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1장 5 - 7절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소중하고 존귀하다고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이 없어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누구를 사랑하겠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서로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또 자신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안 되고 매일 그런 고백으로 자신을 축복하고 가족을 축복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축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미의 기준이 백색 피부였는데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열등감이 있었겠습니까? 술람미 여인이 검은색 피부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 6절에서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그 후에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낳은 남자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 자녀들과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런 가정환경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포도원에서 일을 해야 하는 온갖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런 일들을 하다 보니까 정작 여자로써 지켜야 할 자신의 피부를 지키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표현은 자신 명의의 포도원이 따로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작 돌봐야 하는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했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처지가 되고 상황이 되면 낙심을 하고 좌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면 5절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그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미인의 기준에는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생각을 했고 게달은 검은색을 의미하는데 비록 자신의 육체가 검은색이지만 자신은 솔로몬이 거하고 있는 방의 휘장처럼 솔로몬의 중심에 있고 솔로몬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런 외적인 모습에 굴복하지 않고 솔로몬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자신의 외모나 환경을 보면서 ‘이런 나를 사랑하시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가 지저분한 죄인인 것을 모르시고 사랑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형편 없는 죄인인 것을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외적인 부분들의 열등감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도 괜찮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도 괜찮을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어리석다는 사실을 다 아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처럼 ‘나는 솔로몬의 휘장이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큰 사랑과 구체적인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인생을 끝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도 있지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7절에 보십시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솔로몬이 일하고 있는 곳과 쉬고 있는 곳을 자신에게 말해 달라는 겁니다. 그래야 친구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어디서 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고 사랑 받고 있는 사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를 알 되 힘써 여호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해야 우리는 더 크고 더 놀라운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만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술람미 여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해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쁨의 성도님들이 되시고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오늘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 큰 사랑을 받으면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