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4-
그래도 나는 그게 너무너무 무서웠다. 할머니가 가까이 올 때마다 나는 연방 엄마나 성용 오빠 뒤에 숨었다. 아니면 할머니한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슬그머니 도망가 벽에 대고 엉덩이를 꾹 누른 채로, 할머니가 검지로 내 바지 위를 쿡 찌르면서 낄낄대가 무서울 정도로 요란하게 콜록거리는 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할머니는 술과 담배와 노름을 사랑했고, 특히 화투판을 벌여 이 세가지를 동시에 하는 걸 즐겼다. 화투는 성냥갑 정도 크기의 작고 단단한 프라스틱 카드로, 뒷면은 화사한 붉은색으로만 되어 있고 앞면은 다향한 동물과 꽃과 이파리가 알록달록하게 그러져 있다. 이걸로 '고도리' 또는 '고스톱'이라고 부르는 게임을 하는데, 목표는 손에 들고 있는 카드와 탁자 위에 깔린 카드로 짝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미면 장미끼리, 국화는 국화끼리, 맞추는데 한 세트씩 모을 때마다 1점을 얻는다. 띠가 그려진 카드는 하나에 1점씩, 세가 그려진 카드를 다 모으면 5번을 얻는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한자 빛날 광이 쓰인 카드를 다섯개 다 모으면 무려 15점을 획득한다. 3점을 먼저 획득한 사람이 "고"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딸 기회를 갖는 대신 획득한 점수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위험을 감수할지, 아니면 "스톱"을 해서 게임을 끝내고 딴 점수 다른 사람 참가자들에게 돈을 걷을 지를 결정할 수 있다.
거의 매일 할머니는초록색 펠트 담요를 펼치고 그 옆에 지갑과 재떨이와 소주와 맥주 몇 병을 가져다 놓았고, 그러면 집안 여자들이 둘러 앉아 화투놀이를 시작했다. 고도리는 조용히 게임을 따라가면서 전략을 짜고 은밀히 상대의 수를 읽다가 마지막에 서로의 카들를 공개하는 다른 카드 게임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시끌벅적하고 속도감 넘치는 게임을 즐겼다. 내 대모인 재미 이모는 자기 카드를 내 놓을 때, 딱지치기를 할 때 처럼 팔을 허공 위로 1미터쯤 뻗었다가 카드를 있는힘껏 내동댕이쳤다. 그러면 카드의 붉은 뒷면이 다른 한 짝 위로 날아가 부닺치면서 찰싹 하는 소리를 냈다. 어른들은 누군가 그 소리를 낼 때마다 "뻑!'이라든지 '조오타!' 같은 말을 외치면서, 시시때때로 줄었다 늘었다 은색 동전 무더기를 다 같이 짤랑거렸다.
어른들이 화투를 치는 동안 나는 시중꾼 놀이를 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술을 마실 때 안주라고 부르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다. 나는 마른 오징어, 땅콩, 크래커 따위를 접시에 담아 이모들에게 갖다주었다. 더 갖다주거나 빈 잔에 소주를 다시 채워주기도 했고 한국식 마사지도 해주었다.
그건 어깨를 주무르거나 문지르는 대신, 주먹을 쥐고 망치질하듯이 계속해서 쿵쿵 두드리기만 한면 됐다. 게임이 끝나면 돈을 딴 사람들이 내게 팁을 주었다. 나는 수염을 기른 이순신 장군이 새겨진 100원짜리 동전을 받거나 좋으면 날아오르는 학이 새겨진 500원짜리 은색 동전을 받았는데, 내 손에 동전니 쥐어질 때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