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정으로 후기를 미루었다가 지금 씁니다. 후기를 쓰는 것은 함께 하신 분들의 추억을 기록하고,
함께 못한 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추후 방문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1박 2일의 일정을 3회로 나누어 후기를 작성할까 합니다.
1편 강원감영, 2편 그랜드밸리, 3편 임진각입니다.
원주에 있지만 원주감영이 아니고 강원감영입니다.
제가 문화재지도사 공부를 할 때 한번, 혼자서 두 번,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을 2017년 10월에 했는데, 그때 감명의 후원 복원작업을 하고 있었고,
1년후인 2018년 복원완료 후 개방했습니다. 후원이 어떻게 복원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500년 원주 강원감영(江原監營) 후기
사적 제439호
2002년 3월 9일 사적 제 439호로 지정되었으며 관찰사가 머물던 지방 관아로 이 제도는 고려시대의
안찰사(按察使)제도를 이어받은 것으로 한 도의 장관으로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장소에 전임기구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감영이라 한다.
감영의 소재는 경기도 돈의문(敦義門) 밖, 충청도 충주, 경상도 상주, 전라도 전주, 황해도 해주,
강원도 원주, 함경도 함흥, 평안도 평양 등이었는데 현재 감영의 중심 건물 선화당이 남아 있는 곳은
원주의 강원감영뿐이다.
포정루(布政樓)
이 문루(門樓)는 선화당의 정문이다.
중삼문 (中三門)
관동관찰사영문(關東觀察使營門)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가진 중삼문은 정문인 포정루를 통과한 방문객들이
두 번째로 거치는 문이다.
내삼문 (內三門)
내삼문은 진입 공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문에 걸린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편액달았는데, 청렴결백하고
맑은 정신으로 몸과 마음가짐을 가다듬으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비석군(碑石群)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의 진입로 주변에는 총 17기의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善政碑)다.
선화당(宣化堂)
‘선화당’이란 각 도의 관찰사[監司]가 집무하는 정당(正堂)으로 감영 동헌(東軒)의 부속건물이다. 전국 감영 중에서
유일한 선화당이다.
행각(行閣)
선화당 왼편 일대에 길게 늘어선 형태의 행각은 감영의 실무를 보좌하던 관리들의 집무실이자 각종 물품을 보관하던
부속 건물이다.
내아(內衙)
선화당의 북측 뒤편에 자리한 내아는 강원도 관찰사와 그 가족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사적인 주거 공간이다.
후원영역(後園領域)
봉래각(蓬萊閣)
봉래각은 후원의 연못 서북쪽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2층 누각으로 '봉래'는 도교에서 말하는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상징한다.
영주각(瀛洲閣)
영주각은 후원 연못의 한가운데에 조성된 정자로 '영주' 역시 삼신산 중 하나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조오정(釣鰲亭)
'釣鰲조오'는 한자 뜻 그대로 '자라를 낚는다'라는 뜻이다.
채약오(採藥塢)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약초(藥불로초)를 캐는(採) 언덕(塢)'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후원 전체를 '신선 세계'로
연출하고자 했던 조경 의도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채약오를 만든이는 관찰사 서명선(같은 족보라 후손으로 아래에서부터 공이라 칭한다)이다. 공께서 44세부터 3년간
이곳 관찰사를 지내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홍문관 부제학으로 근무하면서 목숨을 건 상소를 올려 세손을 왕위에
오르게 했으니 그가 바로 정조였다. 두 사람은 24살 차이다. 정조는 이 상소를 올린 날을 기념하고자, 의리의 사나이
5인회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유명한 동덕회(同德會)이다.
회원 : 정조, 서명선, 홍국영, 김종수, 정민시
사극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홍국영만 과욕해서 중간에 유배당해서 죽었고, 나머진 의리를 다했다.
재미난 것은 서명선과 정민시는 소론이었고, 홍국영과 김종수는 노론으로 당색이 달랐다는 점이다. 정조는 당파를
초월해 자신과 '의리(義理)'를 공유한 이 비선 조직을 통해 집권 초기 정국을 장악하고 탕평책의 기초를 만들었다.
공의 종손자가 113권의 방대한 농사 관련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이며, 종손자 처가 조선 최초의 여성백과사전
『규합총서』을 쓴 빙허각 이씨다. 그녀는 서유구의 형수였다. 형수와 시동생은 많은 공부와 토론을 통해 각자 위대한
저술을 남긴 것이다.
빙허각 이씨는 남편 서유본과 지극한 사이였다.
남편이 먼저 죽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던 그녀는 2년 후 이 절명시를 쓰고 돌아가셨다.
사는 것은 죽는 것 또한 꿈이리니
살고 죽는 것은 본디 참이 아니네
부모에게 받은 목숨을 무슨 이유로 티끌처럼 여기는가!
태산과 홍해처럼 베풀고
서로 의를 따라 살았네
우리 혼인할 때의 사랑을 생각하니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비할 바가 없었네
평생 짝을 이루어 아름다운 부부의 연을 맺은지
오십년 세월이네
그대가 내 사랑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지 못하나
지기(知己)의 은혜를 보답해야만 하리
이제 죽을 자리를 얻었으니
일편단심으로 신에게서 질정(叱正)받으리라
나 죽어서 지우(知友)에게 사례하리니
어찌 내 몸을 온전하게 하리오
지극히 사랑하고 이런 글을 남길 수 있다면
자신을 위한 가장 위대한 흔적이 될 것이다.
난 가끔 이 시를 읽는다.
지성과 미덕을 갖춘 향기가 아직도 나를 감동시킨다.
김금원이라 남장 남장 이야기
연못가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조선 후기의 선구적인 여성 여행가이자 시인인 김금원(金錦園, 1817~?)의
모습이.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남장을 하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던 그녀의 당찬 자태와 눈빛이 동상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신통방통한 인물이다. 김금원이 남긴 불후의 여행기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남겼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원주의 기생으로 살았으니 참으로 재미있다.
이런 삶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낭만이다.
길어졌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래서 문제다!
아무튼 불로초가 요즘 있다면 얼마나 받을수 있을까??ㅎ
강원감영 후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소금산그랜드밸리’ 편에서 뵙겠습니다.
2026.5.18.
신기한 배
첫댓글 작약꽃보니까
그곳 기억나네요
종이로 만든옷 입고
공연하든 그곳이네요
강원감영 후기
길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ㅎ
신기한님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역사기행으로 끝 없는 공부인데 곧 잊어 먹으니 아이구입니다.
대충 둘러보는 저는 부끄럽습니다.성심성의에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때
국사 교과서 공부할 때~
보다 더
심도있게 공부했습니다
다녀온 곳이고
사진을 첨부하니
빨리 습득이 되는군요
미리
예습하고 견학 했더라면
훨씬 더
머릿속 저장과
이해도가 깊었을 것
같습니다
신기한님~♡
신기한 공부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한 시간 즐거웠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아는건만 나는 보았는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