독성을 약화시킨 병원균을 몸 안에 주입하는 것이므로 부작용에 대한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예방접종을 하는 것은 접종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비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서 병에 걸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작용을 고려하더라도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필수예방접종과 선택예방접종의 차이
예방접종은 각각의 필요성에 따라 국가필수예방접종과 선택예방접종 등으로 분류한다. 이중 국가필수예방접종은 전염병예방법령에 따라 지역별 상황상 반드시 시행해야 할 예방접종으로 BCG, B형간염, DTaP, Td/Tdap, 폴리오, 일본뇌염, MMR, 수두, 인플루엔자,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등이다.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백신은 3월 1일부터 영유아 정기예방접종에 포함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표준 예방접종 지침에서는 감염 빈도가 서구보다 낮다는 점과 고가의 백신이라는 점 때문에 필수예방접종으로 권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백신이 기본접종에 포함된 만큼 이 접종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백신은 생후 2, 4, 6개월에 3회 기초접종을 한 뒤 생후 12~15개월에 1회 추가접종할 것을 권장한다.
필수예방접종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소아에게 추천하는 예방접종이 '선택예방접종'이다. 선택예방접종에는 폐구균, A형간염, 로타 바이러스, 인유두종 바이러스, 독감이 있다. 선택예방접종에 포함된 백신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예방의 이점이 있다고 밝혀졌지만, 아직 비용 대비 효과의 분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가능한 한 선택예방접종을 모두 시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집단생활을 하는 어린이는 더욱 선택예방접종이 권장된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모든 선택예방접종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아이가 폐구균과 A형간염, 독감 백신을 반드시 접종해야 하는 고위험군에 속하는지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추가접종의 필요성
우리 몸의 면역계는 같은 항원에 노출되면 처음 노출됐을 때보다는 두 번째 또는 반복적으로 노출됐을 때 더 신속하고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최단 시간 내에 적절한 방어면역을 획득하기 위해서 '기초접종'을, 그리고 이런 면역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후 '추가접종'을 시행한다. 그런데 접종마다 최대의 면역 반응을 발휘하는 백신의 횟수와 간격이 다르다. 어떤 백신은 1차로 기초접종이 완료되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3차의 기초접종이 필요한 때도 있다.
예를 들어 BCG는 1회로 접종이 완료되지만, A형간염은 2회, B형간염·DTaP·일본뇌염·폴리오·폐구균·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는 3회의 기초접종이 필요하다. DTaP 백신의 경우 15~18개월, 4~6세에 각각 추가접종이 필요하며, Td 백신은 11~12세에 1회, 그리고 이후 10년마다 추가접종을 권장한다. 폴리오와 MMR은 4~6세에 추가접종을 시행한다. 일본뇌염은 불활성화 백신과 약독화 생백신의 스케줄이 다르다. 불활성화 백신은 3회의 기초접종 후 6, 12세에 각각 추가접종을 하고 약독화 생백신은 1년 간격으로 2회의 기초접종을 시행하면 추가접종이 필요하지 않다. 그 외에도 폐구균과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는 12~15개월에 1회의 추가접종이 필요하다. 만약 기본 권장 나이에 해당 예방접종을 시작하지 못했더라도 각 나이에 맞게 예방접종 일정을 조정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의하도록 한다. 이를 '따라잡기 접종'이라고 하는데, 시작 나이에 따라 권장되는 기초접종과 추가접종의 횟수나 간격이 다를 수 있다.
성인도 챙겨야 할 예방접종
대부분의 성인이 예방접종을 단순히 어린이들이 맞는 것으로 여기고 무심한 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것은 나이와 무관하므로 성인도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백신이 있거나 관련 질병을 앓지 않았다면 접종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챙겨야 할 예방접종으로는 A형간염과 파상풍, 독감, 수막염구균 백신과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로 알려진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 등이 있다. 최근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는 A형간염은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만큼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갖추는 것이 좋다. 20대에게는 필수예방접종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30, 40대는 항체검사 후 접종할 필요가 있다.
파상풍은 몸에 상처가 생겨 그 안에 파상풍균이 증식하면서 전신의 근육이 뻣뻣해지며 경련이 일어나는 질병이다. 유병률은 낮지만, 치사율이 40%에 이르기 때문에 예방접종이 중요하다. 수십 년 동안 파상풍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40, 50대 성인 남녀는 파상풍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유방암 다음으로 흔한 자궁경부암은 주로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방접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은 성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접종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WHO 권고안은 9~13세 모든 여아에게 이 백신을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 경험이 있거나 권고안 나이 이후라도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백신 접종을 통해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방접종을 하면 60~90% 예방 가능한 독감은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질병이지만, 나이가 많은 성인은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예방주사를 맞고도 청결함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독감에 걸릴 위험이 큰 만큼 평소 청결에 신경 써야 한다. 또한 독감 예방주사는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맞게 출시되므로 작년에 맞았다고 해서 올해에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수막염구균은 유행성 수막염을 일으키는 급성 감염 질병으로 환자나 보균자의 코나 목에서 나온 분비물을 통해 감염된다. 일반인 10명 중 1명이 보균하고 있을 만큼 보균율이 높으며, 특히 활동력이 왕성한 19세 전후의 보균율은 24%로 매우 높다. 기숙사나 군대같이 단체생활을 하는 이, 수막염구균 감염 위험국가로 유학이나 여행을 준비하는 이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만큼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예방접종 전 유의사항
백신은 쉽게 말해 약한 바이러스, 항원을 투여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므로 건강 상태가 좋을 때 해야 한다. 특히 몸에 열이 있다면 접종을 피한다. 스테로이드 제제를 투여하고 있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기간 중에도 접종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접종 후에는 급성 반응의 위험이 있으므로 적어도 20~30분은 병원에 머물러 몸 상태를 관찰해야 하며, 귀가 후 적어도 3시간 이상 상태를 관찰하는 게 좋다.
접종 당일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도록 하며 다음 날까지 과격한 활동은 자제하도록 한다. 흔히 예방접종을 한 날은 목욕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이는 감염의 위험보다 피로에 따른 컨디션 변화를 우려한 권유로 가벼운 샤워 정도는 괜찮다.
도움말/김혜리(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소아청소년과 서울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