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영성靈性은
영생永生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최근 영화<오디세이>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이야기의 배경이지요.
많은 에피소드가
다양한 주제를 던지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오기기아Ogygia 섬에서
여신 칼립소Calypso로부터
섬에 남아
함께 영생을 즐기기를
제안받습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영생'을 거부하고
늙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선택하지요.
우리는 잠시 의아할 수 있으나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선택이기에
곧
그 선택의 무게를 망각합니다.
"영웅은 늘 그런 선택을 하기에..
아니면
그 정도의 선택을 해줘야
비로소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종교 생활과 영성에 매진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교단을 막론하고 종교인 대부분이
영생에 관한 교리를
주입받습니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종교 생활의 목표지점은
영생이지요.
생로병사로 물든 인간 삶이
목표가 아닙니다.
일반적 수준을 떠나 영성 수련에
매진하는 이들도
'무욕의 나라'를 갈구하고
고통이 종식된 세상을
염원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따르는 예수는
인간이 아닌
신의 유일한 아들이어야 하고
죽음을 타파하고
다시 살아나야 하며
무수한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여야만 합니다.
붓다 또한
전지전능omnipotence해야 하며
신통神通을 해야만 하지요.
물론
기적과 신통의 현상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적과 신통은
인간(누군가의 의지)이 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아무튼
왜곡된 영성가들의 롤모델은
분명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엔
영생永生에 대한 욕망과
인간에 대한 혐오가
자리하고 있지요.
그러기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인간을 탈피하려는 것입니다.
반면
3000년 전 호메로스의 안목은
영생永生을 단칼에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능력과
신이 되는 신분 상승을 헌신짝처럼
버렸지요.
오디세우스와 칼립소의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호메로스의
무아無我와 무위無爲의
안목입니다.
호메로스는
이것에 관한 세세한 철학적 설명을
남기지 않았지요.
고정 관념을 깨는 '충격 요법'으로
우리에게
과제를 던졌습니다.
호메로스의 사후 수 백년이 지난 뒤
중동과 인도 그리고 중국에서
이 주제에 관한
철학적 해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이해력이
조금 높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더 지난 지금
대중은 마침내
이 주제를 충분히 소화할 환경에
닿았습니다.
역사는
3000년이 지나 놀란Nolan 감독을
통해
'영생'을 넘어선 철학과 종교의
안목을 묻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그동안 많은 선현들이
이 안목을 애절하게 설했으나
현대의 우리조차
여전히 '영생'에 끌려가고 있지요.
종교와 영성이 닿고자 하는 곳은
한낱
'영생'의 차원이 아닙니다.
3000년 전 호메로스는
그 너머의 차원을 보고 있었지요.
이런 언급은
한 개인인 호메로스의 뛰어남을
칭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지요.
그러나
한 인간이 '영생'이라는
영성의 장벽을 넘어가보았다는
사실이 의미있습니다.
그가 넘었다면
우리도 넘을 수 있고
넘어야 하지요.
역사는
붓다와 예수를 우상화하였으나
호메로스에겐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지요.
물론 우상화로 인해
붓다와 예수가 지녔을 아름다움의
훼손은
전적으로 후대인들의 책임입니다.
'영생'의 포기는
상실이 아니지요.
이것은
소유와 소유자에 관한 해소입니다.
우리의 열망을
그릇에 담는 것이 아니라
열망의 매듭을
푸는 것이지요.
호메로스의
안목에서 볼 때
신이 되고
전지전능을 얻고자 하는 목표가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요?
기적과 신통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쫓느라
인생을 낭비할 일은 아닙니다.
진정한 귀향은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않지요.
고향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은빛 물든 칼립소의 열망
그의 시선 수평선 건너니
같은 벤치에 살갖 닿건만
만날 길 없는 평행한 사선.
..260908小野
카페 게시글
소야小野의 옹달샘
영생을 포기하는 안목
소야(小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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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6
26.09.08 06:4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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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영생의 칼립소, 사랑했던 오디세우스는 유한한 삶에 만족하며 아내 페넬로페에게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변치 않으니...유한한 삶 속에서 고통과 우여곡절을 겪는 사바세계, 여기는 업식들의 단련처이자 회향처라네~ 나마스테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