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오를 죽인 안중근의 총알을 만나다

[선창의 아침]

1909년 10월 26일. 첫추위가 불어닥친 하르빈의 플렛포옴을 떠올려 본다. 러시아 군인들의 호위속에 기차에서는 이토오가 내렸고, 의장대는 환영대오를 사열하고 팡파레를 울린다. 순간 천지를 뒤 흔드는 7방의 총성. 잇딸아 쓰러지는 4명의 일본 귀빈들. 잠시의 얼음처럼 흐르는 정적을 뚫고 조선청년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 코리아 뷰레 (대한독립만세 )”

안중근. 그는 일본의 심장-이토오를 향해 7발의 총알을 쏘아 조선의 기개를 떨쳤다. 그리고 정확히 108년이 지난 지금. 난 그중의 한발을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듯 뛰어 오른다.

[사진] 하르빈 역에 내린 이토오 히로부미. (모자를 벗고 있는 흰수염)

      저격직전 촬영된 사진

안중근의 총알을 만난 인연

2008년 3월 31일. 나는 일본 공산당 카사이 의원을 만나러 도쿄에 간 길이었다. 나는 2006년 도쿄대에 소장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의 반환운동에 성공한 뒤, 곧바로 일본 궁내청 황실도서관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운동을 시작했다.(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작성된 기록문화유산의 꽃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일본 공산당의 동참을 이끌어 내었고, 일본 공산당 의원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조선왕실의궤’를 원산지로 반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주었다.

국회 대정부 질의가 이어졌고, 일본 외무성은 ‘법적의무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반환문제를 한일 우호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의궤반환문제는 급진전 되어, 일본 아사히 신문에 2번에 걸쳐 보도되었고, 한일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급진전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이를 협의하기 위한 길이었다.

카사이 의원과의 만남을 마친 뒤, 일본 국회를 걸어 나오다가 문득 눈길이 일본 헌정 기념관에 멈추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최초의 헌법제정과 관련된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이라고 했다. 갑자기 나는 의궤 반환운동을 통해 알게 되었던 일본인들의 반응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요청에 대해 일본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중에 가장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악의적 비방을 서슴치 않는 부류들은 ‘한국이 그런 문화재의 보관능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중에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의견은 ‘한국은 제헌헌법의 원본및 국새(國璽)을 분실한 나라’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감사원 감사 결과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부기록물 관리를 방만하게 해왔고, 그 결과 ‘48년 발표한 제헌헌법 원본과 거기에 날인된 제 1차 국새를 분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대해 일본 우익인사들은 ‘제나라의 헌법원본을 분실하는 놈들’이 무슨 염치로 일본 궁내청에 있는 의궤를 되돌려 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냐는 반응이었다. 제헌헌법을 분실한 놈들이란 비난에는 뭐라 대답을 하기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난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우리의 지난 반세기가 얼마나 격동였는지, 식민통치로부터 해방, 6.25 사변, 군사 쿠데타, 민주화 운동 등을 거치며 우린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격변을 겪게한 가장 직접적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일본의 침략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분단 되었고, 전쟁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래 너희들은 헌법 원본을 얼마나 잘 보관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그런 오기. 그런 가슴아픔은 내 발길을 헌정기념관 안으로 성큼 들어 서게 했다. 일본 헌정 기념관에는 뜻밖에 이토오 히로부미의 자료가 많았다.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일본 헌법을 만드는 데, 이토오 히로부미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은 입헌 군주제의 모델을 영국으로부터 찾았고, 메이지 유신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영국 유학출신 이토오가 큰 활약을 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본 역사의 생생한 흔적들의 한켠에 안중근도 살아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안중근 이토오 저격의 순간을 분석한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 당일 사용한 총은 FN M1900. 벨기에 파브리크 나시오날 드 헤르스탈사가 존 브라우닝의 설계도에 따라 개발한 싱글 액션의 자동권총이다. 슬라이드를 사용하는 초기 권총 중 하나이며, 쇼트 리코일 방식이다. 이 권총은 역사적인 암살 사건에 몇 번 등장했다. 1904년, 유진 샤우만이 일련번호가 알려지지 않은 M1900을 사용하여 1904년에 핀란드의 러시아 총독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보브리코프를 암살했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 당시에도 이 권총이 사용되었다. (이 총은 탄창에 7발을 장전 할 수 있는데, 안중근은 당일 최대한의 총알을 장전하기 위해 약실에 한발을 더 넣어 총 8발을 장전 했다고 한다.)

 

거사 당일 사용한 권총 FN M1900.(모조품)

안중근은 하르빈 역에 내린 뒤, 의장대를 통과하는 사람중 이토오로 추정되는 사람을 향해 3발을 쏘아 명중시켰다. 이때 안중근의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 이토오의 모습을 모르는데 만일 잘못 쏘았다면 큰일이 낭패가 되는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뒤쪽을 향해서 의젓해 보이는 앞서가는 일본인을 목표하고 4발을 발사했다.

이토오의 왼쪽에 섰던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총영사 ‘가와카미 토시히코’가 오른 팔 골절 관통상을 입었다. 이토오의 오른쪽에 섰던 일본 궁내대신 이토의 수행비서관 ‘모리 야스지로’의 왼쪽 허리를 관통하여 복부 피하에 총탄이 박혔다. 국내대신 모리의 곁에 섰던 남만철도주식회사 이사 ‘타나카 세이지로’의 왼쪽 다리 관절이 관통되었다. 남만철도주식회사 총재 ‘나카무라 제코’의 외투를 뚫고 총탄이 오른편 바지에 박혔다.

여기서 제기되는 한가지 의문, 안중근은 왜 한발의 총알을 남겼는가? 7발을 쏜 뒤 안중근은 마지막 한발에 대해 생각했으리라. 아마도 그 한발은 자기 자신의 자결을 위해 준비한 탄환 이었을 것이다. 이 총으로 자결을 해야하는가? 그런 심각한 갈등이 격정의 가운데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랐을 것이다. 그는 자결하지 않았다. 살아남아서 조선의 남아가 왜 이토오를 처단해야 했는지 말하는 쪽이 옳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꿋꿋한 자세. 죽음을 향한 의연한 발걸음. 옥중의 서신과 저술 등이 그 모든 것들을 짐작케한다. 그는 권총을 던지고, 품안에서 태극기를 꺼내든 뒤, 하르빈 역에 있던 군중들을 향해, 자신의 동지들을 향해, 세계 모든 사람들, 어쩌면 후대에 살아갈 조선사람 모두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 코리아 뷰레(대한독립 만세)”

 

거사후 러시아 군대에 압수된 권총 안중근의 권총 보관함 (일본인 소장)

일본 도쿄  헌정기념관에 보관된 ‘안중근의 총알’. 1909년 하르빈에서 이토오를 향해 발사된 7발중 하나이다.

안중근은 어쨌든 한발의 총알을 시대속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총알은 안중근이 쏘지 않았던 8번째의 탄환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토오를 향해 조선민중의 성난 분노를 향해 날아 갔던 흔적을 역력히 남기고 있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은 저격에 앞서 총알에 십자가를 새겼다고 한다. 하나는 예수가 흘린 보혈 , 그리고 대속(代贖)의 의미로 짊어졌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세긴 것이고, 또 하나는 이토오의 몸 안에서 납성분을 유출 시켜 치명상을 입히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헌정기념관의 그 총알은 탄두의 앞부분이 십자로 벌어져 있었다. 108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아련한 고통이 둔탁하게 전이되어 왔다.

헌정 기념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총알은 1909년 거사 당시 남만주 철도이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靑次郞)의 넓적다리에서 꺼낸 것이라고 한다. 이토오에게 먼저 3발을 쏜 뒤, 혹시하는 마음에 저격했던 4사람중의 한사람이다. 총알은 안중근의 재판 당시 증거물로 채택되었다가 재판 종료후 대련(大連) 경찰서가 다나카에게 돌려 준 물건이라고 한다. - 다나카는 훗날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했던 사람이다.

이것을 다시 헌정기념관에 기증, 오늘날 까지 ‘안중근이 발사한 총알’이라 명명되어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안중근을 생각한다

안중근은 왜 이토오를 저격했는가에 대한 10가지 이유중 첫번째로 ‘우리나라의 국모를 죽인 죄’를 들었다. 일본 공사 미우라에 의해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의 죄과를 이토오에게 물은 것이다.

바로 그 명성황후의 시해와 관련된 기록들. 시신이 불태워져 향원정에 한줌의 재로 뿌려진 뒤, 시신이 없어서 2년 2개월동안 치루어 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국장의 기록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의 기증으로 일본 천황궁에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슬픈 역사의 기록이 천황궁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발걸음을 일본으로 기울이게 하는 인연으로 작용해왔다. 이것은 2006년 8월 후쿠오카의 쿠시다 신사로 이끌어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의 칼 ‘히젠도’를 만나게 하더니, 이제 나를 도쿄 헌정기념관으로 불러들여 ‘안중근의 총알’을 만나게 한 것이다.

일본 국회의 헌정기념관에 안중근이 남긴 한발의 총알. 조선민중의 울분을 담아 일본의 심장을 터뜨려 버린 그 총알은 천언만어(千言萬語)를 끊고 침묵하게 만든다. 그가 새겨 넣은 십자가의 의미, 그리고 죽기에 너무 아까웠던 그의 젊음, 한일간 역사를 뒤바꾼 시대의 무게가 사람을 압도한다. 그것이 겨누었던 이토오의 가슴이 상징하는 무게는 차마 지금도 헤아리기에 비장하다. 그것이 뿜어내는 서슬은 세상에 순응하고 따라가기만 하는 영웅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가슴을 차갑게 씻어 내리고, 먹고 살기에 바빠 잊고 있었던 우리의 무관심을 향해 다시금 달려들 것 같은 기세이다..

심지어 우리는 “국권이 회복되는 날 나를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말한 안중근의 소원도 지켜 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안중근의 유해 발굴은 해방 70여주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를 거듭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따라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유묵(遺墨)의 한구절이 나를 목메이게 한다.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던져라’ (見利思義 見危授命)

안중근의사의 유묵 보물 569호.        사형 직전 안중근 의사의 모습

                                           (독립혈서를 위해 자른 손가락이 인상적임)

=옮겨온 글=

[안천]

대단한 내용입니다

[가야돌]

역사의 생생한 기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